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사학자들도 “국정화 반대”

“국정화 추진 세력은 우리 역사에서 뭔가를 감추려고 한다”

김지원 기자

원로학자 22명, ‘정부·여당의 원색적 학계 비판’에 일침

강단을 떠난 지 수년에서 십수년이 흐른 원로학자들이 역사학계와 후학,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21일 열린 한국사학계 원로들의 국정화 반대 기자회견에서 원로 학자들은 한목소리로 현 정부의 국정화 추진에 우려와 참담함을 쏟아냈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만열 숙명여대 사학과 명예교수(77), 국사편찬위원을 지낸 ‘현대사 1호 박사’인 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명예교수(67), 100여권의 역사서적 발간으로 한국사 대중화에 기여한 이이화 전 서원대 석좌교수(78) 등 역사학의 각 영역에서 ‘거두’로 인정받으며 많은 후학을 길러낸 사학계의 스승들이 ‘역사의 퇴행’이라는 위기 앞에 급히 모인 것이다. 모두 22명의 원로들이 한뜻으로 서명하며 국정화 저지에 힘을 보탰다.

[원로사학자들도 “국정화 반대”]“국정화 추진 세력은 우리 역사에서 뭔가를 감추려고 한다”

원로 학자들은 국정화를 추진하는 정부·여당의 원색적인 학계 비방을 규탄했다.

안병욱 가톨릭대 국사학과 명예교수(67)는 “국정화를 찬성하는 측은 일본 극우파의 용어를 빌려 ‘자학사관’ 운운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자학사관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독재자 이승만, 박정희에 의해 한국사 발전이 이뤄졌다고 역사를 서술하는 것”이라며 “해방 후 70년간 한국사의 발전을 불러온 힘은 아래로부터 분출되는 우리 국민들의 역동적인 에너지였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권이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한 지식인들의 비판을 무시할 경우 더 큰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말했다.

[원로사학자들도 “국정화 반대”]“국정화 추진 세력은 우리 역사에서 뭔가를 감추려고 한다”

서중석 명예교수는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함께 이뤄낸 우리나라처럼 자랑스러운 역사가 없는데, 국정화 추진세력은 우리 역사에서 뭔가를 감추려고 한다”며 “잘못이 있으면 그것을 직시하는 것이 용기다. 감추려고 하는 그들이야말로 패배주의에 젖어 있다”고 질타했다.

윤경로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명예교수(68·한성대 전 총장)는 최근 국정화를 둘러싸고 ‘역사전쟁’ ‘종북’ 등 공격적인 말이 범람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윤 교수는 “현재 국정화를 둘러싼 문제는 ‘전쟁’까지 갈 수는 없고, 단지 국민들을 분열시키는 (정부·여당의) ‘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분들이 역사교사들의 90%를 좌파니 종북세력이니 지칭하며 무책임한 발언을 하는 것도 국민을 분열, 오도시키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서중석 명예교수는 ‘(국정교과서의 집필진을) 역사학자뿐 아니라 경제, 사회 등 여러 분야의 집필진으로 구성할 것’이라는 정부의 말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서 교수는 “한 예로 조선후기 역사를 기술할 때 음악 관련 내용이 5줄 들어가고, 경제 관련 내용이 10줄 들어가면 그때마다 각 분야 전문가를 불러서 교과서를 쓰겠다고 하는 것은 난센스”라며 “정부가 그런 궁여지책을 낸 것은 전국의 역사교수, 교사들이 집필거부 선언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이화 전 석좌교수는 ‘국정 역사교과서가 다양성을 내포할 수 있다’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이 교수는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라고 단언하면서 “특정한 기준을 만들어 놓고 그 틀 안에서 역사를 쓰라고 할 때 다양성은 포함될 수 없으며 (국정화라는) 제도 자체가 다양성과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이만열 명예교수는 “오늘 우리가 모인 이 자리는 우리가 학생이었던 시절 4·19 혁명 당시 제자들의 반독재 민주투쟁을 이끈 교수 데모의 진원지다. 그 선배들의 정신, 실천을 계승하는 의미로 이 자리에 나왔다”며 “(국정화 문제는) 향후 역사 교육과 인식 문제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역사의 전통을 반일 독립운동에 연원을 두느냐, 친일 식민지 근대화론에 근거를 두느냐, 혹은 5·16 및 신군부세력에 두느냐의 문제로 귀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광 고려대 한국사학과 명예교수(70)는 일선 교육 현장에 있는 역사학계의 후학들에게 “여러분은 올바른 것을 학교에서 배웠고 올바른 것들을 제자에게 가르칠 것”이라며 “그렇다면 갈등할 필요 없이 올바른 길을 향해 걸어가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원로학자

강만길(전 상지대 총장·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권태억(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김정기(전 제주교육대학 총장), 김태영(경희대 사학과 명예교수), 노중국(계명대 사학과 명예교수), 박현서(한양대 사학과 명예교수), 서굉일(한신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서중석(성균관대 사학과 명예교수·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성대경(성균관대 사학과 명예교수), 안병욱(가톨릭대 국사학과 명예교수·전 과거사위원장), 유승원(가톨릭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윤경로(전 한성대 총장), 이근수(경기대 사학과 명예교수), 이만열(숙명여대 사학과 명예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 이병휴(경북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이이화(전 서원대 역사학과 석좌교수), 임병훈(경북대 사학과 명예교수), 임세권(안동대 사학과 명예교수), 장병인(충남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전형택(전남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조광(고려대 한국사학과 명예교수), 조동걸(국민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이상 2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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