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카카오 먹통사태에 시시비비 못 가린 채 ‘재발방지 시정 권고’만

이윤정 기자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전개 과정.   과기정통부 제공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전개 과정. 과기정통부 제공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 10월 15일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발생한 카카오·네이버 등 부가통신서비스 장애에 대한 조사 결과를 6일 내놨지만 알맹이 없이 시정 요구사항 정도만 내놓는 수준에 그쳤다. 특히 화재 원인 등에 대한 새롭게 밝힌 내용은 없고 그간 알려진 것들만 재확인한 차원이었다.

과기정통부는 사고 원인보다는 앞으로 ‘카카오 먹통 사태’와 같은 대규모 온라인 서비스 마비가 일어나는 것을 막는 방안에 초점을 뒀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시정조치는 권고 사항일 뿐이어서 기업들이 따르지 않아도 법적 제재가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방송통신위원회, 소방청과 함께 카카오 등의 장애 사태조사 결과와 시정 요구 관련 브리핑을 열고 “SK C&C, 카카오, 네이버 3사에게 책임 있는 조치와 대책마련 등 후속조치를 시행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각사가 제출한 조치 결과, 향후 계획, 재난예방·복구에 대한 의견 등은 추후 정책방안 마련에 반영할 계획이”이라고 덧붙였다.

사고 직후 정부는 이 장관을 본부장으로 ‘방송통신재난 대책본부’를 구성, 15차례 회의를 통해 사고 원인 조사와 대책 마련을 해왔다. 하지만 이날 발표한 조사 결과에는 기존에 알려졌던 사고 경과와 비교해 사실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특히 가장 중요한 ‘발화 원인’이 빠졌다. 과기정통부 측은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와 관계 부처가 발화 원인 등을 정밀조사 중”이라며 “현재로서는 정밀조사 결과 발표 시기를 특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당초 국과수 등은 발화 원인을 알아내는 데 3주 정도 소요될 것으로 봤지만, 화재가 발생한 지 2달이 지난 현재까지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과기정통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 10월 15일 오후 3시19분 경기 성남시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지하 3층 배터리실에서 화재가 발생할 당시 배터리 온도 등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BMS)이 있었으나 발생 직전까지 이상 징후는 포착되지 않았다. SK의 BMS 장치가 무용지물이었던 셈이어서 관리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BMS 오작동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며 “SK C&C 측에 열화상 카메라 등 다른 센서로 화재를 미리 감지할 수 있는 멀티 시스템을 갖출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특히 SK C&C는 2016년 가스 소화가 어려운 리튬이온 배터리를 설치한 이래 초기 진압이 어려운 해당 배터리에 특화된 방화 조처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소규모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화재가 발생한 경우 가스로 진압이 가능하지만 대규모 시설의 경우 ‘살수’가 불가피하다.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데이터센터는 리튬이온 배터리가 일부 ‘무정전 전원 장치(UPS)’와 물리적으로 완벽히 분리되지 않은 공간에 있었다. 게다가 배터리실 천장에 전력선이 있어 살수로 인한 2차 피해가 예상됐지만, 특정 구역의 차단 스위치를 식별할 수 없어 소방청은 전체 전력을 차단하게 됐다. 그 결과 카카오 서비스가 거의 전부 차질을 빚었다.

‘먹통’ 수준의 서비스 마비가 발생한 카카오의 경우 장애 복구에 127시간 33분이 소요됐다. 서버를 다른 데이터센터와 연동하는 데이터 이중화 조치는 있었지만, 이중화 기능을 관리하는 ‘도구의 이중화’는 판교 데이터센터 안에서만 이뤄져 서비스 장애 복구 지연을 초래했다. 카카오톡, 카카오 인증 등 핵심 기능이 판교 데이터센터에 집중돼 있던 점도 피해를 키운 원인이다.

네이버는 데이터센터 간 이중화 조치로 서비스 중단은 없었지만 다른 데이터센터로 서비스 전환 과정 등에서 일부 오류가 발생했다. 일부 기사 댓글 이용불가 현상 등 주요 서비스·기능 대부분은 약 20분~12시간 내 정상화됐다.

과기정통부는 카카오에 대해서는 이중화 운영·관리 도구를 현행 데이터센터 간 ‘동작(액티브)-대기(스탠바이)’에서 ‘동작-동작’ 수준으로 높이는 등의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또 카카오가 이번 장애에 따른 국민 피해를 구제할 원칙과 기준을 설정하고, 보상 계획을 수립할 것도 주문했다.

이 밖에 정부는 SKC&C와 카카오, 네이버에 데이터센터 전소, 네트워크 마비 등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훈련 계획을 세운 뒤 모의 훈련을 하고 결과를 보고할 것도 요구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번 사고와 관련해 카카오가 피해접수 전담 창구를 개설하고 피해보상 협의체를 마련해 실질적인 구제방안을 수립·이행하게 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또 앞으로 유사 통신 장애가 일어났을 때 즉각적인 이용자 고지와 실효성 있는 피해 구제를 위한 법령·이용약관 등 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한편 카카오는 유료서비스(1만4918건), 금전적 피해를 언급한 무료 서비스(1만3198건)를 비롯해 총 10만5116건의 피해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카카오는 7일 열리는 연례 개발자 컨퍼런스 ‘이프 카카오 데브 2022’에서 사고 발생 원인 분석을 공개할 예정이다.

카카오 관계자는 “피해 상황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보상 대책을 마련한 이후에 SK C&C 측과 구상권 논의를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며 “서비스 마비 사태와 관련된 내용은 이프 카카오에서 상세하게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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