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이 아파트 안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오른손을 높게 든 채 1층 현관문을 나왔습니다. 기자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멀리서부터 인사한 겁니다. 지난 7월 13일 오전 8시 인천 미추홀구에서 장지용씨(33)를 만났습니다. 지용씨는 수필과 칼럼을 쓰는 작가로 활동하며 지난 7월까지 한 정보통신(IT)기업에서 인턴사원으로 일했습니다. 그에게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처럼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습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자폐인마다 장애 증상과 정도가 다릅니다. 드라마 주인공 우영우와 지용씨는 같고도 다른 하루를 보냅니다. 두 인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숏폼 채널 ‘암호명3701’에서 살펴봤습니다.
#소리
“대중교통에서 ‘삑’소리가 들리면 힘들어요.” 오전 8시8분 지용씨는 시내버스에 타고선 곧바로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냅니다. 우영우가 길거리 소음에 민감해 헤드폰을 착용하고 출근하는 것처럼 지용씨도 날카로운 소리를 싫어합니다. 그는 휴대전화로 클래식 전문 라디오 어플리케이션을 켜고 세상의 소리와 멀어집니다. 내릴 정류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버스 안 전광판을 수시로 확인하는 버릇도 생겼습니다.
버스에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11분을 더 달리면 지용씨 직장과 가까운 호구포역에 도착합니다. 사람들이 출구로 나가기 위해 계단으로 몰리는 상황은 여간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걷다 회사 건물 1층에 도착했습니다. 지용씨는 말했습니다. “이제야 정신이 들어요. 사람들이 너무 시끄러웠어요.”
#시선
지용씨와 우영우는 타인의 눈을 대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우영우는 대화할 때 다른 사람의 눈을 보기 어려워합니다. 반대로 지용씨는 기자가 질문할 때마다 눈을 잘 맞췄습니다. 처음엔 우영우와 같았습니다. 불러도 대답이 없고, 다른 사람의 눈을 못 보는 아들이었습니다. 어머니 조면희씨(62)는 지용씨가 놀이치료를 받게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최대한 어울릴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지용씨는 대학까지 비장애인과 함께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지용씨에게도 마주하기 어려운 시선이 있습니다. 지난 5월 직속 상사인 안준혁씨는 지용씨의 입사 소식에 걱정이 앞섰습니다. “청소나 복사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력서에 영어 수준 ‘중(中)’이라고 썼더라고요. 자료 번역 업무 잘하더라고요.” 물론 모든 일을 혼자 척척 해내는 것은 아닌지라, 지용씨가 어려워할 때면 주변에서 친절히 설명해주곤 합니다.
회사에서 지용씨는 땅 크기를 컴퓨터에 입력하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지용씨는 정보조회 사이트에서 얻은 수치를 엑셀 문서에 입력했습니다. 업무에 열중하다 점심시간이 되자, 다른 부서 직원들에게 “식사하러 가요”라고 제안했습니다. 퇴근 후에는 신사동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약속이 있습니다.
#현실
‘자폐’라는 단어는 ‘스스로 가두다’는 뜻입니다. 지용씨는 이 단어가 불편하다고 말합니다. “특성을 잘 보여주면서도 차별적 느낌이 없는 대체어는 없어요.” 사람들과 소통하고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지용씨가 ‘스스로 가두는 사람’인 자폐인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제가 변호사로 일하고 있을 때도 사람들 눈에 저는 그냥 자폐인 우영우인 것 같습니다. 자폐인 우영우는 깍두기입니다. 같은 편 하면 져요. 내가 끼지 않는 게 더 낫습니다.” 드라마에서 사직서를 낸 이유를 설명하던 우영우의 대사입니다. 극 중 우영우는 자폐인이라는 이유로 변호사 일자리를 얻기 어려웠습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수석 졸업, 변호사 시험 성적은 만점에 가까웠지만 말입니다. 취업한 직장을 계속 다니기도 쉽지 않습니다.
지용씨의 현실도 우영우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인턴직이었던 지용씨는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았고, 다시 취업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홉 번째 직장이었던 이번 회사에서도 회사 사정으로 인해 더 다닐 수 없었습니다.
잔소리 대신 식탁에서 나누면 좋을 ‘1분 식톡’ 열두 번째 이야기. 자세한 내용은 영상으로 확인하세요.
→이 영상은 숏폼 플랫폼 틱톡 채널 ‘암호명3701’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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