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를 유영하는 낭만의 춤사위, 최현 예술혼 불러온 서울시무용단 '허행초'

선명수 기자
지난 2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막을 올린 서울시무용단 <허행초> 중 한 장면. 서울시무용단 제공

지난 2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막을 올린 서울시무용단 <허행초> 중 한 장면. 서울시무용단 제공

무대에 노란 나비 한마리가 날아들고, 나비의 날갯짓에 이끌린 노인이 손을 뻗어 춤을 추기 시작한다. 리드미컬한 장단에 맞춰 물 흐르듯 춤사위가 이어진다. 그 몸짓 위로 한국무용가 최현(1929~2002)의 생전 무대 영상이 겹쳐진다. 마치 허공에서 날갯짓을 하듯, 나비가 바람결을 따르는 듯한 춤의 향연이 펼쳐진다.

지난 2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막을 올린 서울시무용단의 <허행초>는 한국무용가 최현의 춤사위를 재현하고 확장한 공연이다. 최현은 조택원, 송범을 잇는 신무용의 대가로 남성춤의 정체성을 지킨 무용가로 평가받는다. 전통적 소재 속에서 낭만적인 춤세계를 재현해 ‘이 시대 마지막 낭만주의자’로 불렸다. 2002년 타계하기 전까지 무용극, 창극, 마당극, 뮤지컬, 무용소품 등 100여편의 작품을 안무했다.

<허행초>는 서울시무용단이 2018년 첫 선을 보인 전통춤 레퍼토리 ‘동무동락(同舞同樂)’ 시리즈로 2019년 초연했다. 이번 공연에선 ‘춘향전’ ‘태평무’ ‘살풀이춤’ ‘북춤’ 등 초연 때 다 담지 못했던 춤을 더해 최현의 춤을 집대성한 무대를 보여준다. 서울시무용단은 생전 최현의 춤사위를 오롯이 재현하기 위해 그의 부인 원필녀 최현우리춤원 고문에게 작품의 고증과 지도를 받았다.

[리뷰]무대를 유영하는 낭만의 춤사위, 최현 예술혼 불러온 서울시무용단 '허행초'

‘허행초’는 최현의 독무 ‘신로심불로’에서 발전시킨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는 무소유의 사상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지팡이를 든 노인이 어린 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되돌아본 자신의 지난 생을 춤으로 풀어낸다. 최현의 춤인생을 담은 이번 공연은 이런 구성을 바탕으로 ‘나비, 태어나다’ ‘나비, 날아가다’ ‘나비들, 그를 기억하다’ 등 총 3막으로 구성됐다.

총 12개의 소품이 펼쳐진 28일 개막 공연은 천신에게 복을 기원하는 화려한 동작의 ‘기원’을 시작으로 태평소의 강렬한 가락에 맞춰 호방한 춤사위를 보여주는 ‘춤의 약동’, 남성 무용수들이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음악에 몸을 싣는 ‘한량무(흥과 멋)’ 등으로 이어졌다. 무용수들의 섬세한 발디딤이 돋보이는 고고한 춤사위부터 흥과 해학이 넘치는 박진감 넘치는 춤까지, 한국춤의 볼거리들로 풍성한 무대다. 특히 최현의 생전 독무 영상이 무대를 가득 채우며 무대 위 무용수와 마치 2인무를 추는 듯한 ‘신로심불로’는 수십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최현의 춤과 다시 생생하게 대면할 수 있는 압도적인 장면이다. 공중을 유영하는 듯 이어지는 자유로운 춤사위는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 ‘비상’을 통해 고고한 학처럼 날아오른다.

서울시무용단 <허행초> 중 한 장면. 서울시무용단 제공

서울시무용단 <허행초> 중 한 장면. 서울시무용단 제공

서울시무용단 <허행초> 중 한 장면. 서울시무용단 제공

서울시무용단 <허행초> 중 한 장면. 서울시무용단 제공

각 장면에 맞게 다양하게 연출된 무대 영상도 공연의 볼거리 가운데 하나다. 유인상 민족음악원장이 이끄는 연주단이 풍성한 국악 연주를 들려준다. 정혜진 서울시무용단장은 “<허행초>는 정중동의 깊은 호흡에서 나오는 한국춤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며 “최현 선생님의 섬세하고 신비로운 춤사위를 완벽하게 무대 위에서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은 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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