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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11일 전남 신안 앞바다. 고깃배 ‘유진호’에 탄 어부들이 바쁘게 그물을 내렸다. 7월과 8월은 민어철이다. 신안의 어부들은 대나무를 물속에 넣어 민어를 찾는데, ‘꾸륵꾸륵’ 개구리 울음과 비슷한 소리가 대나무를 통해 들리면 그물을 내린다. 민어 부레의 근육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내는 소리다. 이날 조업은 유튜브 생방송으로 중계됐는데, 중간에 꽃게가 딸려 올라오자 “8월20일까지 꽃게 금어기”라며 어부들이 바다로 돌려보냈다. 이어 4㎏짜리, 12kg짜리 민어가 연달아 올라왔다. 생방송을 보던 사람들이 환호했다. 1시간22분 생방송 동안 잡힌 민어는 총 3마리. 유진호 선장은 “배들은 많고, 할 공간은 없고 아쉽지만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실시간 댓글로 “이렇게 힘들게 작업하시다니…” “만선 기원합니다”라는 글들이 올라왔다. 유진호는 자리를 옮겼고, 어부들은 다시 그물을 던졌다. 이날 방송은 수산물 직거래 중개 사이트 ‘파도상자’가 어부 회원들과 함께 진행한 방송이었다.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민어를 낚기 위해 준비 중인 고깃배 ‘유진호’ 모습 |공유어장 제공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민어를 낚기 위해 준비 중인 고깃배 ‘유진호’ 모습 |공유어장 제공

파도상자는 소비자들이 물고기나 게, 조개 등을 주문·구입(조업요청)하면, 어부들이 물때에 맞춰 바다로 나가 직접 잡아서 배송해 주는 서비스다. 어부들은 수협 위판장이나 현지 상인이 아닌, 소비자들과 직거래를 할 수 있고, 조업 전에 수익을 낼 수 있다. 소비자들은 ‘수협 위판장→중도매인→소매 상인’으로 이어지는 긴 유통 과정 없이, 어부가 잡아 배에서 꺼내 온 싱싱한 수산물을 배송받는다. 다만 날씨가 좋지 않으면 배를 띄우지 못해 주문(조업요청)을 해도 바로 받아보지 못한다. 어선에서 ‘조업 가능한 날입니다’ ‘관망 중입니다’ ‘조업 중입니다’ ‘조업을 완료했습니다’ 같은 메시지를 소비자들에게 보내는데 주문 후 수산물이 배달되기 까지 짧게는 며칠, 길게는 2주일이 걸리기도 한다. 제주 바다에서 은갈치를 잡는 어선 그렉스호는 소비자들의 주문(조업요청)을 받고 9월 초 야밤에 집어등을 켜고 조업을 하다가 큰 비를 만나 중도에 철수하는 일을 여러 번 겪었다. 전남 고흥의 어민들은 조업에 나갔지만 꽃게가 잡히지 않아 애를 먹었다. 반면 경기 연평의 어민들은 꽃게 대풍을 맞았다. 소비자들은 파도상자 홈페이지에 ‘조심하세요’ ‘힘내세요’ 같은 응원의 댓글을 적어 둔다.

전남 고흥의 한 어부가 꽃게를 들어보이고 있다. | 공유어장 제공

전남 고흥의 한 어부가 꽃게를 들어보이고 있다. | 공유어장 제공

지난해 8월 서비스를 시작한 파도상자는 ‘공유어장 주식회사’가 만든 ‘조업요청형 수산물 직거래 플랫폼’이다. 공유어장은 요트회사에 다녔던 유병만 대표(43)가 2019년 7월 창업했다. 유 대표는 “처음에는 귀어를 할 생각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사돈의 팔촌까지 뒤져봐도 어부이거나 어촌에 사는 사람이 없었다. 농어촌 컨설팅 업체에서 일을 하며 어부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젊은 사람이 어촌계에 들어오는 걸 반겨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기후변화, 남획 등으로 어획량이 굉장히 감소했거든요. 어민의 수익이 계속 줄고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밥상에 숟가락 얹는다는 사람을 좋아할 수 없는 거예요. 저도 막상 귀어하려고 어부 수입을 살펴봤더니 도저히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조업 중인 어부들 | 공유어장 제공

조업 중인 어부들 | 공유어장 제공

대신 ‘창업’을 하기로 했다. “어부들의 수익이 안정적이어야 하는데 바다는 불확실성이 너무 커요. 소비자들은 그런 부분을 전혀 모르죠. 전어철이라고 하면 무조건 바다에서 전어가 잡히는 줄 알아요. 하지만 배를 띄우지 못하는 날도 있고 잡지 못하는 날도 있어요. 위판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은 들쑥날쑥이고요. ‘전어가 내 식탁에 잘 올라오면 된다’고만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생산자인 어부들이 겪는 문제를 이해할 수 있다면 사정이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공유어장 주식회사가 만든 ‘파도상자’는 스스로를 어민과 소비자를 이어주는 ‘커뮤니티 플랫폼’이라고 소개한다.

농어촌 컨설팅 회사에 다니면서 알게 된 몇몇 지역의 어촌계장들이 유 대표의 사업에 힘을 보탰다. 공유어장의 ‘1호 어부’ 박성구씨(경남 거제 관포어촌계 계장)는 “사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주문부터 조업 성공까지) 며칠을 기다려야 하는데 과연 제대로 판매가 되겠나’, ‘공유어장(파도상자) 수수료까지 더해지면 오히려 소비자들이 더 비싸게 먹는거 아이가’ 그런 생각을 많이 했거든예. 했는데 실제로 거래하다 보니까 그런 것도 아니라예. 소비자들이 오히려 싱싱하고 싼 걸 드실 수 있는 거라예. 우리도 위판장에서 중도매인에게 넘겨 주는 것보다도 직거래를 하니까 수익이 조금 나고예.” 그는 위판장에 여전히 일부 물량을 넘기는데, 파도상자를 이용할 때는 위판장 가격보다 마리당 몇 천 원 더 붙여 판매한다고 했다. 파도상자에선 이 가격에 10~15%의 수수료를 더해 소비자 가격을 책정한다. 유 대표는 “어부들의 온라인 상거래를 대행하고, 고객응대 서비스까지 하다보니 통상적인 의미의 ‘수수료’라기 보다는, 어부의 온라인 판매 비용 정도만 받는 정도”라고 말했다.

공유어장이 운영하는 직거래 중개 사이트 ‘파도상자’ (https://padobox.kr) | 파도상자 화면 캡쳐

공유어장이 운영하는 직거래 중개 사이트 ‘파도상자’ (https://padobox.kr) | 파도상자 화면 캡쳐

파도상자는 최근 ‘긴급 만선’이라는 서비스도 선보였다. 조업을 나갔는데 예상보다 많이 잡혔거나,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꺼내는 과정에서 손상돼 위판장에서 판매할 수 없는 것들을 싼 가격에 소비자에게 판매해 바로 보내주는 서비스다. 파도상자를 운영하는 공유어장 주식회사는 직원들도 어부와 말이 잘 통하는 사람들로 뽑았다. 직원 3명 중 2명이 어선을 운영한 어부 출신이다. 현재 어민 회원은 50여명, 취급하는 어종은 100여 종이다. 서비스 시작 1년 만에 소비자 회원은 4000명, 월 평균 거래량은 4000만원(월 최고 거래량 1억원) 수준이 됐다.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해양수산부의 ‘해양수산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선정됐고,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크립톤과 대기업 한진으로부터 시드 투자도 받았다.

공유어장 유병만 대표가 지난 14일 경향신문 기자와 줌을 통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공유어장 유병만 대표가 지난 14일 경향신문 기자와 줌을 통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유병만 대표는 지역 어부와 소비자들이 모이는 “온라인 ‘어촌계’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동안 어민들은 수익이 나지 않다 보니 무조건 많이 잡아야 했거든요. 하지만 저희 직거래 플랫폼을 통한 조업이 늘어나고 어민들의 수익이 늘면, 어민들도 생존 문제를 넘어서 다양한 가치에 관심을 갖게 될 거예요. 주문받은 것만큼만, 필요한 만큼만 조업해도 충분히 수익이 날 수 있으니 남획 문제도 줄어들 거고요. 조업 데이터들이 쌓이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면 소비자들도 지속가능한 바다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어요. 소비자들이 어민들과 함께 온라인 어촌계 구성원으로서 어업 활동을 감시할 수 있는 거죠. 장기적으로는 이 직거래 플랫폼을 소비자와 투자자가 어민들에게 투자하는 ‘어업 파이낸싱 플랫폼’으로까지 발전시키는 게 저희의 목표예요.”


글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도시가 정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로컬에서 다른 삶을 살아 보려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을 하거나, 가게를 내거나, 농사를 짓습니다.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버티컬 채널 ‘밭’(facebook.com/baht.local)은 로컬에서 어떤 삶이 가능한지를 탐구합니다. ‘서울 말고 로컬’ 연재로 나만의 밭을 일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facebook.com/baht.lo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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