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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일기②

텃밭을 가꾸다보면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레벨’ 차이에서 오는 민망함이다. 나는 텃밭에 씨앗을 심고 있는데, 옆 텃밭은 1m(가로)×1m(세로) 쯤 되는 작은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그 안에 모종을 키우고 있을 때가 그랬다. 내 텃밭 일부 구간에 고랑과 두둑을 동서 방향으로 내고 두둑에 작물까지 심어놨는데, 남들은 고랑과 두둑을 남북 방향으로 냈다는 걸 알았을 때도 그랬다. <텃밭 매뉴얼>에 따르면, 동서 방향으로 내면 해가 뜨고 질 때 작물의 그림자가 다른 작물에 드리운단다. 반면 남북 방향으로 내면 작물에 그림자가 지지 않는다. 다들 ‘농사개론’ 수업이라도 듣고 왔나? 이 정도면 ‘도시 텃밭러’가 아니라, ‘프로 농부’ 아닌가?

‘가지과’ 채소들은 옆에 지주(막대기)를 세워줘야 한다. 다른 텃밭들은 어른 키만한 지주를 세워 놓았다. 삼각 텐트 모양의 구조물(삼각지주)을 세운 곳도 있다. 5월23일 촬영.

‘가지과’ 채소들은 옆에 지주(막대기)를 세워줘야 한다. 다른 텃밭들은 어른 키만한 지주를 세워 놓았다. 삼각 텐트 모양의 구조물(삼각지주)을 세운 곳도 있다. 5월23일 촬영.

‘가지과’ 채소들은 옆에 지주(막대기)를 세워줘야 한다. 가지와 고추, 파프리카, 토마토 같은 작물들이다. 텃밭 인근을 돌면서 6살 아이와 함께 40~50㎝쯤 되는 나뭇가지를 주웠다. 가지과 모종 옆에 나뭇가지를 꽂고 끈으로 모종 줄기와 나뭇가지를 묶어줬다. 이때까지만 해도 남들이 왜 1.5m나 되는 긴 금속 막대기를 ‘굳이’ 사서 지주로 삼는지, 왜 기다란 지주를 서로 교차해서 삼각 텐트 모양의 구조물(삼각지주)을 세우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여름이 되니 우리 밭에 사달이 났다. 가지와 고추 모종 옆에 세워둔 나뭇가지는 비가 내리자 썩어 부러졌고, 방울 토마토 모종은 쭉쭉 뻗더니 어느새 내 키만큼 자랐다. 지주로 세워둔 나뭇가지가 부러지면서 토마토 줄기가 옆에 있던 가지와 고추를 덮쳤다. 알고 지내는 농부님에게 조언을 구했다. “크게 자라는 토마토와 가지는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삼각지주’를 세워야 하고, 작게 자라는 고추는 ‘막대지주’로 받쳐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텃밭에 가지와 고추, 토마토 등 가지과 작물들이 열매를 맺었다. 7월30일 촬영

텃밭에 가지와 고추, 토마토 등 가지과 작물들이 열매를 맺었다. 7월30일 촬영

주인 잘못 만나 고생한 가지과 채소들이 열매를 맺었다. 토마토를 기르는 충남 홍성의 농부님은 “충분히 빨갛게 익은 토마토를 따야 달콤한 토마토 본연의 맛이 난다”고 했다. 시중에 파는 일부 토마토의 맛이 밍밍한 건, 완전히 익지 않은 토마토를 따서 유통과정 중에 익도록 했기 때문이란다. 과연 텃밭에서 제대로 익은 토마토에선 다양한 맛이 났다. 고추는 빨갛게 익기 전에 따서 생으로 먹었다. 가지 열매는 큼직하고, 만졌을 때 ‘뽀도독’ 거리는 질감이 있어 수확하는 맛이 있다. 별 생각 없이 아이에게 따도록 했는데 아이 손에 작은 가시가 박혔다. 가지 꼭지에 작은 가시가 나 있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 맨손으로 따지 말고, 가위로 잘라줘야 한다.

텃밭에서 수확한 ‘가지과’ 채소들. 7월30일 촬영

텃밭에서 수확한 ‘가지과’ 채소들. 7월30일 촬영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저 많은 가지들을 모두 흐물흐물한 가지무침으로 만들어 먹을 수는 없다. 중국어를 가르쳐 주시는 옌볜 출신 중국 동포 선생님께 가지 요리에 대해 물었다. “옌볜에서는 여름에 수확한 가지를 말려 저장한 뒤, 겨울에 가지밥을 해 먹어요.” 지삼선(地三鮮)도 추천했다. 지삼선은 옌볜 등 중국 동북지방에서 먹는 음식인데, 가지과 채소인 피망과 감자, 가지를 튀겨 굴소스에 볶아내는 요리다. “지삼선, 땅에 사는 세 신선이라는 뜻이다. 감자, 피망, 가지 셋 다 바닥에서 나는 싼 재료지만 맛도 좋고 몸에도 좋다, 바닥이라고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tvN 드라마 ‘빅포레스트’에서 “내 인생이 바닥인 것 같다”는 주인공의 말에, 중국집 주인이 지삼선을 내 주며 하는 말이다. 회사 동료와 광화문 인근 중국집에서 지삼선을 시켰다. 겉에만 살짝 튀겨진 가지 속에서 매콤한 양념이 흘러나와 입안을 채웠다. 만족스러웠지만 집에서 만들어먹는 건 자신이 없었다. 대신 가지 튀김을 해보기로 했다.

중국집 지삼선(왼쪽)과 내가 만든 가지 튀김.

중국집 지삼선(왼쪽)과 내가 만든 가지 튀김.

가지를 잘라 안에 돼지고기 다짐육을 넣은 뒤, 튀김옷을 입혀 튀겼다. 장모님은 “맛있네”라고 하시고선 젓가락을 내려놓으셨다. 아내는 “튀김 만드는데만 식용유 반 통을 써 버렸다”며 사용한 기름을 모두 걸러서, 병에 담아두라고 했다. 거름종이로 걸러 깨끗한 기름을 모으는 데만 반나절이 걸렸다. 이번 주말에는 다진 돼지고기를 넣은 가지찜 요리를 해볼까 한다. 아직도 냉장고 안에 가지는 많고, 여전히 텃밭에는 가지가 자란다. ‘땅에 사는 신선’이라는 가지를 집에서 맛있게 요리하는 법은 없을까.


글 · 사진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도시가 정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로컬에서 다른 삶을 살아 보려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을 하거나, 가게를 내거나, 농사를 짓습니다.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버티컬 채널 ‘밭’(facebook.com/baht.local)은 로컬에서 어떤 삶이 가능한지를 탐구합니다. ‘서울 말고 로컬’ 연재로 나만의 밭을 일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facebook.com/baht.lo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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