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모터스’ 판결 놓고 대통령실 “계좌 활용당한 것” 해명
“김 여사가 전화로 8만주 매도 주문” 등 부정 거래 정황 다수
법조계 “조사 통해 확인은 필수”…검찰, 조사 여부엔 침묵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계좌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활용됐다는 1심 판결이 나온 뒤 진상 규명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검찰은 김 여사에 대한 별다른 수사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은 “매수를 유도당하거나 계좌가 활용당했다고 해서 주가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볼 수 없음이 명백하다”고 했는데, 법조계에선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김 여사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조병구)의 도이치모터스 사건 1심 판결문과 범죄일람표를 보면, 김 여사 명의의 계좌가 위법한 시세조종에 활용된 건수는 통정·가장매매를 합쳐 총 48건이다. 김 여사 계좌는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이 매수 유도한 유형’으로 분류됐는데, 2차 작전을 주도하면서 이 계좌를 운용한 ‘주포’ 김모씨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으로 피고인 9명 중에서도 중한 형을 선고받았다. 범죄일람표에는 윤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 계좌에서 주식이 매도되자 곧바로 김 여사 계좌에서 매수한 사례도 기재돼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 여사 계좌가 주가조작에 사용됐다는 점은 수차례 언급했지만 김 여사가 어떤 목적과 배경에서 계좌를 제공했는지에 대해선 불분명하게 기재했다. 김 여사와 관련해선 사실관계가 여기저기 비어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재판부는 주포 김씨와 블랙펄 인베스트먼트 임원 민모씨가 연락을 주고받은 뒤 김 여사 계좌에서 8만주 매도 주문이 나온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시세조종으로 인정하면서도 “해당 계좌에서 직접 주문을 낸 것이 누구인지를 확정할 수 없다”고 했다. 2차 작전 때 김 여사 계좌가 사용된 이유에 대해서도 “권 전 회장을 통해 (계좌가) 위탁된 것으로 보인다”고만 했다.
검찰은 재판에서 “당시(8만주) 김 여사 명의 계좌는 영업점 단말로 김 여사가 직접 전화해 거래한 것”이라고 했다. 이외에도 김 여사 계좌가 활용된 경위와 김 여사의 관여 여부를 재판 전반에 걸쳐 증인들에게 물었다. 하지만 검찰은 정작 김 여사를 불러 조사하거나 법정에 증인으로 세워 신문하지 않았다. 권 전 회장은 2010년 김 여사를 포함한 3명에게 ‘주식을 관리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며 선수 이모씨를 소개했는데, 김 여사를 제외한 나머지 2명은 증인으로 나와 계좌 제공 경위를 증언하고 진술서를 제출했다.
법조인들은 통장계좌가 범죄에 사용됐을 때 수사기관이 명의자를 조사하는 것은 일반적인 절차라고 말한다. 한 법조인은 14일 “주가조작을 알면서 계좌를 넘겨줬는지는 (김 여사) 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처벌 여부와 수위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라며 “통상적인 절차”라고 했다. 검찰이 김 여사에 대해선 최소한의 통상적인 절차마저 지키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판결문에는 재판부가 권 전 회장이 한 법정 증언의 신빙성을 배척한 대목도 있다. 권 전 회장은 김 여사 모친인 최은순씨 계좌에 대해 검찰에서 ‘차명계좌’라고 했다가 법정에서는 ‘일임받아 관리했다’고 말을 바꿨는데, 재판부는 차명계좌가 맞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운영자금이 최씨로부터 지급되고 그 운영수익이 최씨에게 지급되는 등 일임관계로 볼 만한 객관적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며 “계좌의 이용 및 주식 매매로 얻은 수익의 재투자 등 운영은 권 전 회장이 전적으로 주관해 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검은 권 전 회장을 2021년 12월 기소했다. 그로부터 1년3개월이 흘렀지만 김 여사에 대해선 아무런 조사도, 처분도 하지 않고 있다. 조사를 했는지 안 했는지에 대해서조차 입을 꾹 닫고 있다. 그러면서 “제기된 의혹 전반에 대해 진상 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