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끝없는 분쟁 지역 성폭력, 가득한 증언 담은 ‘관통당한 몸’

오경민 기자

관통당한 몸

크리스티나 램 지음·강경이 옮김 | 한겨레출판 | 494쪽 | 2만2000원

[책과 삶]끝없는 분쟁 지역 성폭력, 가득한 증언 담은 ‘관통당한 몸’


전시 성폭력은 가장 오래된 범죄이자 가장 소홀히 다뤄지는 범죄다. 칭기즈칸은 “가장 큰 행복은 적을 정복하고 … 그들의 부인과 딸들을 품 안에 끌어안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당신들의 로마를 정복하고 … 당신들의 여자를 노예로 삼을 것”이라고 말한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의 경고와 겹친다. 강간은 무보수로 전쟁에 참여한 병사에게 보상하는 방법이며, 정복자에게는 승리를 확인하는 방식이자 ‘가장 값싼 무기’다.

전쟁에서 성폭력은 대규모로 일어나지만, 이미 살인을 승인한 전장에서 강간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곤 한다. 전시 강간은 1998년에야 처음 전쟁범죄로 처벌됐다. 2차 세계대전 후 설치된 국제재판소에서 성폭력 기소는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영국 언론인 크리스티나 램은 이라크, 미얀마, 르완다 등에서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증언을 모아 이 책을 썼다.

책엔 잔혹한 경험을 되짚는 여성들의 증언이 가득하다. 이들은 남성 가족이 먼저 살해된 후, 벗어날 수 없는 폭력적 상황에서 셀 수 없을 만큼 강간을 당했고 신체를 훼손당했다. 오랜 과거 일이 아니다. 2016년 10월 미얀마에서 자행된 ‘로힝야 소탕작전’ 때 로힝야 여성의 52%가 강간을 당했다. 성폭력은 발생 대비 신고가 적지만, 분쟁지역 강간은 그 정도가 더하다. 낙인 때문이다. 종전 후 고향 사람들은 아노바(나이지리아어로 ‘나쁜 피’), 티라 응 하포네스(필리핀어로 ‘일본의 넝마’) 등의 말로 피해 여성들을 모욕했다. 가족마저 “어떻게 그놈들이 네게 손 대게 놔둘 수 있어?”라고 비난했다.

저자는 독자에게 이 지난한 문제를 외면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분쟁지역 성폭력을 주변적 문제나 전시의 부산물 정도로 여기는 태도를 탈피하고 침묵을 깨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의 증언에서 책을 시작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방글라데시 건국 지도자인 셰이크 무지브르 라흐만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를 대조하며 집권자의 태도가 여성폭력 피해자와 대중에 미치는 영향도 무겁게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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