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릉역 교통사고 사망’

속도 경쟁에 희생된 노동자…이제는 멈춰야 한다

유선희·민서영·이홍근 기자

배달원 향한 추모 발길 이어져

<b>“도 넘은 악플 멈춰주세요”</b> 29일 서울 강남구 선릉역 교차로 인근 인도 한쪽에 지난 26일 화물차에 치여 숨진 오토바이 배달노동자를 추모하는 글귀와 용품들이 놓여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도 넘은 악플 멈춰주세요” 29일 서울 강남구 선릉역 교차로 인근 인도 한쪽에 지난 26일 화물차에 치여 숨진 오토바이 배달노동자를 추모하는 글귀와 용품들이 놓여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비에 젖은 추모 포스트잇엔
“누구나 안전하게 일할 권리”

코로나19로 배달 수요 늘면서
오토바이 교통사고도 급증
‘단건 배달’ 되레 경쟁 부추겨
“라이더보호법 조속 입법을”

비가 내려 눅눅해진 도로 위에 젖은 술병과 국화 꽃송이가 가지런히 놓였다. 주인 없는 오토바이 헬멧 안에 빗물이 흥건했다. 그 옆으로 ‘편리함에 희생된 이여 영면하소서’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배달라이더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라고 적힌 포스트잇이 붙었다. 포스트잇 글씨가 빗물에 젖어 번졌다. 지난 26일 배달에 나섰다 교통사고로 숨진 A씨를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남긴 위로의 흔적이다.

A씨의 추모공간이 마련된 서울 강남구 선릉역 8번 출구 인근에는 29일 시민의 발길이 이어졌다. 어린 손자와 함께 현장을 찾은 B씨(71)는 “일부러 손자를 데리고 왔다”며 “코로나19 시국에 어떻게 해서라도 한 건 더 벌려고 하는 오토바이 배달원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60대 추모객 C씨는 “먹고사는 게 뭔지 속상하고 너무 짠하다”며 “앞으로 이런 사고가 또 있을까 더 걱정”이라고 했다. 이날 A씨의 발인에 맞춰 추모공간의 물품을 정리했는데도 계속 국화꽃을 놓고 가는 추모객이 적지 않았다.

A씨는 지난 26일 오전 11시30분쯤 선릉역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화물차에 치어 목숨을 잃었다. 화물차 운전자는 앞에 있던 A씨를 보지 못하고 신호가 바뀌자 바로 액셀을 밟았다가 사고를 냈다. 경찰은 화물차 운전자를 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입건해 조사 중이다. 과거 강남에서 직장생활을 한 A씨는 코로나19로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자 5개월 전부터 배달라이더 일을 하다 변을 당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배달 수요가 증가하면서 이륜차 교통사고가 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이륜차 교통사고는 2016년 1만8982건에서 2018년 1만7611건으로 줄었다가 2019년 2만898건, 2020년 2만1258건으로 급증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한 첫해인 지난해 사고 건수는 2018년 대비 20.7% 늘어났다. 공단은 사고 원인 중 하나로 배달서비스 수요 증가에 따른 이륜차 운행 증가를 꼽는다.

오토바이도 유상운송 보험이 있다. 그러나 보험료가 비싸 무보험으로 일하는 라이더가 대부분이다. 홍현덕 민주노총 서비스일반노조 배달서비스지부 사무국장은 “쿠팡이츠와 일반 배달대행사의 경우 (입직 심사 시) 라이더의 보험 가입 여부를 검사하지 않는다”며 “사고가 나면 유상 보험이 있냐, 없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는 만큼 보험 가입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체 간에 불붙은 배달속도 경쟁이 사고 위험을 키운다. 지난 4월 쿠팡이츠가 라이더 1명이 1건의 배달만 하는 ‘단건 배달’을 시작하자 배달의민족도 6월부터 비슷한 서비스인 ‘배민1(one)’을 출시했다. 소비자들은 주문한 음식을 빠르게 받을 수 있고 라이더도 수입이 커지기 때문에 모두가 ‘윈윈’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목표 달성을 위해 라이더는 목숨을 건 경쟁을 벌인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이날 오후 추모공간을 찾아 “알고리즘 속도경쟁 속에서 배달노동자들의 생명과 시민들의 안전을 뒷전으로 내몰고 있는 것에 대해 걱정이 많다”며 “플랫폼 산업이 배달노동자와 시민 안전을 우선에 둘 수 있도록 강력한 통제가 이뤄져야 한다. 라이더보호법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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