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1100억 환매중단' 이탈리아 펀드, 거대 마피아 조직과 연결됐다

자금 일부 ‘마피아 특수목적법인’ 채권 매수

지난 1월 살인, 마약 밀수 등 혐의로 400여명이 무더기 기소된 이탈리아 마피아 ‘은드랑게타(’Ndrangheta)’ 조직원들이 들어가는 재판정 모습. 이탈리아 법원은 재판 규모 때문에 콜센터를 빌려 임시 재판정을 마련했다. AFP연합뉴스

1100억원 규모의 환매중단 사태가 벌어진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이탈리아 펀드)가 이탈리아 거대 마피아 조직이 관리한 펀드에 투자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탈리아 펀드의 설계·판매를 주도한 하나은행 전직 직원 신모씨는 펀드 판매 기간에 이탈리아 현지를 방문한 것으로 파악됐다. 신씨는 검찰이 이탈리아 펀드 사기 의혹의 ‘키맨’으로 지목하는 인물이다.

하나은행이 1500억원 어치를 판매한 이탈리아 펀드는 이탈리아 병원들이 정부에 청구할 진료비 매출채권에 투자하는 해외 펀드에 다시 투자하는 재간접 펀드이다. 해외 펀드들은 이탈리아 특수목적법인(SPV)들을 거쳐 이탈리아 병원에 투자했다. 이탈리아 병원들에 직접 투자하는 SPV가 해외 펀드와 병원을 매개한 것이다. 하나은행이 판매한 이탈리아 펀드도 SPV를 거쳤다.

29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하나은행의 이탈리아 펀드 자금 일부는 ‘치론(Chiron)’이라는 SPV의 채권을 매수하는 데 사용됐다. 2019년 말 이탈리아 펀드 환매중단 이후 삼일회계법인이 하나은행 의뢰를 받아 만든 실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펀드는 치론과 ‘아스트레아(Astrea)’, ‘프로젝트 1705(Project 1705)’ 등의 채권을 사들였다.

치론은 이탈리아의 거대 마피아 조직인 ‘은드랑게타(’Ndrangheta)’가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SPV다. 이탈리아 남부 지역인 칼라브리아에서 주로 활동하는 은드랑게타는 이 지역 병원과 장례식 업체 등을 소유하고 있으며, 치론 등 SPV를 통해 정부에 청구하는 진료비 매출채권을 사고 팔았다. 치론은 2017년 설립돼 5000만 유로 상당의 진료비 매출채권을 사들였다. 이와 관련해 이탈리아 금융경찰은 2018년 말쯤 은드랑게타 조직원 28명을 체포해 대부분 기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은드랑게타는 살인, 마약 밀수, 불법 고리대금업 등 혐의로 조직원 400여명이 무더기로 기소돼 올해 1월부터 재판을 받고 있다.

이탈리아 펀드 사기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부장검사 김락현)는 펀드 설계·판매를 담당한 하나은행 전 직원 신씨의 동선에 주목하고 있다. 신씨는 2018년 11월 이탈리아로 출장을 다녀왔다. 당시는 은드랑게타가 이탈리아 금융 경찰의 수사를 한창 받을 때여서 이탈리아 펀드가 부실자산에 투자한 사실을 신씨가 알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씨는 2019년 5월 프라이빗뱅커(PB)들에게 단체 e메일을 보내 당초 24개월 이상이던 이탈리아 펀드 만기를 13개월로 줄일 수 있으니 적극 팔아달라고 요청했다. 이탈리아 펀드 판매액은 2017~2018년 300억원 정도였다가 신씨의 요청 후 1500억원대로 급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