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언론불신의 시대, 신뢰 회복의 시작은 ‘편집권 독립’부터

강아영 기자협회보 기자

진정한 언론개혁의 길

언론이 위기라고 합니다. 언론이 담는 세상도 평온하지만은 않습니다. 언론이 사회의 공론장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할 때 사회와 언론 모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은 6일 창간 75주년, 독립언론 출범 23년을 맞아 본지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소개하고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언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짚어보는 기획기사들을 준비했습니다.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소유가 아닌 사원이 주인인 사원주주회사 경향신문의 역사와 편집권 독립을 위한 장치, 그리고 인터넷의 보편화 등에 따른 종이신문의 변신 노력을 소개합니다. 이어 가짜뉴스, 기레기 등의 단어들이 횡행하는 언론 불신의 시대 상황과 최근 정치권에서 벌어진 언론중재법 개정 논란을 돌아보며 언론의 참 역할과 언론개혁의 방향을 고민해보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1987년 이후 제도 도입됐지만
생존논리 속 커진 광고주 영향
여전히 공고한 자본에의 예속
정부·정치권 개입도 적지 않아

언론개혁. 어딘가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질 이 단어가 당신은 아마 익숙할 것이다. 기사를 조금이라도 챙겨봤다면 근래 지겹도록 보고 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불신에서 나아간 언론개혁의 구호가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으로 변화해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지난 두 달. 결국 법안을 강행 처리하려 했던 더불어민주당이 한발 물러서며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갔지만, 이대로 언론을 두고 볼 수 없다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법안에 찬성했건 반대했건 언론불신은 외면할 수 없는 현상이고, 이제 진정한 언론개혁이 무엇일지 모두가 고민할 차례가 돼서다.

사실 아주 기초적인 답은 예전부터 나와 있었다. 바로 ‘편집권의 독립’이다. 편집권의 독립이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 등 외부의 영향과, 언론사주 및 편집국 간부 등 내부의 압력에서 벗어나 기자들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보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편집권의 독립이 이뤄져야 건전한 여론을 형성하고 진정한 국민의 알 권리를 실현할 수 있다. 그래서 언론학자들은 언론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로 편집권의 독립을 꼽기도 한다.

누군가는 뜬금없는 소리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다. 세계 언론자유 지수에서 한국이 올해도, 지난해도 아시아에서 1위를 차지했으니 기자들이 편집권 또한 마음껏, 자유롭게 누리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 언론사에서 진정한 편집권 독립은 이뤄진 적이 없다. 오히려 과거 편집권 독립을 위해 만들었던 각종 제도적 장치들은 오늘날 거의 무력화된 상황이다. 박홍원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일선 기자들의 취재활동은 현재 상당히 독립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사주와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일부 데스크들이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객관적인 보도를 방해하고 있다”며 “객관적 보도를 위해서라도 편집권 독립은 매우 중요한 가치”라고 말했다.

■ 편집권 독립, 경영난에 사실상 후퇴

한국 편집권의 역사는 1964년의 언론윤리위원회법 파동 때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실제 편집권 독립이 제도적으로 활발히 구현된 시기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이다. 이 시기는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언론통제의 법적 토대를 이루었던 언론기본법이 폐지되면서, 대다수 언론사들에 노동조합이 설립됐던 때다. 당시 언론사 노조들은 회사 측과 교섭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편집권의 독립을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제도들이 마련됐다. 회사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노사가 참여해 편집 방향을 평가하고 논의하는 공정보도위원회 제도라든지 일선 기자들이 직간접적으로 편집국장 선출에 관여하는 제도 등이 이 시기에 도입됐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신문사들이 무한경쟁에 돌입하고 이윤 극대화라는 경영논리가 강조되면서, 또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영난이 가속화하면서 언론의 공적 기능보다 시장에서 생존해야 한다는 논리가 우선시됐다. 이런 환경에서 자연스레 사주와 경영진의 권한은 더욱 강화됐고, 반면 기자들의 독립성은 약화됐다. 결국 기자들이 영업활동에 투입되거나 광고주의 입맛에 맞게 기사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거부감도 점차 줄어들었다.

자본에의 예속은 오늘날에도 공고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년마다 실시하는 언론인 의식조사에서 언론인들은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매번 광고주를 꼽고 있다. 2019년엔 언론인의 68.4%가, 2017년엔 74.2%가 광고주를 선택했다. 편집·보도국 간부나 사주·사장, 정부나 정치권에 비해 높은 수치다.

그렇다고 정부·정치권의 개입이 적은 것도 아니다. 정부가 사장 선임에 개입할 수 있는 언론사들엔 심심찮게 정권 코드에 맞는 사장이 임명돼 기자들과 큰 갈등을 빚었다. 2012년 MBC와 KBS, YTN, 연합뉴스 종사자들의 연쇄 파업이 한 예다. 기자들은 사장 퇴진을 요구하면서 실질적으로 편집권을 지키려 분투했다. 2012년 MBC 노조 홍보국장으로 일하다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해고됐던 고 이용마 기자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MBC 파업은 김재철 사장 퇴진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편집권 독립이 주요 이슈였다”며 “합법적 경영권을 이유로 간부를 줄 세우기 할 경우 마땅히 이들을 견제할 장치가 없다”고 말했다.

■ 독자권익위·편집위, 없는 곳이 더 많아

편집위·규약 설치 조항 지워진
신문법 개악 다시 개정 움직임
기자 자유 넘어 독자 참여 더해
실질적 피드백 장치 마련해야

실제 언론사 내부엔 편집권 독립을 위한 제도가 미흡한 실정이다. 경영진으로부터 편집권을 보장받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구성원의 의견을 반영한 편집·보도국장 선출이 거론되지만, 현재 실질적인 선출 제도를 유지하는 언론사는 드물다. 그나마 회사가 편집·보도 책임자를 임명한 후 기자들의 동의를 얻는 임명동의제가 언론계에 자리 잡아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마저도 사주가 있는 일부 신문사엔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 언론사엔 일정 구성원이 편집국장 불신임안을 발의해 대표이사가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편집국장 불신임투표제가 있지만 까다로운 요건 탓에 실현된 적은 없다.

언론사와 독자가 소통할 수 있는 통로인 독자위원회 또는 시청자위원회도 있는 곳보다 없는 곳이 더 많다. 지상파 방송사 3사와 연합뉴스는 각각 방송법, 뉴스통신진흥법에 의거해 시청자위원회, 수용자권익위원회를 두고 있지만 신문사는 신문법에 강제 조항이 없다. 신문법엔 ‘독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자문기구로 독자권익위원회를 둘 수 있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몇 년간 전국언론노조를 중심으로 신문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원래 신문법은 언론인들의 편집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편집위원회와 편집규약을 설치할 수 있도록 했는데, 2009년 전문이 개정되면서 이 내용 상당 부분을 상실했다. 편집위원회는 편집국장과 사측 관계자를 비롯해 노조 대표나 젊은 기자 대표까지 모여 보도 방향이 편집규약에 부합하는지 논의를 진행하는 기구로, 언론계에선 이 기구의 의무 설치를 편집권 독립의 단초로 보고 있다.

언론노조의 노력으로 2019년엔 우상호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엔 김승원 민주당 의원이 신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엔 ‘기자들의 취재와 편집 자율성 보장’ ‘편집위원회 및 편집규약의 의무화’ 등이 포함됐고, 이를 준수하는 언론사에 정부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그러나 국회는 이 법안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다만 최근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함께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언론중재법과 정보통신망법, 방송법에 더해 신문법 전반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혀 언론계의 기대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용성 한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2009년 신문법이 개악되는 과정에서 편집 자율성이 약화됐는데 최근 신문법 개정안들은 2005년 신문법이 만들어졌을 때보다 높은 수준의 편집 자율성을 보장하도록 돼 있다”며 “국회 논의 과정에서 조정이 될 수 있겠지만 미디어 환경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기자들의 편집 자율성을 보장하는 제도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은, 언론의 공공성을 지킨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편집권의 독립은 기자들만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에 독자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안되고 있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는 “회사가 일방적으로 힘을 가질 때 억압에 저항하는 의미에서, 기자들의 편집권 독립은 물론 중요하다”며 “다만 실제 그런 억압이 없는 곳에선, 생산된 결과물에 대한 시민사회와 전문가들의 평가와 반응을 내부에서 논의할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독자권익위원도 어떻게 보면 언론사가 위촉하는 것”이라며 “그보단 외부의 합리적인 평가에 대해 설명하거나 해명하는, 실질적인 피드백이 가능한 장치를 마련해야 하고 그때야 편집권 독립의 본질적 의미를 구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고]언론불신의 시대, 신뢰 회복의 시작은 ‘편집권 독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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