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26일 낙태죄 폐지 국민청원에 대해 “태아의 생명권은 매우 소중한 권리이지만 처벌 강화 위주 정책으로 임신중절 음성화 야기, 불법 시술 양산 및 고비용 시술비 부담, 해외 원정 시술, 위험 시술 등의 부작용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신중절을 줄이려는 당초 입법 목적과 달리 불법 임신중절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만큼 낙태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이날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를 통해 ‘친절한 청와대’라는 이름으로 국민 청원에 대한 동영상 답변을 공개했다. 답변자로 나선 조국 민정수석은 “이제는 태아 대 여성, 전면 금지 대 전면 허용 이런 식의 대립 구도를 넘어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단계”라고 말했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하는 제로섬으로는 논의를 진전시키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다.
조 수석은 “현행 법제는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완전히 빠져 있다”며 “여성의 자기결정권 외에 불법 임신중절 수술 과정에서 여성의 생명권, 여성의 건강권 침해 가능성 역시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매년 전 세계에서 2000만명의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절 수술을 받고 그중 6만8000명이 사망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조 수석은 교제한 남성과 최종적으로 헤어진 후에 임신을 발견한 경우, 별거 또는 이혼 소송 상태에서 법적인 남편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발견한 경우, 실직이나 투병 등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아이 양육이 완전히 불가능한 상태에서 임신했음을 발견한 경우 등 세 가지 사례를 소개하며 “이런 경우 현재 임신중절을 하게 되면 그것은 범죄”라고 말했다. 이어 “근래 프란체스코 교황은 임신중절에 대해서 ‘우리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이번 청원을 계기로 우리 사회도 새로운 균형점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사례가 범죄화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검토해봐야 한다는 취지다.
청와대는 내년부터 2010년 이후 실시되지 않은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재개할 계획이다. 임신중절 현황과 사유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 그 결과를 토대로 관련된 논의가 진행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또 정부차원에서 청소년 피임교육, 비혼모에 대한 사회경제적 지원 등 임신중절 관련 보완대책도 추진하기로 했다.
청와대는 낙태죄 폐지 및 개선의 방향에 대해선 헌법재판소와 국회의 역할을 간접적으로 요청했다. 조 수석은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다시 한번 낙태죄 위헌 법률 심판사건이 진행 중이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공론의 장이 마련되고 사회적 법적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법 개정을 담당하는 입법부에서도 함께 고민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