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또 참사인가

전문가 4인 좌담회…잃어버린 국가를 찾습니다

허진무 기자    김송이 기자
재난안전 전문가들이 지난 9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 여적향에서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상은 플랫폼C 활동가, 문현철 숭실대 대학원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 오지원 법률사무소 법과치유 대표변호사, 이송규 기술사. 권도현 기자

재난안전 전문가들이 지난 9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 여적향에서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상은 플랫폼C 활동가, 문현철 숭실대 대학원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 오지원 법률사무소 법과치유 대표변호사, 이송규 기술사. 권도현 기자

한국 역사상 최악의 압사 참사가 벌어졌다. 2022년 10월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고 모인 시민 158명이 죽고 196명이 다쳤다. 좁은 골목길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깔려 숨진 원시적인 참사였다. 한국의 안전 관리와 재난 대응도 원시적인 수준임이 여실히 드러났다. 정부기관은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 참사 당시에도, 이후에도 국가는 없었다.

경향신문은 지난 9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전문가 4인과 좌담회를 갖고 참사의 원인과 책임, 국가의 역할, 재발 방지 대책 등에 대해 들었다. 행정안전부 재난대비 매뉴얼 심의위원인 문현철 숭실대 대학원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을 지낸 박상은 플랫폼C 활동가, 시민단체 생명안전시민넷 법률위원장인 오지원 법률사무소 법과치유 대표변호사, 한국안전전문가협회 회장인 이송규 기술사가 좌담회에 참석했다.

‘주최자 없는 행사’는 더 철저히 대비했어야

이번 참사의 원인은.

문현철=엄청난 인파가 좁은 골목길에 몰려들 수 있다는 위험 징후가 많이 있었지만 대비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이태원에 청년층이 모이는 걸 상당수의 중장년층이 부정적으로 보며 관심 밖으로 밀어뒀던 것도 참사의 간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지원=재난에 대응하는 기관 간의 협조 체계 전반을 조사해야 한다. 정부는 대통령실 인근 집회·시위 때문에 경찰력에 여유가 없었다고 하는데, 용산경찰서 사정이 어려웠다고 해도 다른 경찰서에서 인력을 구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문제인가.

박상은=많은 인파가 밀집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상상하지 못했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책임질 생각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송규=경찰은 물론 한국 사회 전체가 안전에 대해서 무지하다. 경찰이 112신고를 받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은 이유는 이런 압사가 발생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다’는 신고가 ‘불이 났다’는 신고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재난안전법’을 만든 지 18년이 지났다.

이송규=재난안전법을 보면 ‘지역축제’에 대해선 ‘개최하려는 자’(주최자)가 책임지는 구조이다. 핼러윈 축제는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행사여서 서울시와 자치구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국가는 안전에 무한책임을 지는 것이 맞지만, 법적으로는 책임을 물을 위반사항을 찾기 어렵다.

박상은=어쩔 수 없는 법의 사각지대라고 말하기에는 모호하다. 주최자가 없는 행사이긴 했지만 축제를 앞두고 용산경찰서, 용산구청, 이태원관광연합회, 이태원역장이 ‘4자 회의’를 한 사실을 보면 핼러윈 축제가 대규모 지역행사라는 점을 인식했다고 본다. 대비할 책임이 있었던 것 아닌가.

문현철=재난안전법에서 책임 조항을 찾기 어렵다는 말씀은 동의하기 어렵다. 해당 법의 제4조(국가 등의 책무)를 보면 국가와 지자체는 재난이나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책무가 있고 예방·대응·복구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해 시행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주최자가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건 면피성 발언이다. 주최자가 없는 축제는 더욱 위험하고, 당연히 대비해야 한다.

이송규=재난안전법 시행규칙을 보면 ‘지역축제를 개최하려는 자’(주최자)가 안전계획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누가 제출하고 누가 받겠나.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법률의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

오지원=재난안전법은 피해자 중심이 아니라 관리자 중심의 법이다. 피해자 관점에서 뭐가 중요하고 절실한지 체계화돼 있지 않다. 법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하는 과정도 부족했다.

‘주최자 없는 행사’여서 대비하지 못했다는 주장도 있다.

박상은=한국 사회에 ‘매뉴얼 지상주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사전에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대비한 매뉴얼을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현장 실무자가 매뉴얼을 완벽히 숙지하는 것도 어렵다. 왜 매뉴얼이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지 현장과 소통하며 만들어가야 ‘실행 가능한 매뉴얼’이 된다.

문현철=‘주최자가 없는 축제’라고 해도 ‘주최자가 있는 축제’의 매뉴얼을 준용해서 안전을 관리하면 된다. 그런데 그걸 안했다. 매뉴얼보다 상위인 법에서 단계별로 안전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데 ‘매뉴얼이 없어 못했다’는 것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오지원=정부와 지자체의 안전관리 책임자가 자신이 책임지거나 책임 범위를 확장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기본적인 재난 상황조차 대비가 없었다. 예방·대비·대응·복구 과정 전반에 관계기관이 협조하는 훈련이 돼야 하는데, 현재는 기관마다 찢어져서 이뤄지고 있다. 미국은 2005년 태풍 카트리나 이후 무척 실제적인 교육 훈련을 발전시켜왔다. 매뉴얼이 실제 작동하고 문제가 생기지 않는지 관계기관이 합동해 집중적으로 훈련한다. 고위 공무원들도 어떻게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지 자주 훈련을 받는다.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핼러윈 축제에서 압사 사고가 일어나자 소방당국이 구조 작업을 펼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핼러윈 축제에서 압사 사고가 일어나자 소방당국이 구조 작업을 펼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재난 대응은 기초지자체가 중심, 중앙정부는 지원해야

‘재난 컨트롤타워의 부재’라는 지적이 나오는데.

문현철=이태원의 사정, 특성, 지리 등을 가장 잘 아는 주체는 기초지자체인 용산구다. 재난안전관리시스템은 기초지자체부터 작동해야 하고, 광역지자체가 지원해주고,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하는 방향이 돼야 한다. 지자체의 역할을 건너뛰고 국가 차원의 역할만 이야기하면 안 된다. 포항 홍수나 울진 산불 사례를 봐도 기초지자체가 신속하고 역량 있게 대처하지 못해 피해가 컸다.

박상은=동의한다. 콘트롤타워라고 하면 가장 꼭대기에 있는 수장이 전부 컨트롤(통제)해서 잘 돌아가게 하는 걸 상상하게 되는데, 골든타임이 짧아 즉시 대응해야 하는 재난에 맞지 않을 수 있다.

문현철=참사 책임이 경찰과 소방에 집중되는 것은 재난안전법이 정한 시스템에도 맞지 않다.

오지원=예방 측면에선 지자체의 책임이 크지만 이 정도 규모의 참사는 지자체만의 문제라고 보기 어려울 것 같다. 모든 안전관리 체계는 관계기관의 협조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 재난안전법이 작동할 기반 자체가 없는 것 아닌가. 경찰이 112신고를 접수했더라도 지자체와 협조 훈련이 돼 있지 않으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개인의 안전불감증이 문제’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박상은=굉장히 잘못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도시에서 일상적으로 밀집해 살아가는 사람이 위험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사실 이번 참사로 한국 사회가 ‘사람이 밀집하면 이렇게 위험하다’는 걸 알게 됐다. 위험하지 않은 환경을 만들어야지 개인이 모든 위험을 미리 파악해 피할 수는 없다.

오지원=피해자에게 잘못을 돌리는 프레임으로 보인다. 출퇴근길 지하철만 타도 의지와 상관없이 예상보다 위험한 상황이 된다. 그래서 위험에 빠진 시민들에게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하고 안전 조치를 취해야 했다.

‘토끼 머리띠 남성’ 등 특정 개인에게 참사의 책임을 물을 수 있나.

이송규=이번 참사에는 한 사람이 아닌 다중의 힘이 작용했다고 본다. 외부의 힘이 없으면 이런 대규모 압사가 일어나기 어렵다. 특정인에게 책임을 떠넘기자는 것이 아니다. 원인을 알아야 다음 참사에 대한 대비가 가능하다.

오지원=한국 사회가 재난조사 시스템이 없다 보니 특정 개인을 타깃으로 삼아 ‘그가 없었다면 이런 결과가 없었을 것’이라는 사고방식에 익숙하다. 형사법적으로 봐도 특정인이 참사를 예견했는데도 밀었고 참사와의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으면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려워 보인다.

박상은=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전형적인 희생양 찾기다. 경사로에서 양방향 통행하는 환경을 만든 것이 근본적인 문제인데 특정인을 가해자로 지목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사흘째인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출구 앞에서 시민들이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이태원 핼러윈 참사’ 사흘째인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출구 앞에서 시민들이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피해자와 소통하는 재난조사기구가 필요하다

어떤 방식으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하나.

박상은=경찰의 ‘셀프 수사’가 진실 은폐로 끝날지는 결과를 봐야 안다. 다만 저는 한국이 당연한 듯이 수사를 통해 재난 진상규명을 하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제대로 재난조사를 하려면 여러 영역의 전문가, 피해자와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재난조사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수사가 먼저 시작되면 사건 관계자들이 솔직하게 증언하지 않아 구조적 문제 규명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문현철=동의한다. 감사원의 감사 기능도 있는데 수사부터 들어가는 것은 문제 아닌가.

오지원=재난조사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미국 감찰관(OIG)과 감사원(GAO)과 달리 한국 감사원은 징계 위주의 조사를 하는 한계가 있다. 많은 참사가 일어났지만 참사의 교훈을 확인하기 위한 재난조사는 부족했다. 수사는 개인에게 형사책임을 묻고 끝나버려 제도 개선과 연결되지 않는다. 독립된 재난조사기구가 필요하다. 재난조사기구를 만들면 정부의 과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매번 정부와 여당의 정치적 반대에 부딪혀왔다.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특조위를 방해했던 이유이다.

윤석열 정부는 ‘참사’가 아닌 ‘사고’로 명칭을 통일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박상은=사람들은 이 사건을 보자마자 ‘참사’라고 인식했다. 참사라는 명칭에는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됐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억지로 ‘참사’를 ‘사고’로 바꾸려고 하면 당연히 참사의 중대성을 축소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문현철=국민 정서와 거리가 먼 조치였다. 민주화된 국가에서 중앙정부가 ‘표현을 이렇게 쓰라’고 지시하는 것은 너무 부자연스럽다. 시민의 자발적인 추모 문화가 자연스럽지 관이 주도하려 하는 것은 시대와 맞지 않는다. 자칫하면 추모 취지를 오해받을 수 있다.

오지원=박근혜 정부 때도 여당에서 ‘세월호는 교통사고’라는 말이 나왔잖나. 자신들의 정치적·법적 책임이 무거워질까봐 국민의 충격을 인정하려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책임을 피하려는 태도가 예방·대비·대응·복구 과정에서 계속 드러나 참사가 반복되는 것 아닌가.

일각에선 참사 유족에 위로금과 장례비를 지원하는 것에 반대하는데.

오지원=재해구호법에 정해진 대로 지원하는 것이다. 누구라도 재난을 당하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피해자 지원은 섬세하게 접근해야 하는데 정부가 구체적 금액까지 밝혀 비난이 가중됐다. 마치 대통령이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홍보성 발표를 했다.

이태원 핼로윈 참사 추모공간이 마련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지난 2일 한 시민이 헌화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이태원 핼로윈 참사 추모공간이 마련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지난 2일 한 시민이 헌화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트라우마를 겪는 유족, 생존자, 목격자를 위해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나.

박상은=여러 방향에서 사회가 이 참사를 계속 책임지겠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제대로 진상 조사를 해서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치유가 된다.

오지원=피해 지원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정부가 안전을 책임지지 못한 것에 대한 구체적이고 분명한 사과다. 윤석열 대통령이 ‘무한책임’을 말했지만 국가기관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만 했다. 유족과 생존자는 물론 목격자까지도 참사의 분명한 피해자다. 이들은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린다. 피해자는 연대할 수 있어야 하고, 모여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고, 정부에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주체적으로 죄책감을 떨쳐낼 수 있다.

문현철=현재도 행안부의 재난심리회복지원시스템이 있지만 심리상담 중심이다. 상담 이외에도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직접 피해자 이외에도 구조에 참여한 사람들까지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문현철=재난안전법 자체는 기초, 광역, 중앙 3단계로 아주 정밀하게 설계됐는데 믿을 수 없을 만큼 작동하지 않았다. 가장 기초에서부터 재난 관리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참사의 가장 큰 교훈이 아닌가.

이송규=안전 대책 비용은 참사 복구 비용의 100분의 1도 안 될 수 있다. 안전 대책을 만드는 일은 ‘생각할 수 없는 걸 생각하기’라고 할 만큼 어렵다. 위험 요인별로 맞춤형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일반 국민이 안전교육을 받을 기회도 많아져야 한다.

오지원=참사에 대해 공직자가 보이는 소극적인 태도가 반복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재난안전법이 있지만 법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 다양한 재난 상황을 놓고 최고위부터 최말단 공직자까지 시뮬레이션을 계속하며 매뉴얼을 개선해가는 것이 필요하다.

박상은=세월호 특조위에서 한국 재난관리체계를 연구한 결과 조사 주체에 따라 사고 원인을 좁게 보고, 책임을 개인화하고 말단화하는 문제가 있었다. 진상규명이 형사처벌 중심이 되면 참사의 책임은 현장에서 매뉴얼을 지키지 않은 말단으로 넘겨질 수밖에 없다. 많은 매뉴얼이 있었는데도 실무에서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구조적 질문을 해야 한다. 제대로 된 재난조사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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