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실세’로 국정농단 사태를 촉발시킨 최순실씨의 1심 재판부가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또 삼성이 구매한 마필의 소유권이 사실상 최씨에게 있었다며 최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제공한 승마 훈련 비용을 모두 뇌물로 인정했다. 이는 수첩의 증거능력을 부인하고, 마필 소유권이 삼성에게 있다며 뇌물로 인정하지 않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와 다른 결론이다.
다만,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삼성 경영권 승계작업에 대한 묵시적 청탁이 없었다며 삼성의 영재센터 후원금·재단 출연금은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재판장 김세윤 부장판사)는 13일 최씨에 대한 선고 공판을 열고 “안 전 수석의 수첩은 정황증거로 사용되는 범위 내에서 증거능력이 있다고 판단된다”며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수첩의 증거능력을 부인하며 이 부회장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항소심 판결과는 다른 결론이다.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는 안 전 수석의 수첩에 적힌 내용이 곧바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두 사람 사이의 내밀한 독대에서 오간 내용까지 직접 증명하는 자료가 될 수는 없다는 판단에 따라 그에 관해 추정케 하는 간접 증거로도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최씨의 1심 재판부는 안 전 수석의 수첩에 박 전 대통령이 지시한 각종 사업의 구체적 내용이 적혀있고 이것이 최씨의 재단 설립 및 관련 활동 정황을 설명해주는 유력한 정황이 된다는 점에서 재판부는 정황 증거로 사용하는 범위 내에서 증거능력이 있다고 판정했다.
결국 재판부가 어디인지, 피고인이 누구인지에 따라 수첩 자체의 증거능력 판단에 차이가 생긴 셈이다.
또 최씨의 1심 재판부는 삼성이 최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제공한 ‘살시도’ 등 고가의 마필과 보험료도 뇌물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는 “말의 소유권은 삼성에게 있으므로 이를 빌려 탄 사용 이익만 뇌물로 볼 수 있다”고 했던 이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와 다른 판결이다.
다만 최씨의 1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삼성 경영권 승계작업에 대한 묵시적 청탁이 없었다며 삼성의 영재센터 후원금·재단 출연금은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