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과 재미 사이 매일 줄타기…“늘 마감 못하는 악몽 꿉니다”

문주영 기자

22년째 경향 ‘그림마당’ 그려온 김용민 화백

언론이 위기라고 합니다. 언론이 담는 세상도 평온하지만은 않습니다. 언론이 사회의 공론장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할 때 사회와 언론 모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은 6일 창간 75주년, 독립언론 출범 23년을 맞아 본지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소개하고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언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짚어보는 기획기사들을 준비했습니다.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소유가 아닌 사원이 주인인 사원주주회사 경향신문의 역사와 편집권 독립을 위한 장치, 그리고 인터넷의 보편화 등에 따른 종이신문의 변신 노력을 소개합니다. 이어 가짜뉴스, 기레기 등의 단어들이 횡행하는 언론 불신의 시대 상황과 최근 정치권에서 벌어진 언론중재법 개정 논란을 돌아보며 언론의 참 역할과 언론개혁의 방향을 고민해보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경향신문 시사만평 ‘그림마당’을 담당하는 김용민 화백이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사무실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작업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경향신문 시사만평 ‘그림마당’을 담당하는 김용민 화백이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사무실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작업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아침부터 아이템 찾느라 고민,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또 고민
“풍자의 칼날이 명확하고 형식적으로도 다양한 시도” 평가받아
“고통받은 약자 대변하려 노력”…시사만화의 진화 이끌지 주목

흔히 시사만화는 그 시대의 기록이라고 일컫는다. 시사만화만 훑어봐도 시대의 핫이슈가 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사만화가로서의 삶은 결코 녹록지 않다. 저널리스트와 창작자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그들은 ‘시사’가 갖는 공공성과 비판기능, ‘만화’가 지닌 재미와 웃음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맞춰야만 하기 때문이다.

특히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종이신문을 기반으로 한 시사만화는 점차 쇠락하고 있다. 10대 주요 종합일간지 중 네 컷 만화는 경향신문의 ‘장도리’를 끝으로 지난 4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한 컷 만화인 시사만평도 6개 매체에서만 운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향신문의 김용민 화백은 지난 22년 동안 한 컷 시사만평 ‘그림마당’을 책임지고 있다. 1999년 4월1일부터 연재된 ‘그림마당’은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김 화백은 1995년 경향신문에 입사했다. 입사 초기엔 미술팀에 소속돼 경향신문 별지 섹션인 ‘매거진X’의 삽화를 주로 그렸다. 그러다 당시 본지 만평을 맡고 있던 김상택 화백이 중앙일보로 자리를 옮기자 김 화백이 배턴을 이어받아 본격적으로 시사만평을 그리기 시작했다.

김 화백은 “시사만평 초기엔 정치권 이슈보다 오히려 내가 그리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그렸다”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엔 남북·외교 문제, 노동 이슈 등에 관심을 갖고 많이 다뤘다”고 말했다.

비판과 재미 사이 매일 줄타기…“늘 마감 못하는 악몽 꿉니다”
비판과 재미 사이 매일 줄타기…“늘 마감 못하는 악몽 꿉니다”
김용민 화백이 그린 ‘그림마당’ 주요 만평들.

김용민 화백이 그린 ‘그림마당’ 주요 만평들.

현재 그는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매일 오전 10시 즈음 출근해 원고 마감시간인 오후 8시반까지 하루 10여시간 일한다. 정치·사회·시사 문제를 머릿속에 늘 떠올리며 아이템을 찾는다. 김 화백은 “이 일이 22년째인데도 마감 못하는 꿈을 늘 꾼다”며 “현실이 처한 문제를 위트있고 재미있게 비판하는 일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 어렵게만 느껴진다”고 털어놓았다.

‘그림마당’이 갖는 정체성에 대해 그는 “시사만화는 고통받는 약자를 대변해 공정한 세상이 될 수 있게 사회의 방향을 유도해야 한다”며 “그런 차원에서 고통받고 힘든 노동자들, 소시민들의 문제를 많이 다루려 한다”고 밝혔다.

김 화백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들어 뛰어난 풍자성을 지닌 작품들을 다수 발표했다. 백정숙 만화평론가는 “김 화백이 보수정권 때 풍자의 칼날이 명확하면서도, 형식적으로도 다양한 시도의 좋은 창작물들을 많이 그려냈다”고 말했다.

김 화백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이명박 정부의 MBC 장악 사건을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 빗댄 ‘친절한 엠비씨…이제부터 너희나 잘하세요’(2010년 2월9일자),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과거 후보 시절 새누리당 공천 헌금 의혹과 관련해 말 바꾸기한 것을 비판한 ‘바꾸네’(2012년 8월8일자), 세월호 참사를 실종자 가족의 심정에 빗대어 구구절절 사연을 녹여낸 ‘세월호 실종자 유가족’(2014년 4월22일자) 등이 있다.

하종원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김 화백은 2016년 전국시사만화협회가 주는 ‘올해의 시사만화상’ 대상을 수상하고, 우수상도 2번(2014년·2020년) 받는 등 저력있는 작가”라고 평가했다. 그는 ‘그림마당’이 갖는 차별성과 관련해 “시사만화의 경우 대개 글보다는 그림에 비중을 크게 두는 반면 김 화백은 ‘검새’(2010년 1월23일자) 작품에서 보듯 용어에 대한 장문의 패러디를 창작하고 ‘세월호’ 관련 작품들처럼 시적인 말들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등 글이라는 직관적 요소를 잘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비판과 재미 사이 매일 줄타기…“늘 마감 못하는 악몽 꿉니다”
김용민 화백이 그린 ‘그림마당’ 주요 만평들.

김용민 화백이 그린 ‘그림마당’ 주요 만평들.

하 교수는 또 “김 화백은 나비를 타고 하늘로 날아간 김복동 할머니(2019년 2월1일자) 작품에서 보듯 서정적인 리얼리즘도 추구한다”며 “영화는 물론 동요·그림·사진 등의 모티브를 만화 세계와 접목해 현실의 이야기를 다층적으로 녹여내는 능력도 탁월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시사만평은 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종이신문이 처한 어려운 현실이 시사만평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유튜브·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뉴스 소비의 다변화, 상업자본에 대한 종속 심화, 언론중재법 등도 시사만평의 운신을 좁게 만든다.

백 평론가는 “경향신문은 다른 언론과 달리 편집권의 독립성이 보장되기에 시사만평도 자율성을 부여받지만 대신 독자의 거센 항의를 만평가가 고스란히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고 지적했다. 하 교수도 “요즘 독자들의 경우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진실로 받아들이는 ‘자기 확증주의’가 강해 만평가가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등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사만화는 공공성이라는 측면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진화하고 발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하 교수는 “일반 만화가 만화잡지라는 과거의 플랫폼을 버리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웹툰 영역을 새롭게 개척했듯이 시사만화도 새로운 연출법을 익혀 새로운 매체에 새로운 시도들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며 “역사의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시사만화를 책으로 출판하는 작업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 평론가는 “내가 아는 김 화백은 굵직한 작가”라면서 “쉽게 움직이지는 않지만 자신을 담금질하며 향후 새로운 시도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Today`s HOT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틸라피아로 육수 만드는 브라질 주민들 아르메니아 국경 획정 반대 시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이란 유명 래퍼 사형선고 반대 시위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올림픽 성화 범선 타고 프랑스로 출발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