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독재 보도 ‘폐간·통폐합’, 친여기관지 ‘오명’ 딛고…사상 첫 사원주주 신문사, 한국 언론 ‘새 역사’

장은교 소통·젠더데스크

경향신문이 걸어온 75년

반독재 보도 ‘폐간·통폐합’, 친여기관지 ‘오명’ 딛고…사상 첫 사원주주 신문사, 한국 언론 ‘새 역사’
반독재 보도 ‘폐간·통폐합’, 친여기관지 ‘오명’ 딛고…사상 첫 사원주주 신문사, 한국 언론 ‘새 역사’
안신배 전 경향신문 사장과 윤흥인 전 자립경영추진위원장이 1998년 2월2일 기자회견에서 경향신문의 사원주주 회사 출범을 알리고 있다(위 사진). 이후 경향신문은 ‘독립 언론’을 기치로 특종과 심층보도를 이어가며 대표적 진보언론으로 성장했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알리는 호외를 경남 양산 부산대병원을 찾은 시민들이 읽고 있는 모습(가운데)과 2008년 6월 ‘광우병 쇠고기 논란’ 당시 촛불 행진을 하던 시민들이 경향신문사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아래 사진)에서 시민들의 신뢰를 확인할 수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안신배 전 경향신문 사장과 윤흥인 전 자립경영추진위원장이 1998년 2월2일 기자회견에서 경향신문의 사원주주 회사 출범을 알리고 있다(위 사진). 이후 경향신문은 ‘독립 언론’을 기치로 특종과 심층보도를 이어가며 대표적 진보언론으로 성장했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알리는 호외를 경남 양산 부산대병원을 찾은 시민들이 읽고 있는 모습(가운데)과 2008년 6월 ‘광우병 쇠고기 논란’ 당시 촛불 행진을 하던 시민들이 경향신문사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아래 사진)에서 시민들의 신뢰를 확인할 수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향신문은 사원주주회사입니다. 특정 기업이나 재단에 속하지 않고 사원들이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1946년 10월 창간 후 천주교재단, 한화그룹 등과 함께한 경향신문은 1998년 3월 ‘독립언론’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국내 언론사 중 사원주주회사가 된 것은 경향신문이 처음이었습니다. 격변의 역사 속에 경향신문은 폐간과 속간을 거듭했고, 정치권력에 맞선 ‘정통야당지’였다가 ‘친여기관지’ ‘재벌신문’이라는 비판을 듣기도 했습니다. 경향신문이 국가적 경제위기 속에서도 구성원들의 뜻을 모아 사원주주회사를 세우기로 결심한 것은 좋은 신문을 만들고 싶다는 절실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창간 75주년을 맞아 독립언론이자 사원주주회사로서 길을 택하기까지 경향신문의 지난 시간을 돌아봤습니다.

경향신문 창간은 천주교 서울대교구와 함께했습니다. ‘서울과 지방 각지’라는 뜻인 ‘경향’이라는 제호는 1906년 10월 프랑스 신부 플로리앙 드망주가 창간한 순한글신문인 ‘주간 경향신문’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경향(京鄕)은 로마 교황청에서 발간하는 간행물 중 ‘Urbi et Orbi’에서 따온 말입니다. ‘Urbi’는 도시(로마), ‘Orbi’는 로마 바깥 세상을 의미합니다. 주간 경향신문은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보도를 하다 1910년 12월30일 폐간됐습니다. 경향신문은 36년 뒤 같은 이름을 이어받아 창간했습니다.

경향신문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10월 ‘평양전선판’을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이 신문은 북한에서 발행한 최초이자 최후의 민간신문으로 기록됐습니다. 1950년대 경향신문은 비판적 정론지로서의 길을 걸었습니다. 자유당 정권은 1959년 4월 경향신문을 폐간했으나, 4·19혁명 이후 대법원 결정에 따라 1960년 4월27일부터 속간됐습니다.

경향신문의 소유구조는 여러 변화를 겪었습니다. 1962년 천주교재단은 경향신문을 이준구씨에게 매각했고 경향신문은 이때 주식회사로 출범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를 계속하자 이준구 사장을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습니다. 경영권은 흔들렸고 경향신문은 1966년 경매에 부쳐져 기아산업에 팔렸다가, 1969년엔 신진자동차공업주식회사에 인수됐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언론통폐합 정책에 따라 1974년엔 문화방송과 통합됐습니다. 당시 사명은 ‘문화방송·경향신문’이었고 경영권은 5·16장학회가 소유했습니다. 이때부터 소공동 사옥을 떠나 정동 시대가 시작됩니다. 1981년엔 문화방송과 분리돼 사단법인 경향신문으로 출범했습니다.

여러 부침을 겪으며 경향신문은 한때 친여기관지 역할을 했습니다. 박정희 정권 때 3선 개헌과 10월유신의 필요성을 옹호했고 신군부 집권 이후엔 전두환 정권을 뒷받침하는 관영매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1987년엔 시민들이 민주화 시위 현장에서 경향신문을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이 일은 경향신문 역사에서 가장 아픈 장면으로 남아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경향신문 기자들은 비판적 정론지로 다시 서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했고, ‘언론자유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경향신문은 1990년 8월 한화그룹에 인수됐습니다. 그룹의 재정적 지원으로 외연을 확장했지만 8년 만에 결별했습니다. 결정적 계기는 1997년 발생한 외환위기였습니다. 2006년 창간 60주년을 맞아 발행된 <경향신문 사사>는 “경향의 위기는 1996년 연초부터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적자 폭이 날로 커지고 그 결과 금융기관 차입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라고 기록했습니다. 한화그룹은 1997년 3월 경향신문사에 비상경영체제를 도입하고 긴축경영을 시작했으나 외환위기로 경영난은 더욱 심화됐고, 결국 1998년 3월 경영에서 완전히 철수했습니다.

경향신문 구성원들은 신문발행이 중단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 속에 어려운 선택을 했습니다. 한화그룹과 함께한 시간 동안 ‘재벌 소유 언론사’로서의 한계가 뚜렷이 드러났던 만큼 다른 기업 등 ‘새로운 주인’을 찾는 대신 사원 모두가 주주가 되어 소유권을 행사하는 사원주주회사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습니다. 자립경영추진위원회와 경영위원회가 구성됐고, 전 임직원이 퇴사한 뒤 재입사하는 과정을 밟았습니다. 사원들은 퇴직금의 50%를 출자하는 방식으로 87억원의 운영자금을 마련해 사원주주회사이자 독립언론으로서 경향신문을 다시 세웠습니다.

사원주주회사 경향신문의 첫 사장으로 홍성만 논설주간이 만장일치로 선출됐습니다. 경향신문은 1998년 4월1일자 1면에 사장 겸 발행인 명의로 낸 사고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경향신문은 오늘 한국언론의 역사를 다시 쓴다는 무거운 사명감으로 제2 창간을 선언합니다. 정치·경제적 권력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언론은 시대적 요청이라는 점에서 경향신문의 새 출범은 언론사적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하겠습니다. 새 경향신문의 궁극적인 주인은 독자들입니다. 정직하고 정확하며 깊이 있는 기사와 논설로 독자들과 더불어 호흡하고 아픔과 기쁨을 함께하는 ‘열린 신문’을 만들 것을 다짐합니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은 “구성원들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제대로 된 언론을 만들어보겠다고 의기투합해 재창간하는 것은 창간보다도 훨씬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라며 “한국언론운동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역사적 사건”이라고 말했습니다.

경향신문은 사원주주회를 구성해 주권의 행사를 심의하고 결정합니다. 임원을 포함해 모든 정규직 사원이 주주회 가입 대상이며, 주식을 취득한 사원은 주주회 회원으로서 매년 9월 열리는 회원 총회에서 발언권과 의결권을 갖습니다. 대표이사 선출 시 주주회 이사회가 선거관리위원회로 전환돼 선거공시부터 투·개표까지 관리합니다. 2021년 9월 총회 결과 박재현 콘텐츠랩부문장 겸 행정디렉터가 22기 사원주주회장으로 선출됐고, 편집국과 경영지원국, 광고국, 미디어제작국 등 10개 팀·국·실을 대표해 15명의 이사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사원주주회 규약 제2조 1항은 “자사주 보유를 통한 경영주체의 형성”입니다. 경향신문은 23년 전 독립언론으로 다시 태어난 마음을 잊지 않고 비판적 정론지로서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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