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약값 통제 불가… 환자에겐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

충주 | 글 김형규·사진 서성일 기자

암 투병 아내 둔 김태호 신장암환우회 사무국장

“캄캄한 어둠 속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조미라씨(43·가명)는 6년째 암으로 투병 중이다. 2006년 옆구리에 혹이 만져져 병원에 갔다가 신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곧바로 수술을 해 혹을 떼어내고 항암치료를 받으며 여태껏 버텨왔다. 그러는 동안 남편 김태호씨(44·사진)는 신장암 전문가가 다 됐다. 생소한 약 이름을 외워가며 백방으로 치료제를 수소문했다. 아내가 먹는 약이 부작용이 생기는지까지 낱낱이 챙겨가며 부인의 투병생활을 도왔다. 신장암 관련 세미나 등에 가면 “의사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관련 정보에 능통해진 김씨는 이제 한국신장암환우회 사무국장 일을 하며 다른 환자들도 돕고 있다. 그동안 자신이 받은 도움을 다른 이들에게 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국산 약값 통제 불가… 환자에겐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

이들 부부에게는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소문으로만 떠돌던 약값 대폭 상승이 현실로 나타날까봐서다. 김씨는 “그동안 그런 문제는 전혀 신경쓰지 못했다”며 “하루하루 환자를 돌보는 일도 빠듯한데 한·미 FTA의 의약품 관련 조항에 구체적으로 무슨 내용이 들어 있는지 일반인들이 어떻게 다 알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환자 단체에서 일하는 내가 이 정도인데 다른 환자나 그 가족들의 상황은 어떻겠나. 자기가 쓰는 약 이름이 뭔지, 어느 제약회사 제품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말했다.

현재 신장암 치료제로 사용되는 대표적인 1차 약제는 모두 4가지다. 그중 ‘슈텐’과 ‘토리셀’ 등 2가지가 미국 제약회사인 화이자의 제품이다. 둘 다 보험 적용이 되는 데다 이미 약가가 정해졌기 때문에 앞으로도 갑자기 가격이 오를 일은 없다. 한 달 기준 약값이 300만원에 달하는 슈텐을 복용하는 부인 조씨는 현재 보험 적용을 받아 전체 약값의 5%인 15만원 정도만 부담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미국 제약회사가 신약을 개발하게 되면 한·미 FTA로 신설되는 ‘독립적 이의신청 절차 제도’에 의해 제약사가 약가 정책에 이의를 제기해 지금보다 훨씬 높게 약값이 책정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보험가 역시 오를 수밖에 없고 환자들에겐 부담으로 돌아온다. 또 보험이 적용돼도 결국 차액을 건강보험 재정에서 부담하게 되므로 재정 건전성이 지금보다도 악화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암환자 같은 중증환자나 만성질환자, 희귀병 환자들은 장기적으로 계속 신약을 보험가에 제공받을 수 있을지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남편의 이야기를 듣던 조씨는 “우리에게 약은 생명과 직결된 것이다. 재발을 막으려면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데, 외국 제약회사가 가격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만 바라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환자들이 느끼는 불안에 정부가 너무 안이하게 대응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김씨는 “약값이 올라갈 것이라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를 대는데 정부에서는 그런 것 없이 그냥 괴담이다, 그럴 리 없다는 말 한마디로 끝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정부 대책이 산업자본 위주로 마련되는 것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정부는 3년 뒤 발효될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 제도’로 피해를 볼 국내 제약사들을 위해 연구·개발비 등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씨는 “우리 제약사들이 먹고사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환자들에겐 이것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며 “환자들은 엄연히 의료 소비자임에도 보건의료 정책의 주요 결정 과정에서는 늘 배제되고 끌려다니기만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씨는 “일각에선 의료 민영화 등 한·미 FTA로 인한 장기적 폐해를 지적하지만 우리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당장 약값이 뛰면 어쩌나 하는 것”이라며 “한·미 FTA로 피해를 보는 진짜 약자들이 누구이고 그들에게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정부가 책임 있게 고민하고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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