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서비스 ‘허리’ 2차병원 키워야”···오래된 숙제, 이번엔 풀 수 있을까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3일 경기 용인 강남병원을 만나 의료진과 악수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3일 경기 용인 강남병원을 만나 의료진과 악수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3일 경기 용인 강남병원을 찾아가 머리 숙여 인사했다. 이곳은 2008년 지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돼 2015년부터 달빛어린이병원을, 그 이듬해부터는 소아병동을 별도로 운영하는 종합병원이다. 최근 상급종합병원 중심으로 의대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떠난 후 의료공백이 발생하자, 이 병원과 같은 지역의 종합병원들에서 응급 및 경증환자 진료를 분담해 맡고 있다.

이번 의료공백으로 ‘2차 병원 역할 강화론’이 부상했다. 현 의료전달체계는 환자의 중증도에 따라 동네 병·의원(1차, 경증 환자)-병원·종합병원(2차, 중등증 환자)-상급종합병원(3차, 중증·응급환자) 등 의료기관 종별로 다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지역·경증환자까지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을 찾는 경우가 빈번하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공단에서 받아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22년 서울 ‘빅5’ 병원에서 진료받은 비수도권 환자 수는 71만3284명으로 2013년(50만425명)보다 42.5% 늘었다. 복지부에 따르면 평상시 상급종합병원 환자의 45%가량은 중등증·경증환자다.

정부는 의료개혁의 일환으로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다만 정부가 오래 묵힌 과제이다 보니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공의 이탈 후 ‘2차병원’ 역할 부상···“의료공백 장기화·확산 땐 대응 한계”

서울의 A종합병원은 평상시 응급실 내원 환자가 하루 70~80명이었다. 전공의 집단 사직 직후인 지난달 19부터 5일간 일평균 100명 넘는 환자가 이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최근엔 하루 90명대 환자가 내원한다고 한다. 외래진료 환자도 전공의 집단행동 전후로 20% 이상 늘었다. 병상 가동률은 85~90%에서 현재 90% 이상, 많게는 95%까지도 올라갔다. B종합병원에서도 전공의 집단행동 전후로 환자가 15% 정도 늘었고, 병상 가동률도 15% 늘었다고 한다. 전원·이송 문의는 60% 증가했다.

정부가 상급종합병원에서 종합병원 진료로도 치료가 가능한 환자를 전원·이송하기도 하고, 환자 스스로 2차병원을 찾는 사례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은 ‘바람직한 방향’이고 당장 2차 병원이 보건의료 위기상황에 어느 정도 역할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계도 있다. A병원의 관계자는 “갑자기 대형사고가 난다든지, 감염병이 유행한다든지 더 큰 규모의 의료위기가 닥치면 현 종합병원들이 상급종합병원의 보완기능을 다 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전공의에 이어 교수들까지 대형병원을 나간다고 하면 환지들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코로나19 유행 때 공공병원처럼 중소병원들도 다 동원돼 3년을 같이 버텼다. 지난해 정부가 코로나 손실보상금 끊은 뒤로는 중소병원들도 한동안 어려웠다”며 “의료체계, 지역 불균형 이런 구조적인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도 했다.

전국 35개 지방의료원은 지역의 주요한 2차 병원이지만 코로나19 이후 역량이 많이 위축된 상황이다. 지방의료원 관계자들은 정부가 2차 병원, 지방의료원의 역량 강화는 외면해왔기 때문에 당장 이번 의료공백 국면에서 역할의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전문병원’ 육성 추진···2차 병원 살리려면

지난 11일 오후 한덕수 국무총리가 의료 현장의 상황 청취를 위해 서울 영등포구 뇌혈관전문인 명지성모병원을 방문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1일 오후 한덕수 국무총리가 의료 현장의 상황 청취를 위해 서울 영등포구 뇌혈관전문인 명지성모병원을 방문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종합병원 중에서도 ‘전문병원’을 키우겠다고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11일 서울의 한 뇌질환 전문병원을 방문한 데 이어 지난 12일 국무회의에서 의료체계 개선을 위해 ‘전문병원 육성책’을’추진하겠다고 했다.

전문병원은 화상, 수지접합, 알코올중독 등 특정 질환군에 대해선 상급종합병원 수준으로 전문성과 역량을 갖춘 중소병원을 가리킨다. 2011년 지정 제도가 도입된 후 현재 19개 질환유형별 109개 전문병원이 있다. 전문병원으로 지정되면 3년간 관리료(연 평균 4000만원)와 의료질평가지원금(연 평균 3억원) 등 건강보험 수가를 지원받는다. 다만 장비나 전문의 확보 등을 전문병원 유지를 위해 연 10억원 이상 드는 경우도 있다.

이상덕 대한전문병원협회장(하나이비인후과병원장)은 “전문병원이 300개쯤은 돼야 의료전달체계에서 ‘허리’ 역할을 할 수 있는데 지정·운영 기준은 까다롭고 수가(의료행위 대가) 대비 비용은 더 들고 하니까 병원들이 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지난 13일 “현재 전문병원은 2차급 병원으로 가산수가를 적용받는데 3차 기관 기능을 하는 전문병원에 대해선 합당한 보상체계를 만들겠다”고 했다.

의대정원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집단 행동이 이어지고 있는 13일 서울시내 병원에서 의료인이 이동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의대정원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집단 행동이 이어지고 있는 13일 서울시내 병원에서 의료인이 이동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이 회장은 “전문병원을 키우려면 보상체계도 개선해야 하지만, 지금 환자들에게 전문병원의 존재, 기능 등을 더 알리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응급환자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보상체계나 의료이용 문화 등의 구조를 바꿔주면 자연스럽게 2차 병원이 살아날 수 있다”고 했다.

정부는 ‘상급종합병원 문턱 높이기’를 추진한다. 경증환자가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할 시 본인부담 의료비를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동네 병·의원이 아닌 2차 병원 진료의뢰서를 갖춰야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도 검토하고 있다.

의료전달체계 취약고리···‘지역’은 어떻게

지역 불균형은 다른 차원의 해법을 필요로 한다. 전문병원만 해도 수도권에 편중돼 있고 강원엔 한 곳도 없다. 지역에선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인력 구하기가 더 어렵다.

‘지역완결적 의료체계 구축’을 목표로 두고 있는 정부는 ‘병원 간 네크워크’를 통해 방법을 찾겠다고 했다. 일례로 올해 하반기엔 ‘지역의료 혁신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권역별로 3년간 최대 500억원을 지원한다. 이 사업은 지역 의료기관 간 협력 성과를 기반으로 보상을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오주환 서울대 의대 의학과 교수는 “만성질환은 시·군·구 단위에서 지역완결이 가능한데 필수의료로 가면 지역의 인프라나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실제로 환자들도 불안 심리에 수도권까지 가고, 의료진도 진료 경험을 쌓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라며 “광역 시·도 단위에서 의료기관별 협력체계, 또 환자 중심의 다학제 진료가 가능한 의료인력 네크워크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오 교수는 “이런 체계를 위해서는 현 행위별수가제를 개선해야 한다”며 “의사 개인이 아닌 협력한 팀에 대해, 또 의료행위 건수가 아닌 성과에 대해 보상하는 가치기반 보상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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