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장관이 정말로 만화 공모전 심사위원이었다면?

위근우 칼럼니스트

수백 수천작 엄중한 심사를 거쳐…이 열차의 종착역은 금상입니다

[위근우의 리플레이]한동훈 장관이 정말로 만화 공모전 심사위원이었다면?

기자 혹은 프리랜서 기고가로서 약 10년 넘게 웹툰에 대한 비평을 쓰거나 작가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종종 만화 심사를 맡게 될 때가 있다. 프로 작가의 연재작 중 수상작을 추천하는 경우도 있고, 연재를 꿈꾸는 예비 작가들의 작품을 평가할 때도 있으며, 공적 기관에서 주관하는 특정 주제에 대한 미성년 학생들의 공모작을 심사해보기도 했다. 다년간 만화 심사 경험에 비춰볼 때, 최근 화제가 된 전국 학생 만화공모전 고등부 카툰 부문 금상 수상작 ‘윤석열차’에 대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제가 심사위원이었으면 상을 줘서 이런 것을 응원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국정감사 중 답변은 영 엉뚱하게 느껴진다. 그에게 만화의 좋고 나쁨을 평가할 자질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만약 그가 정말 심사위원이었고 해당 작품에 대해 나름의 기준에 의거해 부정적 판단을 했다 하더라도 아마 높은 확률로 ‘윤석열차’는 수상했을 것이며, 사실 그것이 이번 사안의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심사위원 한 명이 당락을 결정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며, 그것이 심사 과정의 절차적 합리성을 더욱 보증해주기 때문이다.

상의 성격이나 대상에 따라 다르지만 많은 경우 심사는 1차, 2차, 3차 최종심으로 진행되며, 심사위원단은 협력단체 추천 등을 통해 최대한 다양한 범주의 사람들로 구성된다. 보통 1차나 2차까진 작품 추천 및 채점에 의한 점수 합산 방식으로 이뤄지며, 최종심에선 각 작품이 가진 동시대적 의미, 단순 배점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개성, 상의 상징성 등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을 거쳐 수상작을 고르기 마련이다. 물론 2차에서 끝나는 경우도 있고, 최종심 역시 별다른 논의 과정 없이 각 심사위원의 채점 및 점수 합산만으로 수상작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둘 다 충분히 절차적 합리성을 지니고 있지만, 충분한 숙의 과정이 보장된다면 최종심에선 단순 채점 합산보단 논의를 거치는 게 작품의 함의와 장단점을 고려하기에 더 낫다. 그렇다면 이번 전국 학생 만화공모전은? 직접 부천만화영상진흥원에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이번 공모전에서 심사위원단은 논의 방식 대신 채점 및 합산에 의한 상대평가로 수상작을 결정했다. 워낙 공모 작품이 많아 논의가 가능한 수준으로 후보를 걸러내기 힘들었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괜찮다. 작품 각각에 대한 깊은 통찰을 나누긴 어렵지만 채점 방식은 그 나름대로 유용하다. 서로 다른 기준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전문성을 지닌 복수의 심사위원이 숫자로 환산한 평가가 모여 정량화되면 각각의 관점에서 평균 이상의 완성도를 고루 지닌 무난한 작품이 뽑히기 마련이다.

한동훈 장관이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된 상황을 가정해보자. 그는 자신이라면 ‘윤석열차’를 뽑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혐오와 풍자의 경계는 늘 모호”하며 “그림이니까 시각대로 보면 될 것 같다”고 그것이 각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는 주관의 영역임을 전제했다. 심사위원이 그 정도 입장이라면 특정 작품이 뽑히지 않길 바라더라도 떨어뜨릴 수는 없다. 이것은 절대 풍자가 아닌 누군가의 인격을 모독하는 테러라는 확고한 신념, 누군가 왜 이 작품에 0점을 줬느냐는 질문에 당당히 논증할 자신이 있는 게 아니라면, 보통 세 가지 항목별 30/30/40 총 100점 만점인 채점표에서 특정 항목 점수를 아주 낮게 줄지언정 총합산에서 충분한 불이익이 갈 정도로 0점에 가까운 점수를 주긴 어렵다. 정말 혐오와 풍자의 모호한 경계에 서 있다고 판단한다면 그 경계선에 걸친 점수를 다른 공모작 평균을 고려해 책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차라리 모든 모호한 풍자의 뉘앙스에 대해 일관된 기준으로 낮은 점수를 책정하는 것도 괜찮다.

한 장관이 국감서 언급한 ‘풍자와 혐오의 모호한 경계’를 구분하는 건 주관의 영역…심사는 일관된 기준으로 평가해야
전문성을 가진 복수의 심사위원이 숫자로 환산한 평가가 모여 정량화 되면 ‘평균 이상의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 뽑히기 마련
수상자의 학교·지역 공개하며 좌표찍은 일부 언론과 집단…혐오에 반대하는 법무부 장관의 강경 대응을 기대해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심사위원은 ‘윤석열차’를 금상으로 뽑을 것인지 말 것인지만 판단하는 자리가 아니다. 수백 수천의 작품들을 자신의 일관된 기준으로 평가하는 역할이며, 만약 ‘윤석열차’를 풍자로 볼 수 없는 한동훈 심사위원의 기준이라면 매우 높은 확률로 다른 경쟁작들의 풍자적 뉘앙스에도 낮은 점수가 매겨질 것이다. 그렇다면 ‘윤석열차’를 비롯해 풍자에 더 관대한 기준을 지닌 심사위원 다수의 점수에 비해 그의 일관되게 낮은 점수는 전체 평균을 깎을 뿐 상대평가를 왜곡하진 않으며, 풍자의 모호함을 제외하고도 다른 심사위원들이 채점에서 고려한 다른 장점들이 ‘윤석열차’를 수상작으로 만들 것이다. 채점 시스템에서 한 명의 심사위원이 작정하고 하나의 작품을 떨어뜨리려면 일관성도 공정성도 없는 터무니없는 점수를 작성해야만 한다. 당연히 정의로운 법률가이신 한동훈 장관께서 그러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윤석열차’를 떨어뜨리고픈 한동훈 심사위원의 바람이 그대로 부정되는 건 아니다. 최종심에서 채점 방식이 아닌 앞서 말한 심사위원 간 논의 방식을 거쳤더라면 어땠을까. 다른 위원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중대한 결함을 찾아 강하게 어필한다면 수상 목록에 오르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다만 여기서 한동훈 심사위원이 져야 할 입증부담은 채점 때보다 커진다.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도 많을 것이고 정확한 것을 반영한 거라고 느낄 수도 있”는데 자신은 불편한 편이라고 말하는 정도론 어림없으며, 저 만화적 재현이 풍자가 아닌 혐오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부턴 주관적 감상이 아닌 논증의 영역이다. 가령 혐오 표현의 제약을 주장하는 법학자 제러미 월드론은 저서 <혐오표현, 자유는 어떻게 해악이 되는가?>(홍성수·이소영 역)에서 자신과 자기 집단의 존엄에 대한 존중과 불쾌 감정으로부터의 보호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전자에 대한 공격과 훼손에 대해서만 제약 가능한 혐오표현으로 보았다. 여기서 존엄은 “지위 관련 용어”이며 “특정인의 정상적인 지위를 가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이 어떻게 확정되고 유지되는지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서 ‘존엄성’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이는 부정의로서의 문화적 무시를 심리적 고통의 문제가 아닌, 동등하게 사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동료로서의 지위가 훼손되는 문제로 한정한 철학자 낸시 프레이저의 제안과 상통한다.

한동훈 심사위원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도 될 정도로 ‘윤석열차’라는 문화적 재현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과 검찰 조직의 동등한 시민으로서의 지위가 훼손됐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을까. 적어도 국정감사에선 그러지 못했으며, 대통령과 검찰의 사회적 영향력이 지금보다 훨씬 수직하강하지 않는 이상 아마 앞으로도 그럴 확률이 높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위근우 칼럼니스트

심사 방식에 따른 저 두 가지 가정은 한동훈 장관이 심사위원이었어도 어차피 ‘윤석열차’는 높은 확률로 수상했을 테니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다. 카르텔끼리 소위 ‘해 먹는’ 식의 불공정한 심사가 아닌 이상 그 절차적 합리성은 상당히 탄탄하고 웬만한 수준의 반박에 잘 견딜 수 있다는 걸 말하려는 것뿐이다. 이번 공모전이 “정치 오염 공모전으로 변색”되었다는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발언이나, 자기라면 뽑지 않았을 거라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발언은 개인적 정념의 발산일 뿐, 심사가 불공정하거나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조금도 증명하지 못한다. 그러니 괜히 심사위원 역할을 상상하기보다는 장관의 자리에서 더 나은 정의를 고민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당장 ‘윤석열차’가 논란이 되자 수상한 학생의 학교와 지역을 굳이 명시하며 공격을 유도한 ‘조선일보’ 기사나, 실제로 지역 비하까지 하는 일부 온라인의 움직임이야말로 지위 훼손으로서의 혐오에 대한 혐의가 있어 보인다. 혐오에 반대하는 한동훈 심사위원, 아니 법무부 장관의 강경한 대응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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