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낳은 아이든 잘 자랄 수 있는 사회인가요?

임아영 기자

돌봄은 어떻게 재구성될까

덴마크 입양인인 한분영 한국외대 스칸디나비아어과 조교수(왼쪽)와 김도경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가 지난달 14일 서울 연희동 한국미혼모가족협회 사무실에서 만나 “어떤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든 잘 키울 수 있도록 사회가 지원해야 한다”는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덴마크 입양인인 한분영 한국외대 스칸디나비아어과 조교수(왼쪽)와 김도경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가 지난달 14일 서울 연희동 한국미혼모가족협회 사무실에서 만나 “어떤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든 잘 키울 수 있도록 사회가 지원해야 한다”는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우리 안의 아이를 잘 키우고 있나요?” 2017년 입양된 아이는 863명, 그중 814명이 미혼모의 아이였다. 무려 94.3%다. 미혼모들이 아이 키우기 어렵고 미혼모의 아이를 차별하는 사회에서 저출산을 말하는 건 이중적이다. 미혼모의 아이는 해외 입양인이 되어 부모를 찾으러 되돌아온다.

설을 앞두고 한국미혼모가족협회 김도경 대표(43)와 생후 3개월에 덴마크로 입양 보내진 한분영 한국외국어대 스칸디나비아어과 조교수(45)를 만났다. 두 사람은 2015년 한 교수가 한국미혼모가족협회를 찾아오면서 처음 만났다. 한 교수는 한국에서 입양 문제를 들여다보면서 아이 키우기 힘든 사회라는 사실이 입양의 근본 문제라고 생각하게 됐고 그때부터 미혼모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2009년 처음 한국미혼모가족협회를 만들 때부터 가장 많이 지지해줬던 사람들이 해외 입양인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 입양인들이 우리에게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 해외로 입양 보내지 말고 잘 키우라고 응원해줬다”고 했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와 해외 입양인들은 2011년부터 5월11일을 ‘싱글맘의 날’로 정했다. 이날은 국가에서 지정한 ‘입양의 날’이다. 미혼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매년 캠페인과 콘퍼런스를 하고 있다.


[다시 쓰는 인구론]누가 낳은 아이든 잘 자랄 수 있는 사회인가요?
[다시 쓰는 인구론]누가 낳은 아이든 잘 자랄 수 있는 사회인가요?

■“미혼모가 아이를 입양 보내지 않도록 사회가 지원해야”

한국미혼모가족협회 김도경 대표

김도경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남자친구를 사귀면서 그 사람과 결혼해 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정이 생겼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게 아이에게 좋겠다고 생각해 헤어졌다. 부모님은 아이를 애 아빠한테 주고 좋은 남자 만나서 잘 살라고 했다. 아이를 낳고 부모님께 보여주며 말했다. “이렇게 예쁜 새끼를 보내고 살 수 있겠어요?” 부모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혼모 당사자 단체인 한국미혼모가족협회는 2009년 탄생했다. 김 대표는 그해 여름 모임에 처음 나왔다. 아이가 세 살이었는데 가족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얘기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싱글맘들 모임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다 ‘유쾌 발랄한 싱글맘들을 위하여’라는 협회 카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당시 인생의 큰 힘이 되었고 언젠가 단체를 위해 뭔가 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2017년 2월 대표직을 맡게 됐다.

차별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도록
아이 중심 사회시스템 다시 짜야

출생 등록, 엄마의 정보 보호와
아이의 알 권리 측면에서도 중요

올해 3월이 단체 창립 10주년이다. 현재 회원은 2400명 정도다. 단체는 회원들이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지원을 하고 스스로 양육할 수 있게끔 자립을 돕는다. 당장 갈 곳이 없는 미혼 임산부와 미혼모가정에 긴급주거공간을 제공하는 긴급일시보호쉼터도 운영하고 있다. 통계청 집계로 2017년 미혼모는 2만2065명, 미혼부는 8424명으로 미혼모가 미혼부보다 2.6배 많다. 통계로 드러나지 않는 미혼모도 많을 것이다. 스스로 미혼모라는 사실을 밝히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미혼모에 대한 외부 시선을 바꾸고 싶다. “미혼모는 학력이 낮고 경제력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아요.” 도움이 간절히 필요한 미혼모들도 있지만 다양한 직업, 재능을 가진 엄마들도 많다고 했다. 김 대표의 본업은 여행업이다. 동남아와 제주도 여행상품을 기획해 여행사에 제공하고, 지자체를 알릴 수 있는 지역 관광상품을 만드는 일을 해왔다.

중1이 되는 아이를 키우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번은 TV 아침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미혼모 김도경’이라고 나가면서 학부모 모임의 모든 엄마들이 알게 됐다. 엄마들끼리 단톡방을 만들었는데 몇 달이 지나도 아무 말도 올라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다른 단톡방이 만들어진 거였다. “엄마들이 우리 아이랑 놀지 말라고 하기도 했어요. 참 슬펐죠.” 미혼모가 혼자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사회 시스템을 아이 중심으로 다시 짜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한테 초점을 맞추고 제도가 개선되면 엄마들도 차별받지 않고 입양 보내는 일 없이 아이는 태어난 엄마 아래에서 클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저출산이 위기라면서 인터뷰 요청도 많아졌다. “저출산이니까 미혼모의 아이들도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은 원하는 바가 아니에요. 누가 낳은 아이든 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아야죠.”

김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회에서 열린 ‘출생기록과 가족관계등록법 개정방안’에 관한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2011년 입양특례법이 개정되면서 아동 유기를 부추긴다는 주장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김 대표는 출생등록은 엄마의 개인정보 보호와 함께 아이의 알권리 측면으로도 보호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미혼모가 아이를 버리지 않을 수 있도록 사회 전체가 바뀌는 것이 중요하지만 세상에 태어난 아이가 법적으로 등록되어야 할 권리를 내어줘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중요한 것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되느냐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해 미취학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10~40대 미혼모 359명을 조사한 결과 월평균 소득액이 92만3000원에 불과했다. 양육에서 어려운 점 1위는 재정적 어려움(34.3%)이었다.

출생등록이 없으면 입양인은 부모를 찾을 수 없다. 김 대표는 입양특례법 때문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전까지 나라에서 감시 체계가 없어 입양기관에서 해외로 바로 보내졌던 것인데 입양특례법 개정 이후 법원 허가를 거쳐 보내게 됐어요. 어떤 아이들이 얼마나 해외로 보내졌는지, 잘 살고 있는지 파악이 안되잖아요. 출생등록은 입양과 상관없이 원래 해야 되는 거였고요.” 물론 미혼모가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을 때는 개인정보를 보호해줄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현재는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일반 증명서에선 혼인 외의 자녀, 입양 취소에 관한 사항이 모두 공개되지 않지만 상세증명서에는 이런 내용이 모두 나온다. 상세증명서를 본인 외엔 열람·발급할 수 없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김 대표에게 가족은 ‘따뜻한 울타리’다. 단둘이라 생각하면 조금 외롭지만 아이가 있는 게 큰 위안이다. 단체는 설날 연휴인 오는 4~5일 남산 유스호스텔에서 설 캠프를 연다. 설날 함께할 가족이 없는 서른 가정이 참여해 함께 떡국을 먹고 전통놀이도 한다. 단체는 매년 해외 입양인을 초대해왔다. 입양인들도 가족을 못 찾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명절을 앞두고 어쩌면 더 편하다. 아이와 둘이 가족이니까 굳이 명절에 시댁에 가서 뭘 해야 된다는 부담감이 없기 때문이다. “캠프가 끝나면 하루는 아이하고 시간을 보낼 거예요.”

[다시 쓰는 인구론]누가 낳은 아이든 잘 자랄 수 있는 사회인가요?

■“입양기관, 문화행사보다 어려운 입양인 돕기에 신경 쓰길”

덴마크 입양인 한분영 교수

한분영 한국외대 스칸디나비아어과 조교수는 생후 3개월 때 덴마크로 입양됐다. 다들 묻는다. “언제 입양된 걸 알았어요?” 한 교수는 “입양된 사실을 알 수밖에 없다”고 답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외모가 다르니까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알 수밖에 없었죠. 제가 입양됐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자 부모님은 ‘너를 입양했어’라고 말씀하시고 끝이었어요.” 세 살, 초등학생, 중학생 나이가 들수록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높아지지만 어떤 설명도 없이 ‘다른 엄마에게서 태어났어, 하지만 우리가 너를 너무 사랑해 입양했어’가 끝이었다. 입양기관에서는 간단하게 ‘입양은 사랑’이라고 정의하지만 삶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해외 입양 가족은 아이가 그 나라에 도착한 날을 생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이 새 입양 가족들과 같이 있을 때부터 시작한다는 뜻이죠. 한국에 대해서 저는 알고 싶지도 않았어요. 나는 덴마크인이니까요.” 양부모님에게도 한국과 관련된 정보는 편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 교수가 한국으로 떠날까봐 걱정했다. 우연히 태권도에 관심을 갖게 됐고 태권도 사범이 한국인이어서 그 가족을 통해 한국을 느낄 수 있었다.

입양기관이 받는 수수료 알게 돼
자신이 돈으로 거래된 것에 상처

언론들, 베이비박스 기사 대신
미혼모 위한 서비스 알려줘야

한 교수가 한국에 처음 온 것은 1996년이었다. 그는 한국은 전쟁으로 인해 가난하고 고아가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들어왔는데 너무 잘살아서 놀랐다. 석사과정 공부를 하면서 한국전쟁은 1953년 끝났다는데 자신이 1974년생이니 잘 안 맞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전쟁고아’가 아닌 많은 아이들이 입양을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입양기관에서는 차별이 심해 키울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차별하지 않고 키울 수 있도록 해주면 되잖아요. 덴마크는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으니까 부모 중 한 명만 있으면 국가가 더 열심히 하죠.”

여러가지 다른 점이 있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한국에 왔을 때 불편하지 않았다. 2002년 다시 한국어를 배우러 왔다. 더 있고 싶어서 어학당 옆 건물 국제대학원에 입학하기로 결심했다. 2004년 다시 와서 지금까지 공부 중이다. 한국에서의 본격 인생은 ‘15년’인 셈이다. 한국학을 공부하다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게 됐고 현재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5년 전부터 한국외대에서 스칸디나비아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원래 이름인 ‘한분영’으로 이름을 바꿨고 덴마크에서도 개명했다.

한국 역사를 공부해봤지만 아무리 찾아도 입양의 역사에 대한 내용은 공부할 수 없었다. “해외 입양은 숨어 있는 창피한 역사인 거죠. 미혼모가 숨고 싶어도, 입양인이 입양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한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그런 사실을 편하게 알려줘도 괜찮은 사회가 돼야죠.” 입양기관에 대해서는 양가적 감정이 든다. 입양기관에서 해외 입양을 보내면 ‘수수료’를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신이 돈으로 거래됐다는 것이 큰 상처가 됐다. 한국 아동의 입양 수수료는 외국의 2배 정도다. 2017년 한국 아동의 입양 수수료는 최대 3만3150달러로 부대비용과 여행경비까지 포함하면 입양 부모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최대 5만3980달러다. 중국 아동 입양 수수료가 최대 2만6900달러, 베트남은 2만2810달러인 것에 비해 매우 높다.

한 교수는 입양기관들이 사회복지기관으로 해외 입양인 중에서도 어려운 사정에 있는 사람을 먼저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김치 만들기 같은 문화 행사만 신경 쓰는 것이 몹시 답답하다. “김치 담그는 법을 알아도 제 삶이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요.” 입양인은 원래 ‘입양아’로 불렸다. “입양기관에서는 우리를 아이로 보기 때문에 교수여도 ‘해외 입양아’로 규정돼요. 입양인은 어떤 전문적인 일을 해도 여전히 ‘아이’로 보는 거죠.”

베이비박스를 보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미혼모의 올바른 선택은 아이를 예쁘게 버리는 건가요? 베이비박스를 다룬 언론도 많은데 읽어보면 엄마들이 얼마나 열심히 아이를 키우고 있는지 잊고 있는 것 같아요. 왜 미혼모를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알려주진 않고 베이비박스 기사를 쓰죠?”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모임(TRACK)’의 대표인 제인 정 트렌카는 서울대 석사 논문에서 언론보도를 통해 베이비박스에 대한 인지도가 급격히 올라간 시점이 바로 2013년이며, 이때 영아유기 건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을 분석해냈다. 실제 2012년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동은 79명이었지만 2013년에는 252명으로 확 늘었다. 전국 유기아동은 235명에서 285명으로 50명 늘었지만 베이비박스 유기 비율이 크게 높아진 것이다.

‘외부인’에게 설은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몇 년 전에는 한국 선배들이랑 설 연휴에 서울 여기저기를 구경했어요. 한 명은 결혼을 안 했으니, 다른 한 명은 결혼을 해서, 또 한 명은 결혼 준비 과정이라 도망치고 싶어 했죠. 가족이 중요하다면서 다 벗어나고 싶어 해요. 저는 가족이 중요하다면서 어떻게 아이들을 버릴 수 있는 건지 궁금해요.”

※목차

1. 인구 감소, 위기인가 기회인가
2. 다 인구 때문일까
3. 세대게임을 넘어
4. 우리 모두는 일할 수 있을까
5. 아이 키우기에 정말 필요한 것은
6. 지방은 지속가능한가
7. 우리는 이방인을 품을 수 있을까

8. 돌봄은 어떻게 재구성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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