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가는 세계…그럼, 그 너머에는?

김한솔 기자
[책과 삶] 망해가는 세계…그럼, 그 너머에는?

손상된 행성에서 더 나은 파국을 상상하기
손희정 지음
메멘토문고 | 224쪽 | 1만4000원

신종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뒤덮어 수백만명이 사망한다. 인간들이 전쟁을 일으켜 서로 죽인다. 이상기후로 산불이 수개월째 꺼지지 않는가 하면 폭우로 대도시가 침수된다. 모두 실제 일어난 일들이다. 지금 세계는 확실히 파국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손상된 행성에서 더 나은 파국을 상상하기>는 ‘우린 다 망했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현실에서 그 너머의 가능성을 살피는 날카로운 문화 비평서다. 저자 손희정은 영화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의 ‘파국의 서사’를 꼼꼼하게 되짚는다. ‘이미 끝났다’는 체념과 ‘어떻게 해서든 나만은 살아남겠다’는 이기적 생존 본능 사이 어디쯤 머물고 있을 대안적 가능성들을 건져낸다.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 투스>의 ‘레퓨지아’에 대한 고찰에서 책 제목이 지향하는 바가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레퓨지아는 생물체가 소규모로 줄어든 채 생존하는 지역을 말한다. 일종의 ‘피난처’다. <스위트 투스>의 배경은 전염병으로 인간 문명이 붕괴한 이후의 세계다. 파국을 맞은 세계에는 인간과 동물의 혼종인 ‘하이브리드’가 등장한다. 누군가는 하이브리드를 전염병 치료제 개발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 들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이들과 공존하기 위한 레퓨지아를 건설한다. 디스토피아도 유토피아도 아닌 <스위트 투스>의 세계는 현실과 별로 다르지 않다.

저자는 지금의 현실이 파국에 가까울 정도로 엉망진창인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을 혐오하거나 상황을 냉소하진 않는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나은 파국을 상상해보자’고 집요하게 독자를 설득한다. 파국을 막는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저자와 같은 상상을 하면서 맞는 파국이 냉소하면서 맞는 파국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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