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그 후, 손배폭탄이 남았다

원청 “계약관계 없으니 불법파업” 주장하는 덴 노동자 단체행동 보호 못하는 ‘노조법’이 있다

이혜리·김희진·박용필 기자

‘손배 면책 범위’ 좁고 원청이 결정 권한 쥐고 쟁의행위 제약

“전국택배노동조합 조합원들은 모두 CJ대한통운의 업무를 위탁받은 대리점들과 위·수탁 계약을 체결한 자들이다. CJ대한통운과는 아무런 계약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을 사용해 본사 건물을 점거했다.” CJ대한통운이 올해 초 CJ대한통운 본사를 점거한 택배노조를 상대로 2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면서 주장한 내용이다. 기업은 이처럼 ‘계약관계 없음’을 근거로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3조는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해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기업의 손배 소송으로부터 노조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다. 이 법은 노조법에 따른 쟁의행위일 것을 보호의 전제로 삼고 있다.

법원 판례는 근로계약 관계를 중심으로 쟁의행위의 적법성 여부를 따진다.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은 하청노동자는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거나 쟁의행위를 할 수 없게 돼 있다. 하지만 현실에선 원청이 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에 대한 실질적인 결정권을 갖는 경우가 많다. 법원 판례를 두고 ‘특수고용직이나 하청노동자의 실질적 교섭권’을 도외시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법원이 기업의 손배 소송 활용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파업에서 하청노동자들로 구성된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는 조선업 불황으로 삭감된 임금을 원상회복해달라며 1년여간 하청업체들과 교섭을 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노조가 실질적인 임금 인상의 결정권을 갖고 있는 원청(대우조선해양)에 교섭을 요구한 이유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협상에 참여하지 않은 대우조선해양은 파업으로 인한 피해가 8000억원이라고 주장하며 손배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할 의무가 있다거나, 산업안전 의제에 관해 현대제철이 하청노조와 교섭해야 한다는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이 나왔지만 아직 법적 다툼 중이다. 원청 회사가 사용자의 책임을 피하려고 하청업체를 통해 노동자에게 일을 시키는 ‘간접고용’이 확산하고,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가 늘고 있어 이들의 교섭권 제약과 그에 따른 손배 소송 문제는 앞으로 더 커질 수 있다.

현대차의 경우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해결을 요구하며 벌인 파업에 손배 소송을 냈는데, 나중에 노동자들이 법원에서 불법파견으로 인정됐다. 그럼에도 손배 소송만은 유지되고 있다. 11건에 청구금액이 약 109억원으로 집계된다. 지현민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사무장은 22일 “원청은 자기들이 사용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교섭 과정에서 하청업체 사장들에게 ‘임금을 5000원만 올려달라’고 했을 때 어느 누구도 올려줄 수 있다는 사람이 없었다”며 “모든 키는 원청이 쥐고 있는데도 노동자가 왜 파업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야기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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