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에는 폭탄이 아니라 핵폭탄” 2배 오른 등유값에 보일러도 못켜

김현수 기자

경북 예천군 호명면 가보니

60만원어치 보름도 안돼 4분의1 사라져

“낮엔 보일러 끄고 종일 마을회관서 지내”

경북 예천군 호명면 황지리 부녀회장 김화자씨(73)가 26일 오전 자신의 기름보일러 눈금 칸을  가리키고 있다. 김현수 기자 사진 크게보기

경북 예천군 호명면 황지리 부녀회장 김화자씨(73)가 26일 오전 자신의 기름보일러 눈금 칸을 가리키고 있다. 김현수 기자

“난방비 폭탄예? 촌에는 옛날부터 폭탄이 아니라 핵폭탄이니더.”

경북 예천군 호명면 황지리 부녀회장 김화자씨(73)가 26일 오전 자신의 기름보일러 눈금 칸을 가리키며 말했다. 김씨는 이달 초에 등유 2드럼(400ℓ)을 넣었다. 비용은 한 드럼당 30만원 정도로 총 60만원이 들었다. 그런데 보름도 안 돼 기름 4분의 1이 사라졌다. 보름 동안 15평 남짓한 주택 난방비로 15만원을 쓴 셈이다.

그런데도 김씨의 집안은 훈기가 돌지 않았다. 난방비 부담에 햇볕이 드는 낮 시간대에는 보일러를 끄고 해가 떨어지는 오후쯤 보일러를 켜서다. 이날 김씨의 보일러 온도조절기 온도는 7도로 나왔다.

김씨는 “예전에는 한 드럼 넣는데 18만원 정도였는데 요즘은 배로 든다”며 “옷으로 꽁꽁 싸매고, 전기장판 틀어놓고 그렇게 버틴다”고 말했다.

120가구 정도가 사는 황지리에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다. 대부분 가정이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다 보니 도시가스보다 난방비 부담이 배로 든다.

경북 예천군 호명면 황지리 부녀회장 김화자씨의 보일러 온도조절기. 온도조절기 온도는 7도로 나왔다. 김현수 기자 사진 크게보기

경북 예천군 호명면 황지리 부녀회장 김화자씨의 보일러 온도조절기. 온도조절기 온도는 7도로 나왔다. 김현수 기자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경북지역 실내등유 리터당 평균 판매가격은 1530원이다. 지난해 12월(1076원)보다 무려 454원이 올랐다. 2020년 12월에는 817원으로 2년 사이 등윳값이 두 배 정도 오른 것이다. 특히 지난해 1월 1075원에서 7월 1682원으로 607원이나 급격히 오르기도 했다.

핵폭탄급 난방비에 농촌에서는 기름보일러와 연탄보일러를 함께 사용하는 등 난방비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창순 예천군 호명면 본리 이장은 “온수는 기름보일러를 사용하고 난방은 연탄보일러를 사용한다”며 “서울에서 난방비로 난리라 카는데(그러는데) 도시가스 안 들어오는 촌에는 일상”이라고 말했다.

경북지역 도시가스 보급률은 70%다. 125만8286가구 중 88만600가구 만이 도시가스가 혜택을 누리고 있다. 부담스러운 난방비는 농촌 주민들을 마을회관에 머물게 한다. 마을회관은 시·군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운영돼서 마을에서 가장 따뜻한 곳으로 꼽힌다.

경북지역 도시가스 보급률. 경북도 제공 사진 크게보기

경북지역 도시가스 보급률. 경북도 제공

이상운 황지리 이장은 “어르신들이 낮에 집 보일러를 끄고 종일 마을회관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다”며 “마을회관에서 온수로 머리를 감으시기도 한다”고 했다.

연료비 인상은 저소득층에 더욱 부담을 준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자료를 보면 지난해 1~3분기 소득 1분위(하위 20%)가 전기료와 도시가스, 액화석유가스(LPG), 등유, 연탄 등 연료비로 지출한 금액은 월평균 6만6950원으로 전년 대비 12.4% 증가했다. 이는 전체 평균인 6.7%보다 두 배 가량 높은 증가율로 모든 분위를 통틀어 오름폭이 가장 컸다.

경북도 관계자는 “도시가스 공급을 위해서는 마을 주민들이 도시가스 공급관 공사비 일부를 부담해야 해 어려움이 있다”며 “정부가 전기요금 할인, 에너지 바우처 단가 인상 등을 추진한다는 계획이지만 서민 부담을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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