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여전히 가장 믿을 만한 ‘틀’…진보언론, 깊이를 좇아야

반기웅·강은 기자

기자·언론 불신의 시대, 원로 언론인에게 듣는다…성한표

언론이 위기라고 합니다. 언론이 담는 세상도 평온하지만은 않습니다. 언론이 사회의 공론장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할 때 사회와 언론 모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은 6일 창간 75주년, 독립언론 출범 23년을 맞아 본지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소개하고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언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짚어보는 기획기사들을 준비했습니다.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소유가 아닌 사원이 주인인 사원주주회사 경향신문의 역사와 편집권 독립을 위한 장치, 그리고 인터넷의 보편화 등에 따른 종이신문의 변신 노력을 소개합니다. 이어 가짜뉴스, 기레기 등의 단어들이 횡행하는 언론 불신의 시대 상황과 최근 정치권에서 벌어진 언론중재법 개정 논란을 돌아보며 언론의 참 역할과 언론개혁의 방향을 고민해보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1970년대 조선일보 해직 기자들을 주축으로 결성된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의 성한표 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정원에서 경향신문 기자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1970년대 조선일보 해직 기자들을 주축으로 결성된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의 성한표 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정원에서 경향신문 기자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현안 관련 자극적인 주제 다루는
1인 미디어 등 주목받고 있지만
방송·신문이 비교당해선 안 돼
매체력 살려 더 분발해야 할 때

뚜렷했던 색깔 옅어진 요즘 경향
포장 잘된 대기업·보수정치인에
무작정 비판적 논조를 낼 순 없어
‘정밀 분석’이 진보언론 나아갈 길

각종 의혹과 게이트에 언론인 이름이 오르내린다. 시국을 기록해야 할 기자가 게임판의 ‘말’ 역할을 한다. 부정부패와 ‘원팀’이 된 기자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언론에 대한 불신은 더욱 짙어진다. 언론에 대한 혐오도 서슴지 않는다. 1975년 유신정권에 맞서 “언론자유 수호”를 외쳤던 기자, 성한표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선투위) 위원장은 46년이 지난 2021년에도 언론의 현실을 고민한다. 그때와는 또 다른 의미로 언론은 위기에 처했다. 시민들은 언론이 존재하는 의미를 묻는다. 지난달 30일 성 위원장을 만나 언론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성 위원장은 조선일보 해직기자 출신으로 한겨레 논설주간, SBS 사외이사 등을 지냈으며, 이후에도 신문과 방송에서 오랫동안 뉴스 비평을 진행한 원로 언론인이다. 그는 현재 언론의 위기에 대해 “언론은 여전히 세상의 일을 알리는 가장 믿을 만한 하나의 틀”이라며 “기자들이 1인 매체, 유튜브의 콘텐츠보다 더 깊이 있고 정확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경향신문이 제대로 언론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묻자 “진보언론은 사안을 더 깊게 봐야 한다. 깊이가 없으면 다른 언론과 차별화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 ‘대장동 게이트’를 비롯해 기자 이름이 사회 이슈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 그게 내 신조다. 지금 그 사람들이 기사로 어떤 말을 해왔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기자가 기사가 아닌 다른 이유로 세상에 나오는 것은 나로서는 즐거워하지 않는 방식이다.”

- 지금의 언론을 신뢰하고 있나.

“언론은 여전히 세상의 일을 알리는 가장 믿을 만한 하나의 틀이라고 본다. 그러니 시민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기자들이 더 잘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의도적으로 사실 왜곡을 많이 하는 언론이 있다면 그 언론이 신뢰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선의를 갖고 만드는 신문과 방송에서 어떤 경우에 오보가 나왔다고 해서 ‘언론 아니야’라고 볼 수는 없다.”

- 사실을 왜곡하는 언론들을 막겠다며 여당에서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언론중재법을 만든 사람들이 강조하는 게 이런 거다. ‘언론에 의해 피해를 입은 시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사람들을 구제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이다. 피해를 해결하고 구제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형태의 언론중재법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 그 법은 ‘조·중·동(조선·중앙·동아)’ 같은 힘 있는 언론을 견제하기에는 너무 약하고 방향도 맞지 않다. 상대적으로 힘이 부족한 언론만 더 힘들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언론은 여전히 가장 믿을 만한 ‘틀’…진보언론, 깊이를 좇아야

- 얼마 전에는 한 인사가 언론계 원로인 이부영, 성한표, 신홍범 등 세 분에게 언론중재법 개정에 동참해달라는 내용의 공개 서신을 쓰기도 했습니다.

“읽어 보지는 않았다. 물론 그렇게 주장하는 이들의 선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무엇이 진짜 언론의 문제인지. 문제 원인을 너무 가볍게 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 법, 힘 있는 언론들은 뒤로 다 빠져버린다. 법으로 언론을 규제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 필연적으로 부작용이 따를 것이다.”

- ‘기레기’라는 단어를 들어봤나.

“세월호 때부터 기레기라는 말이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기자를 했던 사람으로서, 글쎄. 기자들이 이런 취급을 받을 건 아닌 것 같다. 주변 기자들을 보면 아주 올바른 판단을 하고 정의를 위해서 자기를 다 던지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레기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기자 본분을 잊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기자들은 많지 않다. 외부에서 그렇게 말하면 당신들은 그렇게 볼지 모르지만 내부에서는 잘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방어해야 마땅하다. 그 말을 듣고 자괴감에 빠져서 ‘맞아 기레기야’ 하고 동조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 자극적 소재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떠다니는 게시글을 기사화하면 반응이 폭발적이다. 반면 공들여 쓴 기사는 외면당하는 경우가 많다.

“원론적이지만 일단 기자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길 권한다. 자기 기사가 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에게 쉽게 전달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어떤 사안을 쉽게 설명하는 훈련을 철저하게 받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 고민해 보자. 기사에서 다루는 주제가 시민들이 볼 때 사회적으로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주제가 맞는지. 그렇게 훈련하고 고민하면서 천천히 나가면 된다. ‘요즘은 자극적인 기사만 잘 팔린다.’ 이렇게 단정지을 일은 아니다.”

- 현직에 있을 때와 언론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기사가 유통되는 구조도 달라지지 않았나.

“내가 기자 시절 고민했던 주제는 정권의 외압이었다. 기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현실에 자괴감을 느꼈다. 그때 정권에 저항하는 대학생 데모가 잦았다. 언론사에서 모든 데모 기사를 안 내보낼 수는 없으니까 신문 ‘1단 기사’로 내보냈다. 전부 1단 크기의 작은 기사로. 당시에 연탄가스 중독사가 잦았는데 한 명이 사망하면 1단 기사. 두 명이 사망하면 2단 기사였다. 사실 그 정도 규모의 학생 데모 기사라면 데모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제목을 크게 달고, 데모의 의미나 성격을 설명하고, 사례를 밑에 달아 놓았어야 했다. 그런데 그럴 수 없으니 대학별로 작은 1단 기사만 여기저기 흩어서 내보냈다. 당시 대학생들이 신문사에 찾아와서 우리 시위가 연탄가스 중독사 소식만도 못하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그만큼 정권의 언론 통제가 극심했다. 참다못해 1975년 기자들이 일어났고 해고당했다. 이게 당시 상황이었으니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이었다. 지금 기자들이 갖는 고민이나 한계가 무엇인가. 외부 저항인가 내부 압력인가. 어쨌든 지금은 신문사를 폐쇄시키는 외부 권력은 없지 않나. 아마도 자본 권력에 따른 압박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볼 수는 없을 테고.”

- 언론의 미래가 고민이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기자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지금의 신문·방송이 생존할 수 있을지.

“그럴 것이다. 지금 기자들은 언론 환경 전체, 구조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것 같다. 이 점은 우리 때와 다른 부분이다. 과거 언론인들은 자신이 기자라는 것만 생각했지. 앞으로 우리 신문사가 어떻게 될 것이냐, 직업으로서 기자라는 전망이 좋냐 아니냐 이런 고민을 할 겨를이 없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문제들은 해소됐는데, 이제는 미래 문제가 가장 큰 이슈다. 유튜브가 나오고 1인 미디어가 나오면서 신문·방송이 언제까지 보도와 논평의 리더가 될 수 있겠는가 하는 불안감 등 굉장히 복잡한 문제다. 기자들이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다만 불투명한 미래 문제를 현직 기자로서 응당 해야 할 일과 연결지어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현실을 보고 올바른 비판 의식을 갖고 보도하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당장 해야 하는 일들은 현실에 대한 분석이고 부당한 일에 대한 저항이고 사회현상에 대한 논평이다.”

- 유튜브가 언론을 대체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기자들이 만든 뉴스를 생각해보라. 1인 매체, 유튜브에서 생산하는 뉴스 콘텐츠는 중간 단계에 있지 완성형이 아니다. 아직까지는 기존 미디어의 대체재가 될 수 없다. 물론 앞으로는 모른다. 기자들이 유튜브에서 만들어 내는 뉴스보다 더 깊이 있고 정확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상대가 되지 않도록. 독자들에게는 양질의 콘텐츠를 구분할 판별력이 있다. 깊이 있는 뉴스를 만들라. 그러면 유튜브는 따라올 수 없다.”

-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이 크다. 이제는 유튜브만 믿는다는 분들도 있다.

“그냥 ‘세상이 바뀌었구나’ 생각하는 것으로 그치면 안 된다. ‘우리는 굉장한 인적 자원이 있고 매체력이 있으니 분발해야지’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 1인 미디어를 막을 수는 없지만 전문가들이 만드는 방송이나 신문과 비교 대상이 되도록 내버려두면 안 된다. 기자들이 분발해야 한다. 더 쉽게 쓰고 깊이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추상적인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결국 기사를 잘 만드는 수밖에 없다. 대책 없이 자괴감에만 빠져 있으면 안 된다는 얘기다.”

- 경향신문이 언론 역할을 잘하고 있나.

“옛날보다 표가 좀 덜 난다. 예전에는 경향, 한겨레가 확연하게 조·중·동과 차이가 났는데 요즘은 차이가 덜 난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렇게 평가한다. 그런데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 이해한다. 뚜렷한 색깔 차이를 낼 만한 계기가 없는 시대다. 이를테면 보수와 재벌이 예전처럼 많은 기삿거리를 쏟아낸다고 쳐보자. 그러면 관련 사실을 보도만 해도 보도를 안 하는 신문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이슈가 없다. 대기업도 보수정당, 보수정치인도 그렇고 상당히 포장을 잘해놓았다. 외형적으로 크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어떤 선배들은 ‘옛날엔 진보언론이 비판적인 논조도 많았는데 왜 이리 약해졌어’ 이러는데, 사실 건수가 있어야 비판을 하지, 무작정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진보언론은 사안을 더 깊게 봐야 한다. 깊이가 없으면 다른 언론과 차별화가 쉽지 않다.”

- 현직 안에서도 선배 기자와 저연차 기자 사이에 세대차가 있다.

“있을 것이다. 요즘 젊은 기자들, 아니 젊은 사람들은 여야 차이를 우리 세대만큼 크게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가령 윤석열과 이재명. 개인 캐릭터가 아니라 야당 후보, 여당 후보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나. 우리 세대는 입장이 분명했다. 예컨대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기 이전에는 여야 구분이 확연했다. 특히 박정희 정권 때는 구분이 확실했다. 박정희는 독재 정권이니까. 거기서 하는 일을 감시하다 보면 비판할 일이 많았다. 그때는 별 고민 없이 기자 개인이 갖는 정치인에 대한 호감, 선호 관계에서 자유로워지려는 노력이 없어도 어느 정도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구분이 애매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기자들은 더 고민해야 한다. 윤석열, 이재명을 자신과 떼어놓고 객관화시키고 두 사람을 전문적으로 다뤄야 한다. 기자가 개인적으로 호감을 갖는 사람이라도 비리를 저지르면 기사로 비판해야 한다. 개인의 선호도 혹은 이념에 따라서 사안을 판단하면 기자가 아니다. 그건 선전 매체, 선전 도구의 하나일 뿐이다. 기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이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지만 이념을 떠나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래야 기자다.”

- 여야 구분 없이 똑같은 기득권 세력으로 보는 여론도 많다.

“여야를 구분하는 인식, 언론인들 사이에서도 옅어졌을 것이다. 그걸 부인해서는 안 된다. 사회 전반적으로 옅어지고 있다. 현상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언론이 사회와 별개로 존재하는 집단은 아니니까. 다만 이런 때일수록 기자 나름의 옳고 그름, 기준을 세워서 사안마다 철저히 판단해 나가야 한다.”

- 후배 언론인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앞으로 없어질 직업에는 늘 기자가 들어가 있더라. 미래학 연구 보고서 같은 거 보면 항상 기자가 없어진다고 한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면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지 않나. 누군가는 이 복잡한 상황을 알기 쉽게 정리해서 시민들과 공유해야 한다.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을 기자라고 할지 아니면 다른 명칭으로 부를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런 직업이 없어질 리는 없다. 기술 발달로 1인 미디어가 쏟아져 나오는데 언론 조직에서 정식으로 훈련받은 기자들이 1인 미디어와 경쟁하는 상황에 처해서는 안 된다. 1인 미디어가 도달할 수 없는 깊이를 찾아야 하는 과제가 지금 기자들에게 부여된 거다. 어렵겠지만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우리 사회에서 언론의 기능은 더 강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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