일본 에이브이(AV) 배우들이 참여하는 ‘성인 페스티벌’이 화제다. 주최 측인 플레이조커는 이 행사가 배우들의 패션쇼라고 소개했지만, 사실 AV 산업 홍보행사라고 보면 된다. 수원시와 파주시, 서울시, 서울 강남구 등이 행사 개최를 불허하면서 일단 4월 행사는 취소된 상태다.
한국에선 포르노 제작, 유통이 불법이고, 일본산 포르노의 다른 말인 AV 역시 그렇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유통되는 불법 동영상 시장은 물론, 특정 장면을 편집하거나 모자이크 처리를 해서 IPTV 등을 통해 합법적으로 유통되는 수정판 AV 시장 역시 그 규모가 엄청나다. 이처럼 AV가 버젓이 유통되고 있고, 또 일본 AV 배우들의 한국 진출이 본격화된 현실에서, 함께 판단의 가이드를 잡아갈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건 2023년, 유튜브의 ‘탁재훈의 노빠꾸’나 넷플릭스의 ‘성인물’ 등을 보면서였다. 일본 AV 산업의 소위 ‘일류 배우’들이 한국 예능에 출연해서 ‘건강하고 즐거운 AV 산업’이라는 이미지를 만들면서 한국 내 AV 시장의 양성화를 도모하는 상황에서 실제 AV 산업에서 행해지는 폭력의 문제는 대중적으로 소통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쪽에선 AV 배우들이 한국어를 배워 한국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다른 한쪽에선 한국 예능이 그들을 띄워주던 2023년의 후반기, 이미 성인 페스티벌은 1300명의 관객을 모으며 ‘성공적’으로 개최됐다. 그러니까 이번 건을 단발성 행사로 봐서는 안 된다. 더 큰 그림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이때 마찬가지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노골적 프레임 비틀기다. 플레이조커는 행사를 취소하면서 배우 소속사 측이 “각 지자체가 떠들썩하고 나라가 들썩일 정도로 여성단체의 반발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여배우의 신변이 보호될 수 있냐”는 우려를 표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서 위험요소로 ‘신림동 칼부림 사건’과 ‘이재명 대표 피습사건’을 언급한다.
이런 말들은 ‘과격한 페미니스트의 폭력성’을 암시했지만, 여성단체가 한 것은 기자회견과 피케팅이라는 시민적 의사표현이었다. 하지만 플레이조커는 자신들이 상정한 주 소비자층을 선동하고 온라인상의 주목을 동원하기 위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언어로 ‘안티페미니즘’을 선택했다. 그리고 한국형 인셀 범죄의 시작이라고 평가받는 ‘신림동 칼부림 사건’을 붙여버린 것이다. 여자를 대상화하는 감정 회로 속에서 촉발된 ‘남성 범죄’를 여자를 대상화함으로써 상품화하는 이벤트를 정당화하는 데 활용한 셈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플레이조커는 “(한국의) 올바른 성문화를 위해 성인 관련 회사와의 협업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라고 주장했다. 즉, 자신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성엄숙주의를 넘어서서 ‘올바른 성문화’를 견인하는 진보적인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말로 낡은 관습이 진보를 자처하는 세계의 초상이다. 우리는 확실히 말장난이 가치를 전도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 흐름에 올라탄 것이 천하람이다. 그는 “남성의 본능을 범죄시하지 말라”며 여성 대 남성의 대결구도를 내놓았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남성의 본능’이 무엇인지, 그 ‘본능’에 남성들은 얼마나 동의하는지, 성인 페스티벌은 어떤 성문화를 대변하는지 등에 대한 설명은 누락되어 있다. 역시 밈 정치, 말장난, 프레임 비틀기의 달인이 이끄는 개혁신당에서 나올 법한 속도 빠른 갈라치기라 할 만하다.
천하람은 한 시사프로에 출연해서 “AV가 불법이라고 해서 AV 배우가 불법입니까?”라고 물었다. AV 배우가 불법이냐 아니냐는 한국 사회가 아직 도달하지 않은 주제다. 다만 그가 노동하는 장이 불법을 행하고 있거나(유사 성행위 서비스 제공 등) 혹은 불법을 홍보한다면, 그건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