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관리자로서 정부역할 중요”

김재중기자

“양극화 심화 속 세계질서 재편 논의는 무의미”

사회 : 김호기 연세대 교수

사회 : 김호기 연세대 교수

■ 사회(김호기 연세대 교수) = 세계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가 기로에 서게 됐다. 오늘 토론회의 제목처럼 위기는 하나인데 해석은 여러 가지가 나오고 있다. 원인에 대한 다양한 해석만큼 다양한 대안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최태욱 교수의 기조발제에 대한 논평과 함께 평소 여러분이 생각해온 대안들을 말씀해달라.

■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 = 역제협력을 전제로 한 금융통화적 질서개편 움직임에서 제일 주목되는 것이 오는 4월에 열릴 G20회담이다. 이와 관련해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유럽이 확실하게 공조해 미국 주도의 체제에 대항해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신브레턴우즈 체제라고 해서 국제통화기금(IMF)을 대체할 새로운 금융감독기구를 만들자는 것이 유럽의 주장이고, 워싱턴은 ‘IMF 플러스’ 즉 IMF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돈도 더 넣고 힘도 더 주자는 생각인 것 같다. 만약 IMF를 대체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상당히 많은 변화가 예상되고, IMF를 강화하는 형태로 간다면 그렇게 큰 변화가 예상되지는 않을 것이다. (최 교수가 발제한) 역제 간 협력체제는 IMF 플러스보다는 신브레턴우즈 체제적인 측면에 주목하는 것 같은데 그럴 경우 달러가 상당 부분 비중을 상실하면서 위기적 국면이 올 수 있다. 심하게 말하면 통화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주도할 수는 없는 흐름이지만 이런 흐름이 성공할지는 잘 모르겠다.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 토론회

■ 김상조 한성대 교수 = 통화체제를 비롯한 국제자본주의 재편에 대해 뭔가 디자인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적이다. 미국의 경제적 위상은 앞으로 끊임없이 위축될 것이지만 나머지 나라들도 현 세계자본주의체제의 공범이다. 미국이 쌍둥이 적자를 통해 전 세계에 달러를 공급하고, 모든 나라가 미국에 수출하는 그런 체제는 미국 국민들에게만 모르핀이 된 게 아니라 전 세계 국가들에도 쉽게 끊지 못하는 마약과 같이 되었다. 미국이 주도해온 경제구조 속에서 누리던 단맛을 계속 유지하려는 암묵적 담합 체제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세계적 차원의 질서 재편에 초점을 맞추는 논의는 무의미하고 위험하다. 우리가 그런 질서를 바꿀 힘도 없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한국이라는 일국적 차원에서 어떻게 밑으로부터 세력관계를 재편할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생산관계에서 핵심요소들을 시장에 맡기는 것인데 이것을 밑으로부터 뒤집어엎는, 시민사회의 광범위한 힘의 결집을 통한 정치적 변화까지 이끌어가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 장상환 경상대 교수 = 최 교수의 의견은 나프타(NAFTA)와 유사한 것을 동아시아에 만들자는 것인데 자본은 이동할수록 강자에게 유리하게 된다. 전 세계적인 외환위기나 무역수지 불균형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케인스가 제기했던 세계화폐를 얘기해야 할 때라고 본다.

미국은 주택문제마저도 시장에서 너희들끼리 해결하라는 식이다. 복지가 안 돼 있으니까 사람들이 장래의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 저축을 하고 금융이 발달하게 된다. 한국도 미국처럼 가고 있다. 대안은 금융발달을 억제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사회복지가 확충돼야 한다. 케인스적 복지국가를 복원하되 사회적 소유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오랜 길을 걸어 왔는데 결국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다. 경제운용을 소수의 자본가에게 맡겨서는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공황을 일으키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대안이 아니라는 것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이근식 서울시립대 교수 = 이번 금융위기와 불황으로 신자유주의는 퇴조할 것이다. 세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신자유주의, 즉 자유방임주의라는 것이 적어도 두 가지 면에서 곤란하다는 것을 공감할 것이다. 우선 빈부의 양극화다. 지금 중산층까지 신자유주의에 등을 돌린 상황이다. 이것이 미국에서 오바마가 당선된 배경이다. 둘째는 국제투기자본들의 투기가 너무 심해서 세계경제 전체가 카지노 판이 됐다는 것을 다 같이 느끼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갈 것인가. 상식적으로 복지국가형 수정자본주의로의 회귀는 분명해 보인다. 국가에 의한 공공복지는 상당히 확대될 것이다. 중산층의 요구를 정부가 마다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금융규제가 강화될 것이다. 증권사·투자회사·투자금융·파생상품을 이대로 놔뒀다가는 경제가 망한다는 공감대가 자리잡았다. 그리고 미국 독주에 대한 반발이 이미 시작돼 미국은 현상유지를 할 만한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현 체제유지를 재천명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연장이고 정확히 말하자면 친재벌정책이다. 재벌의 힘을 사회적으로 규제하지 않으면 미국 꼴이 난다. 중요한 건 국민의 건강한 상식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몰상식하다. 4대강 정비에 수십조원을 쓰겠다고 하는데 우선 순위가 몰상식하지 않나. 몇십조원을 들여 강을 파겠다는 것인데 건설사가 고용하는 중장비 기사가 몇명이나 되겠는가. 서민층·빈민층에 혜택이 돌아갈 만한 데에 돈을 써야 한다.

■ 문우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윤창현 교수가 IMF 플러스와 신브레턴우즈를 말했는데, IMF 플러스로 갈 것이다. 그런데 IMF 강화는 우리에게 상당히 위험스러운 부분이다. IMF가 강화되면 유동성 공급을 더 독점하게 돼 향후 우리가 영향력 발휘할 수 있는 지역협력체 형성 가능성이 상당히 줄어들게 된다. 김상조 교수가 국제통화체제를 신경쓰지 말고 일국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했는데 감정적으론 저도 그렇게 느끼지만 동의할 수는 없다. 약소국이 제일 영향력을 많이 발휘할 수 있는 체제가 지역협력체이기 때문이다.

■ 박복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세계경제의 불안정성 관리는 앞으로 상당기간 국제체제가 아니라 한 나라 차원에 맡겨질 가능성 대단히 크다. 이와 관련해 위험관리에 관한 정부의 역할이 대단히 강화돼야 한다. 80년대까지는 발전의 리더로서 정부 역할이 강조됐다면 앞으로는 위험 관리자로서 정부 역할이 중요시된다. 공정위·금감원·국세청 등 사적 이익의 횡포를 막고 공익을 유지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들이 있지만 불행하게도 규제자·견제자로서의 역할을 거의 못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소득불평등 문제는 시장 만능주의에서 오는 것이다. 물론 시장도 그 역할이 있지만 모두 해결해줄 수는 없고 사회 구성원들이 시장의 효율성 외에 다양한 가치들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시장 효율성, 시장 만능주의를 비판하는 다양한 계층과 지식인이 있는데 자신들이 주장하는 가치가 뭔지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런 가치들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있을 때만 신자유주의가 극복되는 것이다. 국가 개입을 늘리자는 것만으로는 극복이 안 된다.

■ 구춘권 영남대 교수 = 국제체제를 디자인한다 해도 미국의 어마어마한 군사력 우위가 존재하고 일정한 전략 구상이 작동하고 있는 한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미국은 동아시아에 철저히 분할지배 정책을 쓸 것이다. 이에 대한 고려 없이 지역통합이 심화될 것이라고 하는 주장은 대단히 학구적이고 탁상 공론에 불과하다. 세계적 차원의 어마어마한 사회적 양극화가 존재하는데 세계평화가 올 것을 기대하는 것은 환상이다. 전 세계 28억명이 하루에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간다. 미국은 이런 지역을 자본주의 체제로 차단하고 봉쇄하는 것을 21세기 전략의 핵심으로 둘 것이다. 이 지역을 어떤 방식으로 포섭하고 통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때다.

■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 = 김상조 교수가 우리를 작은 나라라고 했는데 그렇게 작지도 않다. GDP로 치면 세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의 큰 움직임에 대해서 논의하고 그에 대해서 합의를 시도해야 한다. 핵심은 유동성 공급과 아시아 외환보유액을 어떻게 할 것인가다. 동아시아에 외환보유액이 많은 이유가 바로 ‘차이메리카(중국과 미국)’ 때문이다. 이것을 역내 개발에 쓸 수 있으면 아시아 통화위기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대외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잘못된 유인책이라든가 파생상품 규제를 해야 한다. 당장은 공적자금을 들여서 빨리 금융부실을 털어내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소득 재분배를 넘어 자산 재분배가 필요하다. 군 단위의 공동체가 기금을 만들거나 해서 공동으로 토지라든가 문화유산을 소유하고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는 정책들이 나와야 한다. 철도·전기·수도·우편·가스 등 네트워크 산업은 공공성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대혼란이 끝난 30년 후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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