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구 노부부의 비극’ 낳은 천편일률 복지

강은·문광호 기자

복지사들 “노부부처럼 현장에선 자발적 복지 거부 비일비재”

‘주니까 받으라’는 식 상처…“수혜자 다양한 욕구 고려돼야”

지난달 27일 서울 도봉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노부부는 기초생활수급자임에도 자발적으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서비스를 거부해왔다. 이 같은 ‘자발적 복지 거부’ 사례는 이들 부부뿐 아니라 현장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되는 현상이었다. 노인성 치매나 정신질환 등으로 합리적 판단을 하지 못하거나, ‘주니까 받으라’는 데 대한 거부감, 정작 필요한 서비스가 아니라서 등 지원을 거부하는 이유도 다양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대상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맞춤형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저생계 유지에만 초점을 둔 일률적 복지 서비스가 수용률을 낮춘다는 것이다.

도봉구의 한 사회복지사는 4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당사자가 인지적 문제나 정신질환이 있을 때 지원을 거절하는 사례가 많다”며 “그런 경우 생명이 위급한 순간이 아니면 개입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유명을 달리한 노부부의 경우에도 지역 사회복지관에서 당뇨 합병증, 정신질환 등을 앓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서비스를 제공하려 했지만, 본인들의 거부로 더 이상 개입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중랑구에서 활동 중인 정다혜 사회복지사는 “현장에서 (인지 문제가 있는 복지서비스 대상자에게) 정신적인 치료를 권고하지만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며 “스스로 인정하지 않고 가족들도 인정하지 않는 경우 강제적으로 치료를 받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외부로부터 도움받는 것을 자기결정권 침해로 받아들여 거부하는 사례도 있다. 강북구에 사는 70대 남성 A씨는 암 투병 생활을 하면서 치매를 앓고 있는 부인과 어린 손주를 부양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지역 사회복지관에서 제공받을 수 있는 복지 서비스를 1년 동안 거부해왔다. “아내가 외부인 출입을 극도로 꺼린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사회복지사들의 꾸준한 설득으로 지금은 서비스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는 “취약계층 중에는 복지서비스를 누군가에게 도움받는 일로 생각해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사람도 있다”며 “당장 생명이 위급한 경우가 아니면 자기결정권을 넘어서 강요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일선에서 제공되는 복지 서비스 내용이 천편일률적인 점도 문제다. 수혜자의 다양한 욕구를 고려하지 않고 최저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에서 엇비슷한 서비스가 제공되다보니 당사자들이 거부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한국여성의집 원장인 이정미 사회복지사는 “본인이 원하는 것과 정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가 다르기 때문일 수 있다”며 “복지 서비스의 눈높이는 항상 최저생계에 맞춰져 있는데 대상자들은 경제적인 욕구 이외의 다른 필요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복지 서비스의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슬기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대상자에게 무조건 맞추라고 하는 것은 폭력적이지만, 사람과의 관계로 만들어지는 서비스인 만큼 다양한 측면이 고려돼야 한다”며 “자기결정권을 넘어서는 더 중요한 사례들이 어떤 경우이고 어느 범위까지 포함시킬 것인지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미 사회복지사는 “국가는 대상자들이 존엄한 삶을 살게 하는 데에 책임이 있다. 대상자들이 왜 서비스를 거부하는지 살펴봐야 한다”며 “정신질환 등으로 제대로 된 판단을 못하는 상황이 오기 전에 개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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