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은 찰나, 무력감과 패배감이 더 많은 직장인···연극 ‘일의 기쁨과 슬픔’

선명수 기자

·장류진의 동명 소설집 연극으로 각색

장류진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서울시극단의 연극 <일의 기쁨과 슬픔>의 한 장면. 서울시극단 제공

장류진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서울시극단의 연극 <일의 기쁨과 슬픔>의 한 장면. 서울시극단 제공

일의 기쁨은 찰나와 같고, 무력감과 패배감은 그보다 자주 찾아온다.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에 누적된 굴욕만 켜켜이 쌓여가지만, 어느 시인의 말처럼 저문 강에 삽을 씻듯 직장인들은 하루의 모멸을 털어내고 또 내일의 출근을 준비한다. 지난 21일 막을 올린 서울시극단의 <일의 기쁨과 슬픔>은 그 제목처럼 고단한 밥벌이 속 기쁨과 슬픔의 순간을 담아낸 연극이다. 2019년 출간된 소설가 장류진의 동명 소설집을 김한솔 작가의 각색으로 연극 무대에 올렸다.

대형 LED 패널이 전면부에 설치된 무대에서 처음 관객이 만나게 되는 풍경은 핀란드의 탐페레 공항이다. 소설집의 가장 마지막에 수록된 단편 ‘탐페레 공항’의 에피소드로, 어린 시절부터 다큐멘터리 PD의 꿈을 키워왔지만 현실의 무게에 이를 접어둔 청년 노동자 ‘효림’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연극은 효림이 대학시절 워킹홀리데이 경유지에서 마주친 핀란드 노인과의 짧은 만남을 시작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설집에 수록된 8편의 단편 가운데 6편의 개별적인 이야기를 직장인의 일과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하나의 연극으로 엮어냈다.

연극은 이 6개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옴니버스처럼 전개되는 작품이다 보니 전체를 관통하는 극적인 사건이나 전개는 없다. 다만 원작 소설이 그렇듯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크고 작은 즐거움과 애환이 뒤엉킨 일상의 순간들이 연극에 담겼다. 남들에게 들킬까 화장실에서 남몰래 눈물을 삼키는 어느 스타트업 종사자의 모습이라든가, 택시를 탈지 말지 고민하는 사회초년생의 출근길 모습, 안 친한 회사 동기에게 결혼 청첩장을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풍경 등이 재치 있게 그려진다. 무대는 이러한 일상의 모습들을 보여주며 분주한 공항에서 백야의 노르웨이 숲으로, 만원 지하철과 온갖 소문이 오가는 회사 탕비실, 판교의 거리 풍경과 수상한 새벽의 방문자가 찾아오는 오피스텔 등으로 수시로 전환된다.

연극 <일의 기쁨과 슬픔>의 한 장면. 서울시극단 제공

연극 <일의 기쁨과 슬픔>의 한 장면. 서울시극단 제공

‘지금, 여기’라는 화두로 동시대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서울시극단의 창작 프로젝트 ‘시극단의 시선’ 시리즈로 기획된 연극이다. 전반적으로 경쾌한 톤이지만 각각의 인물이 지닌 짠한 마음 속 풍경이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박선희 연출은 “일의 ‘슬픔’에 공감하다가도 웃을 수 있는 판타지적인 순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6편의 소설을 100분의 짧은 공연으로 풀어내다 보니 원작 소설을 읽지 않은 관객이라면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내용의 상당 부분이 덜어진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등 일부 단편은 맥락이 뜬 채 연극에 끼어 있는 느낌이 든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31일까지.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