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재전문가 조원철 교수 “이상기후는 일상…치수방지대책 세워야”

박은하 기자

서울 방배동 전원마을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62)의 자택은 여전히 불이 들어오지 않아 대낮인데도 컴컴했다. 27일 내린 집중호우로 인한 우면산 산사태로 전봇대가 쓰러져 전기가 나간 채 아직 복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 교수는 “집 안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됐지만 여전히 지하실에 흙탕물이 콸콸 솟는다”고 말했다. 팔다리 여러 군데 긁힌 흔적이 뚜렷했다. “시간이 되면 보건소에 파상풍 접종을 맞으러 가고 싶다”고 말했다.

대통령 비서실 수해방지대책 기획단 단장, 한국재난관리표준학회 회장 등을 역임한 치수방재전문가 조교수는 자신이 폭우 피해자이기도 했다. 조교수에게 이번 산사태의 원인과 대안을 묻자 “이상기후는 이제 일상이 됐다는 마음으로 치수방재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을 시작했다.

- 치수방재분야 전문가이기 전에 마을주민으로서 피해를 입었다.

아침 일찍 산사태 현장 사진을 찍고 왔다. 트럭과 정유차가 모두 뒤집혀 있는데, 물이 솟아오르면서 그 힘으로 뒤집은 것이다. 지하수 위력이 그만큼 세다. 그리고는 피할 틈도 없이 물과 흙과 돌과 부러진 나무토막이 뒤섞여서 밀려오는데 나도 그 힘에 밀려 15m 가량 떠내려갔다. 아예 앉은채로 떠내려갔는데 물길이 바뀌면서 다행히 집 담장에 등이 부딛쳐 살 수 있었다.

- 산사태 피해는 일반 호우 피해보다 규모가 크다.

물은 점성이 강해서 흙과 자갈, 나무 따위를 함께 휩쓸어가고 그러면서 힘이 무척 강해진다. 고등학교 때 배웠지 않나. F=ma(힘은 질량과 가속도 크기에 비례) 경사가 있으니 가속도가 일정하게 가해지고, 물에다 흙과 돌이 합쳐지면서 질량도 커져 힘이 무지무지하게 커지는 것이다. 철판 아래 아이스크림을 놓아두었는데, 아이스크림이 녹아 미끄러지면서 철판을 끌고 가는 것과 같다.

- 유독 이번에 위력적인 산사태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비가 너무 많이 왔다. 그러나 정상의 생태공원과 산기슭에 있는 주말농장, 그리고 비닐하우스 문제도 짚어야 한다. 생태공원은 작년에 만들어졌고, 주말농장은 2009년에 생겼다. 비닐하우스는 무허가일텐데 꽤 오래 전부터 있었다. 십 년 전에도 있었고. 농사를 지으면 흙이 부드러워진다. 공사를 해도 마찬가지다. 부드러운 흙은 물에 쉽게 잘 쓸려내려간다. 산사태가 나기 쉽다. 관계기관이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책임이 있다.

- 주말농장 대신 나무가 있었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아무래도 나았겠지만 삼림정책도 다시 점검해봐야 한다. 지금은 땔감을 쓰지 않으니 숲에 나무가 빽빽하다. 그러면 수분 증발이 적다. 나무들은 깊이 뿌리내릴 필요를 못 느낀다. 그러다보니 뿌리를 얕게 내리는 천근성 식물(소나무 등)이 많이 자라게 된다. 뿌리를 깊게 내리는 심근성 식물(아카시아 등)이 많아야 흙을 튼튼하게 잡는다. 그렇게 하려면 중간 중간 간벌을 해 줘야 한다. 무조건 그대로 두는 것이 자연보호이고 능사는 아니다.

- 많은 주민들이 배수로 문제도 제기했는데

올봄에 주말농장 있는 부분 배수로 확장 공사가 마무리됐다. 그런데 배수로 확장 공사를 하면서 공사를 하지 않은 기존 배수로가 막혔다. 그러면 굉장히 오래된 옛날 배수로로 물이 흘러가는데, 그건 폭도 터무니없이 좁고 물이 안 넘칠 수 없다. 개인적으로 동사무소나 구청에 전화를 걸어 ‘막힌 것 뚫어달라’고 얘기를 했는데도 “내일, 내일” 하다가 이렇게 됐다.

- 우면산 뿐 아니라 서울 전반적으로 호우 피해가 컸다. 비가 워낙 많이 오기도 했지만 치수 정책에 문제는 없었나.

이제는 이상 기후가 상시 기후가 됐다. 우리는 바뀐 기후상황에 적응을 해야 한다. 비가 오면 물을 한 군데 모아놨다가 한꺼번에 버리는 것이 그동안의 치수정책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강수량이 너무 많기 때문에, 물을 한 군데 모았다 버리려면 잘 빠지지도 않고 오히려 넘치게 된다. 비가 오면 바로바로 물을 흘려버릴 수 있도록 구조를 바꿔야 한다.

- 구체적으로 예로 들어보면. 이번 광화문, 강남 침수도 그러한 배수 구조와 관련이 있나.

광화문 북쪽의 경복궁, 동쪽의 삼청동, 서쪽의 인왕산에서 나온 물이 모두 광화문으로 모였다가 청계천으로 간다. 광화문이 매번 침수되는 이유다. 강남도 워낙 저지대로 자주 침수되기는 하지만, 휘문고등학교를 경계로 그 북쪽물은 삼성동 무역센터에 모였다 한강으로 가고, 남쪽물은 대치동 은마아파트 쪽에 모였다 양재천으로 간다. 이렇게 모여있는 시간 동안 범람이 발생한다.

- 물이 모여있지 않게 바로바로 뺄 방법은

정릉쪽 물은 지하수로관을 설치해 따로 빼서 청계천 대신 서대문 욱천을 통해 난지도로 바로 보내는 방법이 90년대 중반에 이미 구상됐다. 기술적으로 문제 없고 최첨단공법으로 소음도 없이 공사할 수 있다. 욱천은 경사가 급해 물이 빨리 빠지고 복개 깊이가 15m 정도로 서울시내 하천 중 가장 깊다. 청계천이 10m일걸. 그러나 돈이 많이 들고, 도로공사와 달리 하수도 공사는 적극적으로 공이 표가 나지 않아 정치인들이 밀어붙이지 않았다. 여하간 도시호우관리를 이런 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 지하수로 확장 작업이 필요하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오사카, 도쿄, 뉴욕 등 세계 유명한 도시들은 지하수로가 있다. 특히 오사카는 직경 16m되는 터널이 8㎞나. 비가 많이 쏟아지면 이 수로를 통해 물을 바로 보내버리고, 장마 끝무렵에는 이 물을 저장해 더울 때 길거리에 뿌리는 냉각수나, 청소용수 등으로 쓴다. 70년대 시카고에서 처음 나왔고. 말레이시아에도 스마트터널이라고 평소에는 자동차 도로로 쓰지만 비 오면 배수로로 쓰는 지하 3층짜리 배수 터널이 있다.

- 오세훈 시장의 디자인 서울 정책이 침수피해를 키운 것 아니냐고 비판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어느 정도는 (오시장이) 과욕을 부린 면이 있다. 광화문 광장에 다 대리석 깔아놓은 것 등. 가로수가 있으면 홍수 예방 효과가 크다. 물이 바로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나뭇잎사귀에 떨어지면 물방울이 분산되면서 20% 증발해버린다. 나무는 빗방울이 떨어지는 속도를 3~10분 늦출 수 있다. 10분이면 물 차오르는 거 금방이다.

- 4대강에 대해서는.

한강과 같이 큰 본류에서는 물이 이번에 안 넘치지 않았나. 4대강이 홍수 예방 효과가 있다는 정부 발표는 어느 정도 맞다고 본다. 사실상 댐 크기인 보의 규모나 추진 방식을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강바닥을 주기적으로 준설해줘야 하는 것은 맞다. 항상 강조하지만 자연보호주의자들의 주장대로 있는 그대로 둔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 이번 폭우와 같은 기상 이변은 앞으로도 계속될텐데.

홍수와 태풍은 사실상 굉장히 축복이다. 국토청소도 하고, 수자원도 확보하고, 물이 넘쳐 서로 다른 지역의 생물종이 섞이면 생태계 종 다양성도 강화된다. 다만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 치수관리 전체적으로 보자면 배수관이 모이는 구역을 보다 세분화, 상세화하고 물이 넘치면 다른 쪽으로 유동성 있게 보낼 수 있는 배수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산림관리도 체계화하고. 올레길, 둘레길 등도 잘 만들어 관리하면 좋지만 억지로 산중턱 끊어 만들면 물이 고여서 산사태 위험을 크게 할 수 있다. 그러한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Today`s HOT
불타는 해리포터 성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페루 버스 계곡 아래로 추락 토네이도로 쑥대밭된 오클라호마 마을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시위대 향해 페퍼 스프레이 뿌리는 경관들
올림픽 성화 범선 타고 프랑스로 출발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이란 유명 래퍼 사형선고 반대 시위 아르메니아 국경 획정 반대 시위 틸라피아로 육수 만드는 브라질 주민들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