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위기 속 ‘달러 초강세’, 극단적 비관에서 벗어나 보자면…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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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고 어스름이 내려앉으면 내게 다가오는 것이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프랑스에서는 이때를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한다. 석양의 시간은 익숙함과 낯선 위협 사이를 모호하게 보여준다. 이쪽인지 저쪽인지 단정짓기 힘든 시간이다. 외환시장의 발작이 출현했다. 원·달러 환율이 치솟자 금융위기와 외환위기를 떠올리는 투자자들이 늘어났고, 투자자들은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다. 달려오는 늑대가 곧 우리를 덮칠 거란 두려움이 팽배해지고 있다. 1400원이란 숫자가 주는 공포이다.

아직은 석양의 눈부심 때문에 구분하기 쉽지 않지만, 언뜻 보기에 늑대는 아닌 듯하다. 늑대가 덮친다고 보기에는 우리 기업이나 금융기관 모두 해외 자금 조달이 너무 순조롭다. 대외적으로 국가 신용도를 가늠할 수 있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미동도 없다. 외환위기는 기업이 자금 조달을 못해 출현했고, 금융위기는 금융기관들이 달러 조달을 못해 발생했으나 정부의 개입으로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둘 다 달러의 대규모 유출이 원·달러 환율 상승을 이끌었기에 위험했던 것이다. 현 상황은 이와 다르다. 원·달러 환율을 이유로 달러 대비 원화가 약세라 해서 무조건 위기적 상황으로 예단해서는 안 된다.

개와 늑대는 겉모습이 매우 비슷하지만 삶의 방식은 다르다. 개는 늑대와 달리 인간과 함께 산다. 원화 약세라는 외피는 비슷하지만, 과거와 좀 달라 보이는 이유는 모든 통화 대비 달러가 강하다는 데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하는 것은 유로화 대비 달러 강세이다. 모든 면에서 유럽이 처한 상황은 달러 강세를 지지한다. 일단 경제 성장에 차이가 크다. 환율은 길게 보면 성장률 차이에 따라 결정된다. 에너지 가격 상승의 직격탄으로 인해 유럽 경제는 깊은 수렁에 빠졌고 이를 유로화가 반영해 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멈추지 않으면, 이러한 상황이 개선되기 힘들고, 그 결과 유로존 침체는 더 가속화될 거란 게 지배적 의견이다. 하지만 경제 및 금융시장은 변화에 적응한다. 러시아가 가스 밸브를 잠그겠다고 협박하는 시기에 유럽의 가스(네덜란드 TTF) 가격은 8월26일 메가와트시(㎿h)당 339유로를 정점으로 9월12일 ㎿h당 190.6유로까지 43.8% 내렸다. 겨울철 추위를 버티기 위해 유럽 각국은 비워 뒀던 가스 저장고를 채워갔고 이제 85% 이상 진행되었다. 이미 유럽은 러시아에서 노르웨이로 가스 공급을 대체해가고 있다. 러시아산 가스 비중은 줄고, 노르웨이산 비중은 늘고 있다. 더 큰 변화는 미국, 카타르 등에서 들어오는 LNG 수입이다. 항구 화재로 지난 6월부터 수출이 중단되었던 미국 프리포트항 수출도 11월8일이면 재가동된다. 이후 2~3년 내에 미국은 서유럽 LNG 수출로 돈을 벌고, 러시아는 서유럽에 대한 에너지 영향력을 거의 상실해 갈 것이다.

에너지 위기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이 아니라면, 유로화 약세도 극단적 비관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시장은 먼저 움직인다. 1유로당 1.2달러를 넘어섰다가 이제 1유로당 1달러가 깨지자 달러를 유로로 바꿔 무엇이든 사자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유럽 특수는 명품 백·시계에서 부동산까지 확대되고 있다. 과거 일본이 엔화 강세 시기에 미국 자산을 쇼핑할 때와 마찬가지 분위기다. 뭐든 과하면 변화가 시작된다. 에너지로 촉발된 유로존 경기 침체가 다소 진정 기미를 보인다면, 원·달러 환율 급등세도 진정될 것이다. 물가를 잡기 위해 일정 부분 용인해왔던 미국의 스탠스도 물가가 잡히면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성장을 이끄는 글로벌 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달러 환산 수익 감소를 언제까지라도 용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개는 빙하기에 회색 늑대가 길들여져 가축이 되었다고 한다. 개와 늑대의 DNA는 사람을 좋아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는 말도 있다. 그만큼 유사하다. 팻 시프만은 <침입종 인간>에서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가 생존한 이유를 ‘인간이 늑대를 가축화해 개로 만들어 사냥’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고생인류가 멸종하고, 우리가 살아남은 이유는 더 큰 동물을 더 많이 사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질문의 방향을 돌려야 한다. 저 멀리 황혼 속에서 내게로 오는 형체가 개인지 늑대인지 식별하기보다, 그것이 무엇이든 길들일 수 있느냐에 집중해야 한다. 에너지 가격이 잡히면, 달러 초강세는 진정되고, 투자자는 적응할 수 있다. 황혼이 어둠이 되고, 아침이 오는 시간에 그것이 무엇이든 인간의 옆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을 거라 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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