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면산, 흙산인데 배수시설 없이 공원 조성 ‘난개발’

류인하·김형규 기자

(1) 산 내부 물 덩어리 형성 지반 약해져

전문가들은 육산(肉山)인 우면산의 생태적 특징을 무시한 채 무리하게 산을 깎아내려 생태공원을 조성하고, 이 과정에서 배수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육산은 주로 바위로 이뤄진 골산(骨山)과 달리 산을 구성하는 주요 물질이 흙으로 이뤄진 산을 말한다. 육산은 비가 내리면 빗물을 토층 내부에 저장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또 빗물을 모았다가 한꺼번에 빼내는 치수 방법이 재난의 원인이 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성준 건국대 환경시스템학부 교수는 28일 “물을 머금은 토양의 엄청난 위력을 무시하면서 생긴 인재(人災)”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우면산은 최근 연이은 비로 토층 내에 빗물을 많이 머금은 상태였고, 이 경우 산 내부에는 물덩어리가 형성돼 지반 자체가 약해진다”고 진단했다. 그는 “산에 제대로 배수시설을 갖췄다면 물덩어리를 조기에 빼낼 수 있지만, 이 같은 시설이 갖춰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연약해진 지면이 예상치 못한 집중호우로 무너진 것이라는 얘기다.

우면산, 흙산인데 배수시설 없이 공원 조성 ‘난개발’
우면산, 흙산인데 배수시설 없이 공원 조성 ‘난개발’

(2) 중턱에 있던 배수로 꼭대기로 옮겨

서일원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지난해 9월에도 200㎜의 비에 산사태가 났는데 그때 제대로 복구를 하지 않아 또다시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치수 방재정책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1년 전에 무너진 부분이 있으면 장마기간 전에는 복구를 했어야 하는데, 예산 편성 문제로 지난해 9월 사고를 올해 봄에야 수습하고, 그마저 공사를 못 끝내 사고가 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마을 주민들은 생태공원 조성 과정에서 배수시설을 마음대로 옮기면서 산사태가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생태공원 조성계획에 따라 기존에 우면산 아래쪽에 있던 배수로를 산꼭대기로 옮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곳에서 20년 이상 살아온 한 주민은 “생태공원을 조성한다면서 원래 있던 배수로를 시멘트로 대충 막아버리고 산꼭대기 쪽으로 물을 끌어올려 배수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도 펌프로 물을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나무토막 같은 것들이 빨려들면서 배수구가 막히는 바람에 물이 배수되지 못하고 쌓여 있다가 한꺼번에 무너져내린 것 같다”고 분석했다.

(3) 토사·나무에 막힌 물길 한번에 터져

이수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생태공원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존 물줄기를 바꿔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때 배수를 잘 고안해야 한다”며 “그런데 저수지의 배수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물길만 막아버리면 이번과 같은 집중호우를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현장을 보면 배수로가 물만 내려갈 수 있도록 돼 있는데 실제 산사태가 나면 토사와 나무, 돌 등이 마구 떠내려와 배수로를 막아버린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우면산의 배수로는 물만 생각하지 산사태를 생각하지 못한 것으로, 사실상 정부에는 산사태를 막기 위한 체계적 대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생태공원을 조성하면서 저수지 확장사업이 미뤄져 사고가 발생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형촌마을 주민 송순천씨(47)는 “얼마 전에도 비가 내리니까 저수지 쪽 보 너머로 물이 넘치는 것을 봤다”며 “비는 계속 내리는데 저수지 확장은 이뤄지지 않아 이번 일이 발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우면산 저수지의 보는 실제 이번 폭우로 무너져내렸다.

아까시나무와 현사나무 등이 많은 우면산의 특성 때문에 산사태 피해가 컸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장진성 서울대 환경재료과학과 교수는 ‘산사태는 산의 경사나 토양성분이 90% 이상 영향을 미치고, 식생이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5%도 되지 않는다”며 “산 중턱에 시설물을 마음대로 만들어놓고 난개발을 한 것이 토양 유실을 불러일으켰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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