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방지법’이 사전검열법? 고양이 영상 올려보니, 1초 후 채팅방에 공유

이유진 기자

“필터링 기능 적용···검열로 보기에는 난점”

카톡 오픈채팅 등 일반 공개 정보에 한정

문자·이메일 등 사적인 대화는 대상 아냐

텔레그램 등 빠져 실효성 확보 논의 필요

서울 광화문 한 사무실에서 직장인이 인터넷으로 텔레그램을 검색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광화문 한 사무실에서 직장인이 인터넷으로 텔레그램을 검색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0일 시행된 ‘n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정치권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연매출액 10억원 이상 또는 일평균 이용자 10만명 이상 인터넷 사업자가 콘텐츠 유통시 불법 촬영물 여부를 사전에 확인’하도록 규정한 이 법은 시행 이후 사생활 침해, 검열 등 논란에 휩싸였다. 인터넷 커뮤니티 여론을 등에 업은 국민의힘은 법 재개정을 예고했다. 하지만 정치권이 사실과 오해를 혼동하며, 현장 혼란을 더하고 있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법안을 둘러싼 쟁점과 진위를 살펴봤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지난 12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n번방 방지법을 ‘검열의 공포’와 연관 지으며 “귀여운 고양이, 사랑하는 가족의 동영상도 검열의 대상이 된다면, 그런 나라가 어떻게 자유의 나라겠습니까”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발언은 필터링 기술을 ‘검열’로 오인한 데서 비롯한 오해라는 게 정부와 관련업계의 설명이다.

실제로 ‘귀여운 고양이’ 영상은 검열 대상일까. 13일 기자가 직접 카카오톡 오픈채팅 그룹채팅방에 영상을 업로드해 봤다. 영상을 채팅방에 올리자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방심위에 불법촬영물 등으로 심의·의결한 정보에 해당하는지 검토중입니다’라는 안내문이 게시됐다. 이후 약 1초 만에 고양이 동영상은 정상적으로 채팅방에 공유됐다.

13일 기자가 직접 카카오톡 오픈채팅 그룹채팅방에 고양이 영상을 업로드했다. 필터링 기능 작동 과정에서 안내문이 게시됐지만, 약 1초 만에 정상적으로 대화방에 공유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카카오톡 캡쳐

13일 기자가 직접 카카오톡 오픈채팅 그룹채팅방에 고양이 영상을 업로드했다. 필터링 기능 작동 과정에서 안내문이 게시됐지만, 약 1초 만에 정상적으로 대화방에 공유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카카오톡 캡쳐

필터링 기능은 딥러닝을 이용, 공유된 영상물의 특정 정보를 추출한 뒤 정부가 보유한 불법촬영물 데이터베이스(DB)와 대조해 불법촬영물을 걸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일반에 공개돼 유통되는 정보’ 중 모든 영상물에 대조작업이 진행되지만, 불법촬영물이 아니라면 용량에 따라 수초에서 수십초 내로 전송이 완료된다. SNS에 검열 사례로 등장하는 채팅방 사진은 DB 대조작업이 진행되는 모습을 캡쳐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필터링 조치와 ‘사전검열’은 다소 차이가 있는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필터링 기능 자체를 검열로 규정하기엔 이미 다수의 플랫폼 서비스가 저작권 침해, 혐오표현 확산을 막기 위해 유사한 기능을 사용 중”이라며 “이용자들의 심리적 거부감은 이해하지만, 정치권에서 지나치게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사적 대화를 검열한다는 주장도 사실과 거리가 멀다. 방통위 관계자는 “이번 개정안은 인터넷 사업자가 관리할 의무 대상을 ‘정보통신망을 통해 일반에 공개돼 유통되는 정보’로 한정하고 있다”며 “문자, 메신저 대화, 이메일 등 사적 대화는 관리 의무 대상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카톡 오픈채팅은 검색을 통한 접근이 가능하고, 별도의 승인 과정 없이 참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사적 대화로 볼 수 없어 의무 대상에 포함됐다”고 말했다.

여성을 협박해 성 착취 불법 촬영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지난해 3월25일 검찰 송치를 위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이석우 기자

여성을 협박해 성 착취 불법 촬영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지난해 3월25일 검찰 송치를 위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이석우 기자

‘검열’보다는 실효성에 방점을 둔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n번방 사건의 발단이 됐던 텔레그램이나 불법촬영물 유통 온상인 디스코드 등 해외 사업자가 규제 대상에서 빠졌다는 점이 우선 지적된다. 방통위에 따르면 이들 사업자는 사전검열 우려로 인해 사적 대화방을 필터링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법망을 피하게 됐다.

새로 제작된 성착취물 등을 걸러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꾸준하다. 기존에 적발·신고된 불법촬영물을 DB에서 대조해 필터링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다만 법 제정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 한정됐던 불법촬영물 유포 방지 책임을 인터넷 사업자에게 부과시킴으로써 영상의 재유포로 인한 2차·3차 피해 방지가 가능하게 됐다는 평도 있다.

관련업계는 기술적 불안정성으로 인한 처벌을 더 걱정하고 있다. 충분한 기술 검증 없이 필터링 기술이 적용됐고, 이로 인해 서비스 오류가 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지난해 시행된 ‘넷플릭스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네이버, 카카오, 구글, 넷플릭스 등 부가통신사업자에 서비스 안정성 확보 의무를 부여하고 시정명령 및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결국 사업자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 역시 오해라고 설명한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최근 배포한 넷플릭스법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공익적 목적으로 신속히 서비스 제공이 필요한 경우로 판단할 경우엔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했다”며 “n번방 방지법에 따른 기술적 조치도 이에 해당하는 만큼 사업자 우려가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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