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참위가 밝힌 것과 밝히지 못한 것

김서영 기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67만명·사망자 1만4000명 추산

‘국정원 세월호 유가족 사찰’ 발표…침몰원인 규명 못 해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 범 단체 빅팀스(Victims)가 가해기업과 정부, 조정위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빅팀스 제공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 범 단체 빅팀스(Victims)가 가해기업과 정부, 조정위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빅팀스 제공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 대한 온전한 배·보상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원인 제공자인 기업과 정부에 대한 법적 처벌도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세월호 침몰원인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점도 저희 조사활동의 한계다. 피해자와 국민께 다시 한 번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조사활동과 위원 임기 종료를 하루 앞둔 6월 9일, 문호승 위원장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같이 밝혔다. 사참위는 2018년 12월 조사활동을 시작해 지난 3년 6개월 동안 직권사건 52건, 피해자 신청사건 25건을 조사했다. 사참위는 두 참사에 대한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주요 권고안 20개(가습기 살균제 참사 관련 8건, 세월호 참사 관련 8건 및 공통 4건)를 마련했다. 사참위 설립 근간인 ‘사회적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에 따르면, 사참위 권고를 ‘국가기관 등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행해야 하며, ‘권고를 받은 기관은 이행 내역과 불이행 사유를 매년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국회는 이행이 미진하다고 판단할 경우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사회적 상처 봉합은 현재진행형이다. 사참위는 ‘안전한 사회 건설’이란 과제 앞에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남을 예정이다. 사참위는 그동안 무엇을 했고, 하지 못했나. 사참위가 그간 공개한 조사 중간발표, 권고안, 자료집을 통해 지난 3년 6개월을 돌아봤다.

사참위가 밝힌 것과 밝히지 못한 것

■가습기 살균제 진상규명국 도중에 폐지

사참위 가습기 살균제 진상규명국이 초기부터 추진한 작업은 피해자 찾기였다. 그 결과 2020년 7월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가 약 627만명, 건강피해 경험자는 약 67만명, 사망자는 1만4000여명이란 추산을 내놨다. 그때까지 신고된 피해자가 6817명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막대한 규모였고, 국립환경과학원의 2017년 추정치(사용자 약 400만명·피해인구 약 50만명)보다도 컸다.

사참위의 2020년 11월 발표를 보면, 1990년대 초 국내에서 가습기 살균제 시장이 형성될 당시 유공, 옥시, LG생활건강, 애경산업 중 어느 기업도 안전성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1994년 유공이 가습기메이트를 선보인 이후 옥시, LG생활건강, 애경산업 등이 이를 벤치마킹해 가습기 살균제 원료를 결정하고 제품을 내놓았다. 가습기메이트를 포함한 모두 19개 제품의 라벨에 “인체에는 전혀 해가 없습니다”, “인체에 안전한”, “인체 무해” 등의 문구가 표기됐다. 이밖에도 사참위는 2020년 12월 옥시레킷벤키저(옥시)가 흡입독성실험보고서 승인을 보류하고 국내외 흡입독성실험을 중단하는 등 진상규명을 지연시켰다고 밝혔다.

사참위가 밝힌 것과 밝히지 못한 것

가장 뼈아픈 순간은 사참위에서 가습기 살균제 진상규명 기능이 폐지될 때였다. 2021년 5월 사참위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며 ‘가습기 살균제 참사 진상규명국’ 해당 조항이 삭제됐다. 이로 인해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관한 업무범위가 피해자 구제, 제도 개선, 사건 관리로 축소됐다. 추가적인 진상규명이 불가능해졌다. 당시 사참위는 “위원회의 독립성을 무시하고 활동 자체를 무력화하는 일”이라며 반발했다. 이와 관련해 한정애 당시 환경부 장관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는 끝났다”고 발언해 피해자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최근 가습기 살균제 피해보상을 위한 조정위원회(조정위)가 활동 기한을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구제지원금 60% 이상을 분담하는 옥시와 애경산업이 조정에 참여하지 않아 조정위가 사실상 무산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피해 규모가 크고 피해자가 전국에 흩어진 만큼 특정 단체가 대표성을 띠고 논의에 참여하거나 한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다. 지금도 피해자들은 서울 종로구 SK본사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피해자 단체 연합 ‘빅팀스(Victims)’는 “사참위의 조사결과 보고서와 권고안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제대로 뛰지도, 걷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1740명이나 되지만 이들에 대한 지원이나 혜택은 전무하다”고 주장했다.

사참위가 밝힌 것과 밝히지 못한 것

■세월호 침몰원인 미결론

세월호 참사의 경우 앞서 (1기)특별조사위원회, 선체조사위원회가 활동한 바 있다. 다만 이 활동을 통해선 세월호 침몰원인이 특정되지 않아 사참위가 침몰원인을 밝힐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졌다. 지난 6월 7일 사참위는 전원위원회를 열어 세월호 ‘외력 침몰’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의견과 외력 침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 모두를 최종보고서에 싣기로 했다. 사참위 내부에선 그동안 ‘외력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전원위 위원 다수, ‘외력 충돌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조사국 측이 맞서왔다. 결국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았다. 명확한 결론을 유보한 셈이다. 다만 사참위는 “세월호 선체 내부 CCTV 영상을 복원해 참사 당시 선체 거동을 좀 더 명확하게 확인했으며 침몰원인 확인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었다”고 자체 평가했다.

이밖에도 사참위는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과 기무사가 피해자와 시민단체 등을 사찰했다”고 밝혔다. 사참위 조사결과, 국정원 직원 최소 2인 이상이 김○○씨 관련 보고서를 작성해 국정원 내부망에 보고한 점을 확인했다. 이는 또 다른 국정원 직원에 의해 ‘보수권, 세월호 정국 주동 김○○ 실체 집중 폭로계획’, ‘보수권, 세월호 정국 주동 김○○의 극단 선택 대비 필요성 제기’ 등의 보고서로 작성돼 내부 보고됐다. 이런 사실은 국정원 작성 보고서, 직원 진술조사, 동부병원 CCTV 영상 등을 통해 특정할 수 있었다. 사참위는 이 국정원 직원들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수사의뢰했으나,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은 2021년 11월 이들을 무혐의 처분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6월 7일 전원위원회에서 ‘세월호 침몰 원인이 외력인지 여부를 명확한 증거로 확인할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 권도현 기자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6월 7일 전원위원회에서 ‘세월호 침몰 원인이 외력인지 여부를 명확한 증거로 확인할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 권도현 기자

■반복될 재난, 무엇을 해야 하나

재난과 참사는 계속 발생한다. 사참위는 2019년 3월 ‘포항지진과 제천화재 피해자 심층면접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재난 피해자 지원 대책의 일환이었다. 내용을 보면 포항지진 이후 ‘심각한 자살 생각’을 경험한 응답자는 16.1%, 실제 자살시도는 10%였다. 제천화재의 경우 자살 생각은 36.7%, 자살시도도 6.7%였다. 재난 피해 지원에 대한 만족도는 5점 만점에 1.97점에 그쳤으며, 국가의 진상조사 노력에 대해서는 포항지진(80.6%), 제천화재(66.7%) 모두 부정적 응답이 높았다. 피해자가 겪는 경제적 압박도 심각해 가구총자산의 감소(포항지진 34.2%·제천화재 39.3%)와 가구지출의 증가(포항지진 28.2%·제천화재 37.9%)가 나타났다. 참사의 종류와 규모는 다르지만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세월호 유가족이 겪은 어려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반복의 고리를 끊으려면 우리 사회엔 ‘사참위 이후’ 무엇이 필요할까. 한국사회에서 안전의 의미는 무엇인가, ‘안전성’을 믿고 쓸 제품이 있긴 한가, 이 사회에 나를 지켜줄 ‘안전망’은 있는가. 대형 참사가 속출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마주하는 질문들이다. 사참위가 2019년 12월 발간한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기록집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는 이에 대한 전문가 진단이 나온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두고 ‘사회적 울분’과 ‘외상후 울분장애’로 명명했다. 그는 2018년 한국역학회 주관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정 실태조사에 공동연구원으로 참여했다. 유 교수는 “분노, 무력감, 절망감이 더해진 감정이 울분이다. 제일 안타까운 건 어떤 어린아이가 ‘날 이렇게 만든 기업을 폭파해버리고 나도 죽을 거예요’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의 조언이다. “이 높은 울분은 피해자에게 단순히 의료비를 지원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세상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버린 이분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우리 사회가 깊이 고민하도록 요구하는 겁니다.”

▶관련기사: ‘두 참사’ 과제 남기고…사참위 씁쓸한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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