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주택대책

집값 높다면서···윤석열 정부, 재건축·재개발 속도전

비민주적 개발·저소득 가구 소외 우려

10일 정부가 내놓은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의 핵심 중 하나는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규제완화의 효과가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재건축·재개발이 지연되는 근본 원인은 공사비 상승으로 인한 낮은 사업성에 있다는 것이다. 절차를 간소화함으로써 비민주적인 개발이 이루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의 아파트 단지 모습. 성동훈 기자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의 아파트 단지 모습. 성동훈 기자

재개발 재건축 규제완화 대책 보니

이날 정부 발표에 따르면, 앞으로 준공 30년이 넘은 주택은 안전진단 통과 전이라도 재건축 사업에 착수할 수 있게 된다. 안전진단은 사업시행인가 전까지만 통과하면 된다. 지금까지는 안전진단 통과가 재건축 사업의 첫 관문었는데, 앞으로는 안전진단과 정비계획 수립, 추진위원회 구성 등 여러 단계를 동시에 밟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패스트트랙’ 제도 도입에 서울시 신속통합기획까지 적용될 경우 재건축 사업기간이 5~6년 정도 단축될 것으로 내다봤다.

사업성 개선 대책도 내놨다. 지금까지는 관리처분인가를 받아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보증 지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사업 초기인 조합설립 단계부터 50억원 이내로 기금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재건축 부담금 산정 시 초과이익에서 제외되는 비용(기부채납 토지 기여분)도 완화된다. 예컨대 1인당 1억1000만원이었던 A단지 분담금은 오는 3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완화법이 시행되면 5500만원, 이번 대책이 적용되면 최대 2800만원까지 낮아지게 된다.

재건축 패스트트랙 절차. 국토교통부 제공

재건축 패스트트랙 절차. 국토교통부 제공

재건축 뿐 아니라 재개발 문턱도 낮춘다. 노후빌라와 신축빌라가 뒤섞여있어 재개발이 어려웠던 지역들을 위해 노후도 요건을 현행 3분의 2에서 60%으로 완화한다. 여기에 재정비 촉진지구로 선정되면 50%만 동의해도 재개발이 가능해진다. 노후도가 높은 지역은 접도율이나 밀도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도 사업 추진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이로 인한 재개발 사업 대상은 최대 10% 정도 증가, 사업 기간은 2~3년 단축될 것으로 정부는 기대했다.

“규제 푼다고 바뀔 시장 아니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주택공급 선행지표인 인·허가는 29만4000만호로 전년대비 37%, 착공은 17만호로 전년 대비 52% 각각 감소했다. 정부는 이러한 공급위축이 장기화될 경우 건설산업과 지역경제에 전반적인 악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봤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수도권에는 주택을 신축할만한 땅이 없기 때문에, 정비사업 규제 완화로 공급을 늘리겠다는 것이 이번 정책의 골자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대책의 효과가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정비사업 지연의 근본 원인은 공사비 상승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인데, 이에 대한 근본 대책은 없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비사업 전문가는 “안전진단을 통과한다고 해도 사업성 악화로 10년 이상 지연되는 사업장이 수두룩하다”며 “조합 설립 이후에도 세입자냐 집주인이냐, 추가분담금이 얼마냐에 따라 이해관계 조율이 쉽지 않은데 안전진단 통과 없이 착수를 ‘패스트트랙’이라 할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1월 안전진단 구조안전성 점수 비중을 50%에서 30%으로 하향했는데, 이로 인해 안전진단 문턱 자체가 이미 낮아진 상태라는 지적도 있다. 1기신도시 등이 적용 대상인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도 안전진단 면제 특례가 포함돼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1·10 공급대책 주요 내용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국토부 제공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1·10 공급대책 주요 내용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국토부 제공

일각에서는 속도를 앞당기기 위해 절차를 간소화하는 과정에서 비민주적인 개발이 이루어질 가능성을 우려했다. 예컨대 이번 대책에는 신탁방식 사업의 사업계획인가 시행 시 전체회의 의결과 주민동의(토지주 2분의 1, 면적 2분의 1)가 있어야 한다는 규정에서 ‘주민동의 요건’을 삭제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업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반대하는 사람들 현금청산해서 내보내겠다는 것”이라며 “특히 재개발 구역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아파트에서 사는 것을 감당할 수 없는데, 주민 의견수렴 기준을 낮추는 규제완화는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집값 높다면서… 상승 유도하는 대책

당장은 정비사업 규제완화의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지만, 향후 시장이 되살아났을 때는 난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정부는 지금도 주택가격이 높다고 말하면서 전방위적으로 재개발·재건축 조건을 완화하겠다는 것은 결국 주택 가격을 올리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임기 내 착공’같은 단기 목표에 매달리기보다, 시장 상황과 도시 계획을 고려한 장기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지금 완화된 규제로 정비사업이 추진된다 해도 공급까지는 최소 10~15년이 걸린다”라며 “그때 시장 상황이 안좋은 상태에서 공급물량이 너무 늘어나면 컨트롤이 안된다. 시장 하락을 가속화하는 요인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 소장도 “재개발 노후도 요건을 50%까지 낮춘다는 말은 새집이 50%나 있어도 이를 허물고 다시 지을수 있다는 뜻”이라며 “인구 감소가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무분별한 재건축·재개발을 유도하는 것은 미래 세대를 고려하지 않는 자원낭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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