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클프리’ 옷에서 포름알데히드가?···옷이 나를 공격한다

이혜인 기자

2010년대 미 항공사 승무원들

‘화학물질 범벅’ 제복으로 피해

화장품이나 식품 등과 다르게

옷은 성분 목록조차 없어 위험

‘독성 패션’ 인한 위험도 계층화

값싼 제품 만드는 공장 노동자

더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 처해

2010년대에 알래스카 항공, 아메리칸 항공,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승무원들은 유니폼에 들어있는 화학물질로 인해 호흡곤란, 발진 등 건강문제를 경험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입는 ‘옷’이 나를 공격한 것이다.

2010년대에 알래스카 항공, 아메리칸 항공,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승무원들은 유니폼에 들어있는 화학물질로 인해 호흡곤란, 발진 등 건강문제를 경험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입는 ‘옷’이 나를 공격한 것이다.

우리는 매일 죽음을 입는다

올든 위커 지음|김은령 옮김|부키|404쪽|2만원

나를 외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입는 ‘옷’이 나를 공격할 수 있다는 사실, 아시는가.

2011년 봄, 미국 알래스카 항공사의 승무원 메리(가명)는 비행 중에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그는 최근 들어 잦은 기침을 했으며, 때때로 호흡 곤란까지 느꼈다. 비슷한 시기에 베테랑 승무원인 존도 건강 문제를 겪고 있었다. 그 역시 호흡이 심하게 가빠질 때가 있었고, 팔에 물집이 생겨서 응급실까지 다녀왔다. 두 사람이 건강 문제를 겪기 시작한 것은 그해 2월에 회사 측으로부터 지급된 새 유니폼을 입은 뒤부터였다.

미 항공승무원협회 소속 산업위생 전문가인 주디슨 앤더슨의 메일함에는 승무원들이 보낸 메일이 밀려들어왔다. 옷 속에 포함돼 있거나 발라져 있는 화학물질들이 승무원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승무원들은 피부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눈꺼풀이 부어오르고, 눈에 고름 딱지가 앉은 사진을 첨부한 메일을 보냈다. 앤더슨은 새 유니폼 몇 벌을 가위로 잘라서 워싱턴대학의 화학물질 노출 검사 프로그램에 보냈다. 유니폼에서는 총 97개의 서로 다른 화학 화합물이 확인됐다. 샘플 13개에는 과도한 수준의 납과 비소가 들어있었다. 승무원들의 건강 문제가 우연히 발생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2010년대에 알래스카항공, 아메리칸항공,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승무원들이 유니폼으로 인해 건강 문제를 경험했다. 승무원들은 회사 측에 유니폼 리콜을 요청하거나, 제복 제작사에 집단소송을 걸었다. 일련의 사건을 접한 미국 저널리스트 올든 위커는 의문이 생겼다. “이런 ‘독성 패션’ 문제가 항공 산업에만 국한된 것일까?” 그리고 “화장품이나 세제, 포장 식품에는 성분 목록이 붙어있지만 패션 제품은 그렇지 않다는 데에 생각이 이르렀다.”

<우리는 매일 죽음을 입는다>는 독성 패션이 사람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폭넓게 다룬 책이다. 저널리스트이자 지속 가능한 패션 전문가인 위커는 옷 속에 들어있는 화학물질로 인해 건강이상을 겪는 사람들을 직접 만났다. 책에서는 수은, 크로뮴, 포름알데히드 등 독성이 강한 화학물질을 무분별하게 옷 가공에 써왔던 패션산업의 역사를 소개한다. 이 같은 경향이 현대 패션산업에서도 계속되고, 고통을 호소하는 소비자를 마치 건강염려증처럼 취급하는 부정한 현실에 대해서도 고발한다.

구김방지, 방수 등을 갖춘 기능성 의류는 수많은 화학물질로 코팅돼있다. 이 물질들은 쉽게 분해되지 않고 더 오래 잔류하며, 분해될 때 발암물질을 방출하기도 한다.

구김방지, 방수 등을 갖춘 기능성 의류는 수많은 화학물질로 코팅돼있다. 이 물질들은 쉽게 분해되지 않고 더 오래 잔류하며, 분해될 때 발암물질을 방출하기도 한다.

패션의 역사를 들추면 화학물질에 의해 희생된 이들이 끌어져나온다. 중세 유럽에서 수은, 납 등의 중금속이 화장품으로 쓰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그 위험성이 알려진 후에도 패션업계에서는 중금속을 애용했다. 유럽인들이 쓰는 남성용 모자는 비버의 털로 만들어졌는데, 수급의 한계로 인해 모자업체들은 유럽산 토끼털로 비슷한 모양의 모자를 만들었다. 모자 털을 부드럽게 만드는 데 드는 작업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수은이 모자 작업공정에 널리 사용됐다.

모자 작업공들에게서 수은 중독이 잇따르자 의사들이 나섰다. 의사들은 수은 사용이 “불필요하고, 기이하고, 악의적”이라고 지적했으나, 수은 사용은 계속됐다. 수은 중독으로 고통을 겪던 프랑스의 한 모자 제조업자는 1857년에 수은이 든 모자 제조용 용액을 마시고 자살한다. 저자는 “가장 널리 알려진 희생자는 왕족이 아니라, 최신 패션을 위해 먼지와 증기로 가득 찬 작업장에서 일하는 소외 계층”이었다고 말한다.

“천연섬유를 길들이는 일에 만족할 수 없었던 화학자들은 20세기가 되자 화석연료로부터 직접 소재를 만들어 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현대사회에서 ‘기능성 의류’에 대한 기업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소비자들의 요구와 맞아떨어지면서 수많은 화학물질로 코팅된 의류들이 범람한다. 구김방지 의류를 만드는 데는 DMDHEU(dimethyloldihydroxyethylene urea)라는 합성물이 사용된다. 이 물질을 쓰면 면이 뻣뻣해지거나 갈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DMDHEU가 분해될 때 포름알데히드라는 발암물질을 방출한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순면과 같은 천연섬유에 가공처리를 더해 극세사를 생산한다. 화학물질과 중합체로 완전히 코팅된 섬유들은 수로에서 쉽게 분해되지 않고 오염물질로 잔류한다.

기후보호단체인 스탠드어스(stand.earth)의 패션팀에 소속된 무하나드 말라스는 “기업들은 마케팅에서 기능을 점점 더 우선시하기 시작했다”며 “많은 기업이 다양한 기능성 제품을 개발하고, 그 기능을 강조하여 제품을 홍보”하는데, “이런 일에는 공중보건과 환경의 희생이 따른다”고 지적한다.

합성 화학물질에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환경은 현대인에게 불임, 자가면역질환, 화학물질 민감증이라는 건강 문제를 초래했다. 책에서 특히 주목하는 화학물질은 우리 몸의 자연적인 호르몬 활동을 방해하는 내분비교란물질(환경호르몬)이다. 패션 업계가 즐겨 쓰는 마감재인 비소, 프탈레이트, 알킬페놀 에톡실레이트(APEOs), 과불화화합물 등은 다른 화학물질들보다 더 ‘교활’하게 생체 시스템을 교란시킨다. 저자는 “(과학자들이) 전통적인 독성학에서는 문제 되는 물질의 용량이 적을수록 피해도 적다고 가정”하는데, 내분비교란물질은 “‘사용량에 따라 독성이 결정된다’는 오래된 믿음을 따르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아주 적은 양만으로도 “우리 몸의 자연적인 호르몬 활동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성 패션의 위험은 계층화돼있다. 인도, 중국 등의 의류노동자들은 선진국 소비자들이 값싼 옷을 입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화학물질 안전장치가 없는 작업장에서 일한다.

독성 패션의 위험은 계층화돼있다. 인도, 중국 등의 의류노동자들은 선진국 소비자들이 값싼 옷을 입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화학물질 안전장치가 없는 작업장에서 일한다.

문제는 화학물질로 인한 건강이상을 뚜렷하게 잡아내기에는 현대 의학기술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다중화학물질과민증으로 병원에 찾아갔을 때, 의사가 그 증거나 증상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환자를 우울증이라 판단하고 심리학자에게 보내는 사례도 있다고 소개한다. 텍사스대학의 알레르기 전문의이자 면역학자인 클라우디아 S 밀러 박사는 “일단 독성 물질로 인한 내성 저하가 생기면, 증상을 유발하는 수준이 독성학자가 제시하는 것보다 훨씬 낮은 정도라는 것이 환자들이 겪는 문제”라고 말한다. 환자들은 현재 독성학의 기준만으로는 자신의 문제를 설명할 수 없다. 유니폼 문제를 겪었던 승무원 같은 화학물질 피해자들은 “자신이 경험한 일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럼에도 화학물질 민감증으로 진단받은 사람들의 수는 2006년에서 2016년 사이에 300% 증가했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독성 패션의 ‘계층화된 위험’에 대해서도 짚는다. 저자는 세계 최대의 의류산업 도시인 인도 티루푸르를 직접 찾아간다. 티루푸르의 패션 제조업계는 3단계로 구성돼 있다. 최하위 단계에는 가장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들이 있다. 저자는 “소규모 염색 공장은 저렴한 것이라면 어떤 화학물질이든 사용하고, 안전을 위한 화학물 테스트나 제품 테스트를 실행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티루푸르의 사람들에게 듣는다. 티루푸르에서 만난 릴라바티는 조건이 좋은 외국 브랜드의 공장에서 일을 할 때는 배기 장치가 있어 건강 문제를 겪지 않았지만, 마을의 소규모 공장에서 일하면서 몸에 물집이 생겨 일을 그만둬야 했다고 말했다.

옷의 위해성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저자는 생활 속에서 당장 실천 가능한 지침들을 정리해 소개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소규모 브랜드나 울트라 패스트패션(최신 유행을 즉각 반영한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을 내세우는 패션) 브랜드를 피하라, 화학물질 사용을 공개하지 않는 브랜드를 걸러내라, 기능성 소재나 채도가 지나치게 높은 색을 쓰는 옷을 피하라 등이다. 하지만 궁극적인 것은 소비자가 아닌 업체가 변화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테스트받지 않은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업체에 세금 및 관세를 부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소비재에 내분비교란물질 사용을 금지해야 하며, 패션 제품에 성분 목록을 공개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옷을 살 때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것이다. 저자는 화학물질의 광활한 세계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위협적인 방식으로 우리 삶을 통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희망을 잃지 말고 “자기 자신과 자신의 건강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데서 출발해보자고 제안한다.

[책과 삶]‘링클프리’ 옷에서 포름알데히드가?···옷이 나를 공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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