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직전에 긴급 추가주문 왜… 해킹 운용의 “보스”는 누구?

정원식·심진용 기자

밝혀야 할 의혹들

▲ “대북 정보전용” 해명 달리
카카오톡 감청 기능 의뢰 등
시민들 대상 해킹 가능성

국가정보원에 해킹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은밀하게 제공해온 이탈리아 해킹업체 ‘해킹팀’의 내부 자료가 외부로 유출되면서 시작된 국정원 해킹 의혹이 실무자 임모 과장의 자살로 새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국정원은 지난 19일 ‘직원 일동’ 명의의 입장 자료를 내면서 의혹 제기를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등 민간인 사찰 의혹을 강경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야당은 “고인의 죽음이 오히려 사건 의혹을 더 키웠다”며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커지기만 하는 파장에 비해 규명된 것은 별로 없다. 앞으로 밝혀져야 할 의혹들을 정리했다.

<b>자살 당일 이동 포착</b> 지난 18일 경기 용인시의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국가정보원 임모 과장이 탄 차(원안)가 당일 오전 용인시내 도로를 지나가는 모습을 담은 폐쇄회로(CC)TV 화면이 20일 공개됐다. | 연합뉴스

자살 당일 이동 포착 지난 18일 경기 용인시의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국가정보원 임모 과장이 탄 차(원안)가 당일 오전 용인시내 도로를 지나가는 모습을 담은 폐쇄회로(CC)TV 화면이 20일 공개됐다. | 연합뉴스

(1) 총선과 대선에 활용하려 했나

국정원은 2010년 중개업체 나나테크를 통해 처음 해킹팀의 RCS 프로그램 구입을 추진해 총선과 대선이 있던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운용했다. 국정원은 2012년 1월과 7월에 해킹 라이선스(목표물을 사찰할 수 있는 권한) 20개를 구매한 것이 전부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총선을 한 달여 앞둔 2012년 3월14일 국정원은 라이선스 35개를 추가 주문했다. 그해 대선을 불과 11일 앞둔 12월6일에는 ‘새 주문(긴급)’이라는 e메일을 보내 라이선스 30개를 추가 주문했다. 두 차례 주문 모두 대선개입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임 시절 이뤄진 일이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긴급한 주문이 이뤄진 이유에 대해 국정원의 해명이 필요하다.

(2) 민간인 사찰은 없었나

국정원은 지난 14일 이병호 국정원장의 국회 정보위 발언과 이후 두 차례 낸 입장 자료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대북·해외 정보전을 위한 것이었고 국민을 대상으로 한 사찰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의 해명과 달리 유출된 자료에 따르면 국정원은 카카오톡 감청 기능을 의뢰하고, 카카오톡 게임 앱에 대한 해킹을 시도했다. 메르스, 떡볶이집, 벚꽃놀이 관련 홈페이지나 블로그 등을 통해 악성코드를 심으려 했던 정황도 드러났다. 지난달에는 SK텔레콤 이용자의 갤럭시폰을 해킹하려 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대북공작용이었다는 국정원 해명과 달리 시민들의 관심사 및 활동에 대한 해킹 시도일 가능성이 있다.

(3) 업무욕심으로 9억원 지출했을까

임 과장은 유서에서 “지나친 업무에 대한 욕심이 오늘의 사태를 일으킨 듯하다”고 말해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다. 임 과장은 불법성을 알면서도 해킹팀의 RCS 프로그램 등을 구매하는 데 총 70만1400유로(약 8억8300만원)를 지출했다. 그러나 아무리 업무 욕심이 많다고 해도 9억원에 이르는 돈을 임 과장이 전결로 처리했다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 특히 돈을 지불할 당시에는 과장도 아니었다. 유출된 자료에는 “‘보스(boss)’에게 보고해야 한다”거나, “국회가 예산을 삭감해 제한된 예산만 쓸 수 있다”는 언급이 포함돼 있다. 해킹 프로그램 구입과 운용을 상부에서도 알고 있었을 공산이 커 보인다.

(4) 삭제된 자료는 복구할 수 있나

국정원은 임 과장이 죽기 전 나흘 동안 삭제한 자료를 이달 말까지 100% 복구해 국회 정보위에 보고하겠다는 입장이다. 국정원의 주장과 달리 삭제된 자료의 완전한 복구가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전문가들은 해킹 프로그램 사용 로그에 대한 분석 작업을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해킹 흔적을 지운다는 것은 로그 기록을 삭제한다는 뜻”이라며 “로그 기록은 매우 방대하기 때문에 정치권은 말싸움을 벌일 게 아니라 하루빨리 전문가들을 투입해 분석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의혹을 피해갈 수 있는 자료만 복구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한 정보기술(IT) 전문가는 “애초에 로그가 안 남도록 설계됐을 가능성도 있고 국정원이 가공된 로그를 제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정원 해킹 의혹 사건의 진상규명도 미궁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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