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하천 넓힌다며 쫓아낸 국내 유일 ‘물고기 마을’…전국서 모시기 경쟁 ‘러브콜’

글·사진 박용근 기자

연간 30만명 찾는 공간...내달 폐쇄

부산·제주 및 해외서 유치 경쟁 치열

지난 1일 자녀 3명과 전북 완주군 이서면 물고기 마을을 찾은 유승현씨 가족이 물고기들에게 먹이를 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 1일 자녀 3명과 전북 완주군 이서면 물고기 마을을 찾은 유승현씨 가족이 물고기들에게 먹이를 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달 2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힐링문화공간 지켜주세요’란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가족들과 전북 완주에 있는 물고기마을로 봄 나들이를 갔다. 난생 처음 신세계를 보았다. 형형색색 물고기들이 사람들을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마음이 평온해지고 착해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2000여명이 찾았고, 연간 27만여명이 방문한단다. 이 작은 시골마을에 괴변이 일어나고 있는데 또랑 좀 넓힌다고 이런 자원을 없애 버린다니 기가차서 말이 안 나온다”고 썼다. 작성자는 “지자체에서 세상에서 하나뿐인 물고기마을의 가치와 비전을 인식해 힐링하고 행복을 만들어가는 곳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켜주시길 원한다”고 호소했다.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이런 청원이 올라온 것일까. 지난1일 오후 전북 완주군 이서면 반교리에 자리잡은 ‘물고기마을’을 찾아 갔다. 마을 입구에 이르자 시골인데도 교통체증이 시작됐다. 평온한 시골마을 2차선 도로는 이곳을 방문한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입구에는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나온 젊은 부부들이 줄을 서 있었다.

물고기마을에 첫 발을 내딛자 발 밑 철망 아래서 물고기들이 입을 쩍쩍 벌리며 퍼덕거리는 게 느껴졌다. 야외 물고기 먹이주기 체험장을 지나치자 수백마리의 물고기떼가 뒤를 따라 왔다. 분명 물고기들은 사람을 경계할 터인데 이곳 물고기들은 달랐다. 어린이들은 이 모습에 탄성과 괴성을 지르며 물고기들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들이 물고기들과 교감하는 모습을 본 부모들은 흡족하면서도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물고기 마을을 찾은 어린이집 원아들이 물고기들에게 먹이를 주며 놀고 있다. 물고기 마을 제공

물고기 마을을 찾은 어린이집 원아들이 물고기들에게 먹이를 주며 놀고 있다. 물고기 마을 제공

물고기 마을 실내에 조성된 가족 낚시 체험장에서 3대가 모여 낚시를 하고 있다. 물고기 마을 제공

물고기 마을 실내에 조성된 가족 낚시 체험장에서 3대가 모여 낚시를 하고 있다. 물고기 마을 제공

전주에서 세 자녀를 데리고 나온 유승현·김보라 부부는 “엄마들 사이에 물고기 마을에 대한 입소문이 나서 찾아 왔다”며 “인간과 대자연이 만나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아이들에게 줄 수 있어 유익했다”고 말했다. 물고기 먹이주기에 한창인 한률군(5)과 서율양(3)은 “물고기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물고기 마을을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실내에 연좌식으로 만들어 놓은 가족 낚시체험장에 들어가 보니 할아버지와 손자, 며느리 등 3대가 마루바닥에 동그랗게 모여 앉아 직경 30㎝의 구멍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10여분이 지나 찌가 꿈틀거리자 손자가 낚싯대를 낚아 챘다. 손바닥 만한 물고기가 펄떡거리며 올라오자 가족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물고기마을은 다음달 문을 닫게 됐다. 인근의 하천 확장사업이 시작되면서 시설 절반 정도가 수용당했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들은 물고기마을 보전을 위해 완주군과 하천을 우회시켜 확장하는 방안을 협의했으나 다른 토지주들의 반발로 무산됐고, 결국 토지수용이 결정됐다.

물고기마을 보존위원회에 따르면 1만여㎡에 조성된 물고기마을은 1970년대부터 양식업을 시작으로 현재 3대에 걸쳐 50여년간 운영되고 있다. 체험시설로는 2016년 문을 열었다.

[현장에서]하천 넓힌다며 쫓아낸 국내 유일 ‘물고기 마을’…전국서 모시기 경쟁 ‘러브콜’
[현장에서]하천 넓힌다며 쫓아낸 국내 유일 ‘물고기 마을’…전국서 모시기 경쟁 ‘러브콜’
[현장에서]하천 넓힌다며 쫓아낸 국내 유일 ‘물고기 마을’…전국서 모시기 경쟁 ‘러브콜’

이곳에는 세계 최초로 육종에 성공해 특허를 획득한 잉어 신품종 ‘검은천사(블랙엔젤)’를 비롯해 각종 희귀물고기 250여종 300여만 마리가 살고 있다. 전국에서 3세 어린이부터 70대 노인들, 외국인들까지 찾는 힐링명소로 자리를 굳힐 수 있는 이유다. 문화관광부는 매년 30여만 명의 관람객이 이곳을 찾는 것으로 집계했다. 물고기 마을 설립자인 류병덕 박사는 국내 1호 수산 신지식인에 선정됐고 세계 명인으로 등극했다.

물고기마을 폐쇄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국 지자체들은 이 체험시설을 가져가기 위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국내의 경우 파주와 연천, 남양주, 인천, 아산, 부산, 제주 등에서 유치의사를 타전해 왔다. 이 중에는 이미 예정 부지까지 마련해 놓은 지자체도 있다.

최근에는 새만금 관광단지 투자법인에서 물고기마을을 방문해 시설을 둘러보고 돌아갔다. 해외에서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아프리카와 베트남, 방글라데시, 일본, 중국, 필리핀 등에서 현지에 물고기마을 조성을 희망하며, 양해각서(MOU)를체결한 국가도 있다.

류병덕 박사는 “3대에 걸쳐 평생 혼을 담아 일궈낸 물고기 마을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가게 될 경우 고향 주민들의 힐링장소가 사라지게 된다는 점에서 마음이 아려 선뜻 결심이 안선다”면서 “지금이라도 도내에 적당한 장소를 물색해 전북을 대표하는 체험관광문화시설로 조성할 수 있다면 타 지자체의 유혹을 단호히 거절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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