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낙태죄 폐지를 ‘태아의 생명권 대 여성의 선택권’ 문제로 몰아가는 구도에 반대한다.”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전국 97개 여성시민사회단체가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과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죄 폐지는 여성의 몸을 인구통제 도구로 삼아온 역사를 마감해야 한다는 선언이자, 생명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기 위해 오랜 고민한 결과”라며 이같이 밝혔다.
단체들은 “장애나 질병, 경제 조건, 연령, 혼인 여부 등에 따른 사회적 차별과 성차별은 출산과 양육의 조건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다. 이같은 사회 조건들을 개선하는 대신 여성에게만 선택의 책임을 전가해 온 것이 낙태죄의 실체”라며 “임신 지속 여부에 대한 여성의 판단은 태아가 살아갈 삶의 조건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고 했다.
이들은 “낙태죄는 임신중단을 예방하기 보다 여성들을 고비용의 안전하지 못한 시술 환경으로 내몬다. 옷걸이나 초산 등으로 자가 낙태를 시도하거나 시술 후유증이 발생해도 다시 병원을 찾지 못해 사망 위험이 증가한다”고 말했다. 또 “낙태죄는 여성에게 낙태한 사실을 알리겠다면서 관계유지를 강요하거나 금전적인 요구를 하는 등 협박 수단이 되기도 했다”고 했다.
이들은 “100% 효과적인 피임은 존재하지 않고 사회적 자원과 권력, 섹슈얼리티 위계 차이가 심각한 사회 조건은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임신중단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고 시술이 음성화될수록 임신중단 시기는 늦어지고 그로 인한 위험은 보다 열악한 상황에 있는 여성들이 떠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홈페이지에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의 추천인이 20만명을 넘겼다. 청와대는 이 청원에 답변을 내놓기로 했다. 단체들은 “지금 필요한 것은 여론을 핑계로 공을 떠넘겨 버리는 형식적인 공론화가 아니라 정부와 국회의 책임 있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낙태죄 폐지와 더불어 모자보건법 조항 전면 개정, 성평등 정책과 성교육 강화, 피임기술·의료시설 접근권 보장, 자연유산 유도약인 미프진 사용 보장 등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