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부터 디지털 전략까지…“국장, 이의 있습니다” 열린 토론

박재현 기자

공정·신뢰 보도와 독자 신뢰 이끄는 경향신문 독립언론실천위

언론이 위기라고 합니다. 언론이 담는 세상도 평온하지만은 않습니다. 언론이 사회의 공론장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할 때 사회와 언론 모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은 6일 창간 75주년, 독립언론 출범 23년을 맞아 본지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소개하고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언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짚어보는 기획기사들을 준비했습니다.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소유가 아닌 사원이 주인인 사원주주회사 경향신문의 역사와 편집권 독립을 위한 장치, 그리고 인터넷의 보편화 등에 따른 종이신문의 변신 노력을 소개합니다. 이어 가짜뉴스, 기레기 등의 단어들이 횡행하는 언론 불신의 시대 상황과 최근 정치권에서 벌어진 언론중재법 개정 논란을 돌아보며 언론의 참 역할과 언론개혁의 방향을 고민해보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경향신문 독립언론실천위원회가 지난 6월7일 오후 7시 편집국 회의실에서 편집국장단과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2월 말부터 5월 말까지의 지면 비평과 함께 디지털 개편 전략에 대한 질의와 설명이 이뤄졌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경향신문 독립언론실천위원회가 지난 6월7일 오후 7시 편집국 회의실에서 편집국장단과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2월 말부터 5월 말까지의 지면 비평과 함께 디지털 개편 전략에 대한 질의와 설명이 이뤄졌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1987년 6월항쟁 당시 서울역에서
발송 앞둔 본지 4만3000여부 ‘소각’
이후 기자·구성원들 ‘뼈아픈 반성’
독실위 전신 자유언론실천위 결성
사원주주 이후도 ‘언론 독립’ 계승

독실위원과 편집국장·부장단이
기사 분석·평가 놓고 팽팽한 토론
진실 보도 위한 편집권 독립 ‘상징’

지난해 창간 기념일이 한 달여 지나고 초판 기사 마감을 마친 오후 7시 편집국 회의실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화들이 오갔습니다.

편집국장 : 앞서 전두환 광주 재판 때 호칭을 ‘전두환 전 대통령’에서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로 변경했다. 대통령 호칭을 붙이는 게 적절한지 부장회의에서 논의했고 대통령 예우가 박탈돼서 형이 확정된 사람은 ‘씨’로 표기하자고 결정했다.

독립언론실천위원회위원(독실위원)1: 씨로 바꾸는 의미는 무엇인지… 법적 예우는 단순히 법적인 문제고 박근혜 전 대통령도 파면됐을 때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전 대통령으로 썼다. 공천개입 사건이 유죄로 확정돼서 씨로 쓰고 있는데 누군가가 보기에는 감정적인 대응으로 비칠 수 있다.

독실위원2 :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다루는 게 의미가 있는데 굳이 호칭을 격하시킬 필요는 없다고 본다.

편집국장 : 총의가 모아지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대법원은 2020년 10월29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상고심에서 징역 17년과 벌금 130억원, 추징금 57억여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이후 경향신문은 그의 호칭을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로 변경했습니다. 변경이 이뤄지고 난 뒤 열린 독립언론실천위원회와 편집국장단 간의 간담회에서 이 같은 결정이 타당한지 의문이 제기된 것이었죠. 일반 기업으로 치면 중역회의 결정 사항에 사원·대리들이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셈이라 할까요.

다시 한번 회의록을 보시지요. 이날 열린 간담회에서는 전달 창간기획을 포함한 3분기 기사들에 대한 평가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창간기획으로 경향신문은 ‘2030 자낳세(자본주의가 낳은 세대) 보고서’를 연재했습니다. MZ세대의 투자열풍이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의미를 찾는 기획이었습니다.

독실위원3 : 창간기획에 대한 아쉬운 점 위주로 얘기하자면 첫 번째는 타이밍이다. 기획 시작 시점이 주식시장 상황에 비해 늦었다는 평가가 있었다. 두 번째는 2회의 주목도가 떨어졌는데 뒷면에 배치됐기 때문이었다는 의견이 있었다.

편집국장 : 창간기획 아이템으로 나온 것 중 젊은이와 돈이 관련된 게 많아서 창간기획팀에서 젊은 사람들끼리 주제를 모아보라고 하고 전적으로 맡겼다.

기획에디터 : 기획 타이밍을 이것(시장 상황)으로만 판단할 수 없을 것 같다. 과연 이 얘기를 적절한 시기에 했는지를 봐야 할 것 같다. 주식시장과 꼭 연동해야 하는 것만이 적절한 타이밍인지 모르겠다.

국장단과 독실위원 간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실제로 독실위 간담회는 편집국장 및 부장단 이상 간부들에게 가시방석과 같은 자리입니다. 정치부, 경제부, 사회부 등 부서별로 기자들이 기사들을 분석하고 의견을 취합해 간담회 안건을 정합니다. 기사의 평가뿐 아니라 인사이동이나 주요 의사결정 과정의 합리성 여부 등에서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호된 질책을 받습니다. 또 이해가 부족하거나 오해가 있을 경우 이를 바로잡고 이해의 폭을 넓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지난 6월 신임 편집국장이 임명되고 7월13일에 열린 간담회에서는 (“국장 취임 이후 이뤄진) 이번 인사에 반영된 국장의 구상이 사전에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것 같다는 지적이 있다. 특정 부서의 강화와 일부 부서의 감원이라는 결과가 나왔는데, 어떠한 판단과 향후 구상이 작용했는지 알고 싶다”는 질문에 국장이 인사의 방침과 방향에 대해 소상히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6월 이후 이 같은 독실위 간담회는 두 번 열렸고, 디지털 전환 평가회도 독실위 주도하에 개최됐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막강한’ 독립언론실천위원회는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공정하고 진실된 보도 없이는 독자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외면당한다는 경험에서 얻은 교훈입니다. 좌절하고 탄압에 맞서지 못하고 입을 다물며 시대의 요구를 외면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언론으로 태어나기 위한 투쟁의 결과가 독실위입니다.

1987년 6월18일 오후 9시 전두환 정권에 항의하기 위해 서울역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던 시민들은 부산·경남행 열차로 발송되려던 경향신문 4만3000여부를 불태웠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나흘 후 기자들은 ‘본지 소각사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통해 “우리 신문이 이른바 보도지침에 안주하면서 독자보다는 권력을, 객관적 사실보다는 가공된 현실을, 역사적 소명감보다는 일방적 시각을 추종해 온 직무유기의 당연한 귀결”이라며 반성했습니다. 반성은 행동으로 이어져 기자협회를 만들고, 1988년 3월18일에는 노동조합을 결성해 자유언론 실천과 사내 민주화에 앞장서게 됐습니다. 노조 설립과 함께 활동에 들어간 게 자유언론실천위원회(자실위)입니다. 당시 ‘정권지’라는 오명에서 어떻게 벗어날지를 모색하는 자실위는 노조의 가장 중요한 활동이었습니다. 자실위는 1주일에 한번씩 모임을 열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했고 논의 결과를 노보에 알렸습니다. 이후 편집권 독립을 강화하기 위해 편집제작평의회 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1998년 사원주주회사로 ‘독립언론’의 길을 걷게 되면서 2002년에 독실위로 개편됐고, 2011년부터 편집국장과 부장단 이상 간부와 독실위원들 간의 간담회가 정기적으로 열리게 됐습니다.

언론은 독자 편에 서서 사회 전반의 비리와 부조리를 감시하고 정의롭고 공정하면서도 투명한 사회 건설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경향신문 임직원은 공정하고 진실된 보도와 논평을 통해 할 말은 하고 쓸 것은 쓰는 사회 공기로서의 사명을 다할 것입니다. 그 중심에 독실위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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