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립대서 국·공립대 중심으로… 고등교육 공공성 강화해야

정유진 기자

15일 서울대 법인화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본관 점거농성이 17일째 접어들었다. 일부 학생들은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이날 경북대·부산대·전남대 교수회는 지방 국립대 법인화에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런 가운데 국회 법률심사소위원회는 전날 인천대 법인화 법률안을 안건으로 정식 회부했다.

여야가 앞다퉈 등록금 인하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대학가가 국립대 법인화 문제로 어수선한 상황이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국립대 법인화 정책이 일정대로 추진되고 있다. 상충되는 두 가지 대학 정책이 마치 다른 세계의 일인양 한꺼번에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대학 등록금 문제와 국립대 법인화는 밀접히 연관돼 있다. 법인화 찬성론자들은 등록금 인하 방안의 하나로 법인화를 이야기한다. 시장경쟁을 통해 대학의 효율성이 강화되면 등록금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반대 주장도 만만찮다. 대학서열화가 공고히 자리잡은 우리 사회의 특성상 대학선택 등에서 경쟁 기제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서울대 본부 직원들이 지난 8일 학생들이 점거농성 중인 행정관 진입을 시도하다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대 본부 직원들이 지난 8일 학생들이 점거농성 중인 행정관 진입을 시도하다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정진상 경상대 교수는 “이제까지 등록금은 학벌 피라미드의 상층부에 위치한 서울 명문 사립대들이 끌어올리면 다른 대학들이 따라가는 형태로 인상돼왔다”면서 “만약 대학 서열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마저 법인화돼 등록금 인상을 주도한다면 그 파괴력은 훨씬 더 어마어마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소 소장은 “경제용어로 말하자면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의 탄력성은 ‘0’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쓸 만한 직장의 숫자는 제한돼 있는데 그 바늘구멍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 학벌이기 때문에 대학들은 어마어마한 가격 독점력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대학졸업장이 없으면 원서도 낼 수 없는 상황에서는 대학이 아무리 고액의 등록금을 제안해도 ‘울며 겨자 먹기’로 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설령 서울대나 수도권의 명문 사립대들이 등록금을 연간 2000만원 수준으로 올린다 하더라도 학생들은 기를 쓰고 들어가려 할 것이란 얘기다.

[등록금 이것이 문제다](5) 사립대서 국·공립대 중심으로… 고등교육 공공성 강화해야

따라서 전문가들은 이 같은 대학의 가격 결정 독점구조를 깨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공립대에 대한 재정지원이 수반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가격을 통제할 수 있는 양질의 국·공립대를 육성함으로써 사립대와 경쟁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반값 등록금을 실시하더라도 사립대들이 가격 독점력을 내세워 등록금을 계속 올릴 경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우려가 높다.

그러나 현재 정부의 정책은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기는커녕 거꾸로 역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북대 전현수 교수는 “미국만 하더라도 전체 대학생 중 주립대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75%이고, 유럽은 영국을 제외하면 모든 대학이 사실상 전부 국립대”라며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국가가 고등교육을 책임지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사립대는 못 건드리면서 손쉬운 국립대만 구조조정을 하고 이제는 아예 법인화를 추진하는 등 거꾸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2005년부터 추진돼온 정부의 국립대 구조조정 방침에 따라 현재까지 10개의 국립대가 통폐합됐다. 그 결과 국·공립대에서는 모두 108개의 학과가 감축됐고, 학생 정원도 8768명 축소됐다. 사립대는 우후죽순 들어서는데 국립대만 구조조정이 되다 보니 전체 대학에서 국·공립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1980년 31.3% 이후 30년 만에 13.8%로 절반 이상 줄었다.

전 교수는 “정부는 정작 부실이 심한 사립대는 제대로 손도 대지 못하면서, 그나마 지방에서 교육인프라와 학습환경의 질이 우수한 국·공립대만 집중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며 “법인화까지 되면 정부의 재정지원이 점점 줄면서 결국 등록금을 올리게 될 것은 뻔한 수순”이라고 지적했다.

국·공립대 강화는 국가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 때문에 국·공립대 육성으로 지방을 살리겠다는 공약은 역대 정부의 단골 주제였다. 노태우·김영삼 대통령도 후보 시절 대선 공약으로 지방 국·공립대 지원을 약속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단순한 지방대 육성 공약에서 더 나아가 지역인재 할당론까지 거론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었던 지방 국·공립대 육성 공약은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몰락의 길을 걸어왔다.

국·공립대를 중심으로 고등교육 공공성을 강화해야만 등록금 문제가 풀릴 수 있다는 의견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대안도 제시되고 있다. 정태인 소장은 “국립대 등록금 먼저 완전 무상으로 내려준 후, 학생 1인당 표준 교육비를 산출해 이를 바탕으로 사립대에는 별도의 보조를 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민주노동당 부설 새세상연구소의 손우정 연구위원은 “서울대 등 국·공립대학을 프랑스처럼 한국1대학, 한국2대학 등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자는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국립교양대학 신설안 등 많은 대학체제 개편 논의가 오가고 있다”면서 “어쨌든 등록금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중요한 핵심은 국·공립대를 강화해 지나치게 높은 사립대 의존율을 낮춤으로써 고등교육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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