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피해·보호공백 우려, 실무 해법 찾아야"…미성년 성범죄 피해자 법정 출석 대책 토론회

김희진 기자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김영민 기자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김영민 기자

“아동 성범죄 피해자는 법정 통로에서 사건에 관계된 사람만 마주쳐도 불안이 심해져 진술을 못할 때도 있습니다. 가해자인 피고인과 분리되더라도 법정에서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아동은 낯선 법정에서, 이해하기도 어려운 긴 질문을 수차례 받는 상황이 되면 위압감에 눌려 제대로 답하기도 힘듭니다. 이런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면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장옥선 진술조력인)

“성폭력 피해 아동은 판사, 검사, 변호인의 증인신문으로 사건 당시의 감각, 두려움, 무력감, 슬픔 등 감정이 같이 떠오르게 됩니다. 심리적 고통을 다시 경험하게 될 피해 아동을 위해 (헌법재판소는) 어떤 보호 장치와 대책을 마련해두고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까.” (김지은 대구해바라기센터 부소장)

지난달 아동·청소년 성범죄 피해자의 진술 녹화를 법정 증거로 쓸 수 없도록 한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관련해 지난 10일 저녁 법원 ‘현대사회와 성범죄 연구회(회장 오경미 대법관)’ 주최로 온라인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헌재 결정의 의미를 따져보고, 당장 수사와 재판 등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해법을 모색하자는 취지의 토론회였다.

토론회에서는 법정에 서야 할 처지에 놓인 아동·청소년 피해자가 겪을 2차 피해를 막기엔 현재의 지원체계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보호 공백’ 상태에 놓인 아동 피해자를 위해 재판 실무에 적용할 수 있는 보완책과 입법이 시급하다는 데에도 입을 모았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3일 미성년 성범죄 피해재가 법정에서 증언하지 않아도 진술 녹화를 증거로 쓸 수 있도록 한 성폭력처벌법 30조 6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해당 조항은 미성년 피해자가 법정에 나와 진술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겪을 트라우마 재발 등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헌재는 “피고인의 방어권을 제한하는 정도가 중대하다”며 “2차 피해를 방지할 다른 대안이 존재해 법익의 균형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현 체계에선 2차 가해·피해 불가피”

토론 참석자들은 헌재가 미성년 성폭력 범죄의 재판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현실과 동떨어진 결정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피해자에 대한 반대신문은 주로 ‘왜 저항하지 않았나’ ‘성관계는 처음인가’ 등 피해자 진술의 허점을 파고들어 피해 경험을 되뇌도록 이뤄지곤 한다. 반면 진술을 해야 하는 미성년 피해자의 경우 위압감을 주는 상황이나 강압적 질문에 특히 취약하다. 일관된 진술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헌재가 상정한 ‘바람직한 신문’이 이뤄지기가 어렵고, 미성년 피해자의 2차 피해도 상당 부분 불가피하다.

피해자를 보호하는 제도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헌재는 피고인의 퇴정, 중계장치에 의한 신문, 진술조력제도 등을 예로 들며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하면서도 2차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여러 증인지원제도가 마련돼 있다”고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조현주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재판부에 따라 여전히 피고인 퇴정을 불허하고 차폐막 설치만 허가하거나, 중계 장치에 의한 증언은 허락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피해자가 법정 출석 자체에 부담을 갖는 경우가 많아 중계장치를 이용한 신문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진술을 돕는 진술조력인제도의 경우 만 13세 미만 혹은 장애가 있는 피해자 외에는 지원 가능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문제가 지적됐다.

■아동·청소년·피해자 ‘특수성’ 고려돼야

재판과정에서 아동·청소년 피해자의 2차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판사의 소송지휘권도 논의 대상이 됐다. 피해자의 진술 녹화가 앞으로 법정 진술로 대체되는 만큼 재판부는 미성년 피해자의 특수성을 고려해 소송지휘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기쁨 연구위원(판사)는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은 절대적 권리가 아니므로 성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해 다소 제한될 수 있다”며 “재판장은 2차 피해 우려가 되는 반대신문을 제한하거나 미리 신문사항을 제출받은 후 소송참여자들 의견을 듣고 2차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질문을 제한 또는 수정하는 등 소송지휘권을 행사해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법정책연구원이 펴낸 ‘성폭력 재판절차에서의 피해자 증인신문 재판참고사항에 관한 연구’(2016)를 보면 2차 피해가 우려되는 부적절한 신문 유형으로는 ‘과도하게 괴롭히거나 겁을 주거나 공격적인 질문’ ‘집요하고 반복적인 질문’ ‘성관계 행위 내지 신체적 특징을 불필요하고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묘사하도록 하는 질문’ ‘피해자의 사생활 내지 성적 행위 이력에 관한 질문’ 등이 포함됐다.

강화된 ‘피고인의 방어권’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는 근본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증인지원제도나 판사의 소송지휘권 행사도 2차 피해를 완벽히 차단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오정희 서울고검 검사는 “수사·재판 진행 중 미성년 피해자를 상대로 허위진술을 종용하는 등 진술 번복을 시도하기 위해 접근하는 행위 자체를 사전에 제지할 순 없다”며 “미성년 성폭력 사건에 특화된 잠정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반성폭력활동가 ‘연대자 D’는 “성폭력 사건에 신뢰관계인으로 동석하거나 재판을 모니터링하면 피해자가 느끼는 현실과 헌재의 판단은 괴리가 크다”며 “피해자 중심으로 재판이 진행될 수 있도록 수사·재판 담당자에 대한 적절한 감시 시스템까지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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