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도 텅 빈 무더위쉼터…“에어컨 틀 줄 몰라”, “회원만 가는 거 아냐?”

김기범 기자    강한들 기자
지난 6일 경남 밀양의 한 노인정에 한 노인이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들어가고 있다. 김기범 기자.

지난 6일 경남 밀양의 한 노인정에 한 노인이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들어가고 있다. 김기범 기자.

“에어컨 틀 줄 몰라. 누가 틀 줄 아는 사람이 와야 틀지.”

폭염이 전국 대부분 지역을 덮쳤던 지난 6일 무더위쉼터로 지정된 경남 밀양 상동면의 한 노인정에서 만난 90대 노인 A씨는 무더위 속에서도 에어컨을 틀지 않는 이유에 이렇게 말했다. A씨는 다른 주민들을 기다리다 목이 탔는지 대화를 하던 중 물을 마시러 자리를 떴다.

낮 기온이 31도를 기록했던 지난 7일 서울 도봉구 생잇들 어린이공원에는 바로 옆 무더위쉼터인 ‘청학경로당’을 두고도 노인 10여 명이 나무 그늘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B씨(79)는 “경로당에는 회원 등록을 해야 가는 것 아니냐”며 “회원이 아니어서 경로당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폭염이 전국을 덮친 지난 6일과 7일 경향신문이 방문한 서울·경남·경북의 무더위쉼터 30여 곳 가운데 제대로 기능을 하는 곳은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경남 밀양에서는 지난해 16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해, 인구 10만 명당 온열질환자 발생 수가 전국 평균의 5배가 넘는다. 2012년에서 2020년까지 온열질환자 발생 장소 중 집에서 발생이 가장 많았던 지역이 서울 도봉구(42명)다. 시민들 피부에 와닿는 기후위기 적응 정책으로, 온열 질환 피해자를 크게 줄일 수 있는 대책임에도 실효성은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노인 3명이 지난 7일 서울 도봉구 생잇들 어린이 공원 나무 그늘 아래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다. 뒤편에 보이는 건물은 ‘무더위쉼터’로 쓰이는 청학경로당이다. 강한들 기자

노인 3명이 지난 7일 서울 도봉구 생잇들 어린이 공원 나무 그늘 아래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다. 뒤편에 보이는 건물은 ‘무더위쉼터’로 쓰이는 청학경로당이다. 강한들 기자

이용자 없는 시골 무더위 쉼터…실효성 낮은 ‘야외’ 쉼터 비율도 높아

9일 행정안전부가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에 제출한 ‘전국 시도별 무더위쉼터’ 현황을 보면 전국의 무더위쉼터는 6만247곳 중 실내는 5만3411곳, 실외는 6836곳이다. 대부분 지역의 무더위쉼터는 마을회관, 경로당, 주민센터 등으로 이뤄져 있다.

지난 6일 밀양 농어촌 마을에서는 무더위쉼터까지 가까워도 5~15분, 멀면 20분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 폭염을 뚫고 노인이 이동하기엔 먼 거리다. 몸이 불편한 노인들의 경우 시원한 경로당까지 가지 못하고, 집에서 더위를 견뎌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굳게 닫혀있던 경북 밀양 지동의 무더위쉼터인 지동무더위쉼터. 김기범 기자

굳게 닫혀있던 경북 밀양 지동의 무더위쉼터인 지동무더위쉼터. 김기범 기자

이런 실정이다 보니 농어촌 마을들의 무더위쉼터들은 이용 실태가 천차만별이다. 전기료 부담 없이 더위를 피할 수 있음에도 텅 빈 무더위쉼터가 여러 곳 있었다. 민가가 밀집돼 있고, 경로당이 가까운 동네에선 10명이 넘는 노인들이 에어컨을 틀고, 휴식을 취하는 경우도 있었다. 박정예씨(88)는 “우리 마을은 많이 모이면 최대 18명 정도가 모여서 더위를 피하는데 무척 많은 편”이라며 “다른 마을들은 몇 명 안 모이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전체 무더위쉼터의 11.35%를 차지하는 실외 무더위쉼터는 폭염에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장소가 되기는 어렵다. 대체로 마을 정자나 나무 그늘 등을 무더위쉼터로 지정해놓은 것일 뿐이라, 공무원의 실적 쌓기용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경향신문이 찾았던 경북 청도군 청도읍의 오누이공원, 경남 밀양 시내의 밀양아리랑 대공원은 모두 정자가 무더위쉼터로 지정된 곳이지만 찌는 듯한 무더위로 인해 방문객이 거의 없었다. 그 밖의 마을 정자, 나무 그늘 등 무더위쉼터로 지정된 곳에서도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타 시도의 경우 실외 무더위 쉼터 비율이 10% 미만인 데 비해, 경남도(전체 8055곳 중 1577곳, 19.17%), 경북도(6328곳 중 1211곳, 19.58%)는 유독 실외 무더위 쉼터가 많다.

주민센터·행정복지센터 등의 경우 무더위쉼터로 지정돼 있고, 상시 에어컨이 틀어져 있지만 실효성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경향신문이 방문한 주민센터들에선 매우 적은 수의 민원인만이 담당 공무원 앞에 앉아 민원을 처리하고 있을 뿐 더위를 피해 방문한 이는 단 한 명도 만날 수 없었다.

지난 6일 오후 폭염 속에서도 더위를 피해 찾아온 이들이 전혀 없었던 경남 밀양 한 행정복지센터의 모습. 김기범기자

지난 6일 오후 폭염 속에서도 더위를 피해 찾아온 이들이 전혀 없었던 경남 밀양 한 행정복지센터의 모습. 김기범기자

‘회원’인지 의식해 안가는 서울 무더위쉼터…코로나 영향도 계속

지난 7일 경향신문이 서울 도봉구에서 방문한 11곳 무더위쉼터 중 3곳은 아예 문이 잠겨 있었다. 한 아파트 내 경로당에는 “정회원만 이용 가능하고, 비회원은 출입을 금지한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이날 방문한 경로당들에서는 10명 안팎의 노인들이 모여서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금성윗들어린이공원 내 노인정에서는 체조 강의를 듣는 노인들이 있었다. 오봉경로당 등에는 최대 2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TV를 보고, 화투도 치는 등 친목을 다지기도 했다.

무더위쉼터 이용자 대부분은 지역 노인회 회원이었다. 월 5000원 정도의 회비를 내는데 회비를 낼 수 있다고 마음대로 가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봉경로당을 이용하는 D씨(88)는 “경로당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회원이고, 노인 수가 많아서 요즘 회원을 더 받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청학경로당 관계자는 “회비를 안 내는 분들은 ‘회비를 안 내도 괜찮고, 무더위 쉼터로 운영돼서 누구든지 와서 쉴 수 있다’고 해도, 절대 안 들어오신다”라며 “빚을 지기 싫어하시는 거 같다”라고 말했다.

노인정에서는 70대 초반도 ‘젊은’ 편이다. 도봉1동 오봉경로당과 약 30m 정도 떨어진 길거리 그늘에서 더위를 피하던 E씨(73)는 마스크를 여전히 끼고 있었다. E씨는 “집에서는 전기세가 많이 나와서 에어컨을 잘 안 튼다”라고 말했다. 인근 무더위쉼터는 이용하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E씨는 “경로당에 사람이 너무 많다”라며 “나이 많으신 어른들이 많이 가는데, 거기까지는 잘 안 간다”라고 답했다.

코로나19의 여파도 아직 남아 있었다. 약수경로당은 9일까지 코로나19 확산 방지, 예방을 위해 임시 휴관한 상태다. 방학1동 노인정은 코로나19 발생 이전에는 회원이 100여 명이었으나, 지금은 60명 정도로 줄었다. 방학1동 노인정 관계자는 “돌아가신 분들도 있고, 코로나19 감염이 우려될 때 안 나오시던 분들이 계속 안 나오시는 영향도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서울 도봉구 이수A 경로당 무더위쉼터 문이 지난 7일 오후 2시쯤 잠겨 있다. 강한들 기자

서울 도봉구 이수A 경로당 무더위쉼터 문이 지난 7일 오후 2시쯤 잠겨 있다. 강한들 기자

무더위쉼터로 쓰이는 서울 도봉구 성삼경로당이 지난 7일 잠겨 있다. 강한들 기자

무더위쉼터로 쓰이는 서울 도봉구 성삼경로당이 지난 7일 잠겨 있다. 강한들 기자

행정동 간 격차가 43.6배까지…“제도 형평성 고려해야”

지역별 특성과 인프라에 따라 무더위쉼터가 100배 이상 격차가 나기도 한다는 점도 문제다. 국토연구원 보고서를 보면 100명당 무더위쉼터 수는 경남도의 경우 행정동 간 격차가 최대 43.6배에 달하는 예도 있다. 실효성이 낮은 실외 무더위쉼터도 포함한 결과다.

읍면동 내에 무더위쉼터를 아예 지정해 놓지 않았거나 1~2곳만 지정해 놓은 곳도 많다. 행정안전부 국민 재난 안전 포털을 보면 경북 상주 지천동, 김해시 장유동, 문경시 불정동의 경우 무더위쉼터가 한 곳도 없다. 김해시 강동, 수가동, 신문동, 문경시 우지동, 밀양 남포동 등은 경북, 경남에서 동 단위면서도 무더위쉼터가 한 곳뿐이다. 대중교통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의 경우 걸어서 20~30분 거리를 가야 무더위쉼터가 있다 보니 폭염이 덮친 날 무더위쉼터는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국토연구원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지역의 한정된 예산으로 인해 무더위쉼터, 그늘막 설치 등과 같은 가장 대표적인 폭염 대비책도 지역에 따라 불평등하게 적용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국가 차원에서 지역의 제도적 형평성에 대한 부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1.5도 너머 기후위기적응을 말하다] 시리즈가 더 궁금하다면

① 피할 수 없는 기후위기, 한국 사회 잘 적응하고 있습니까

② 기회가 된 기후적응, 정보가 위기를 바꾼다

③ “바람직한 기후위기 적응, 스스로 역량 키워야”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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