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뭐라도 해보자”…중국인들이 홍대 앞에서 자유 외치며 백지를 든 이유

김송이 기자

코로나 봉쇄 탓 우루무치 화재 참사

시민 탓하는 중국 정부 태도에 분노

현지 시위 탄압에 멀리서라도 연대

한국에 체류 중인 익명의 중국인들이 30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중국 신장 우루무치 화재 사고를 추모하고 ‘제로 코로나’ 봉쇄 정책에 반대하는 ‘백지 시위’를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한국에 체류 중인 익명의 중국인들이 30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중국 신장 우루무치 화재 사고를 추모하고 ‘제로 코로나’ 봉쇄 정책에 반대하는 ‘백지 시위’를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서울시 구로구에서 직장을 다니는 A씨는 한국살이 7년차 중국인이다. 2020년 2월 이후로 중국에 있는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 가족을 만나려면 중국에 가야 하는데, 한번 중국에 가면 ‘제로코로나’ 봉쇄 정책 때문에 한국으로 못나올 수도 있다고 걱정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4일부터 고향인 중국의 뉴스를 접하던 A씨와 중국인 친구들은 답답함을 느꼈다. 첫 번째 뉴스는 24일 중국 신장 우루무치시에서 발생한 아파트 화재 사건이었다. 이 화재로 19명의 사상자가 나왔는데, ‘제로코로나’ 봉쇄 정책 탓에 아파트에서 제때 빠져나오지 못한 게 원인으로 분석됐다. 다음날에는 중국 당국이 참사 원인에 대해 “사람들이 자기를 구하려는 의지가 부족했다”고 말하는 뉴스를 봤다. A씨는 분노했다. “정부가 뭘 잘못했는지, 어떻게 자세히 해야 했는지를 발표해야 하는데 시민을 탓하다니.”

한국에서 사귄 중국인 친구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상하이에서 시위가 일어난 사실, 시위 참가자가 연행되는 중국 현지 실상을 접했다. 전세계 곳곳에 나가있는 유학생들이 촛불과 백지를 들고 거리로 나오는 모습도 봤다. A씨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뭐라도 해야 마음이 편하니까, 우리도 뭐라도 해보자.”

A씨는 지인 6명 정도와 지난달 27일부터 시위를 준비했다. 모일 날짜를 정하고, 시위를 알리는 포스터를 직접 만들어 SNS에 뿌렸다. 누구나 익명으로 접속할 수 있는 오픈채팅방도 개설했다. 처음에 10명이었던 채팅방 참가자는 하루하루 지나면서 200명, 400명으로 불어났다. 서류를 준비해 집회신고를 하고, 발언용 확성기를 준비했다.

한국에 체류 중인 익명의 중국인들이 30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중국 신장 우루무치 화재 사고를 추모하고 ‘제로 코로나’ 봉쇄 정책에 반대하는 ‘백지 시위’를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한국에 체류 중인 익명의 중국인들이 30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중국 신장 우루무치 화재 사고를 추모하고 ‘제로 코로나’ 봉쇄 정책에 반대하는 ‘백지 시위’를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그렇게 지난달 30일 서울시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백지 시위’가 열렸다. 한국에서 처음 열린 백지 시위였다. 시위에 참여한 300여명은 “억압 대신 자유를 달라”고 외쳤다. 참가자들은 “봉쇄말고 자유를” “거짓이 아닌 존엄을” “독재말고 선거권을” 등의 구호를 외치며 백지를 들었다. 공개적으로 집회를 하는 것이 무섭지 않았냐는 질문에 A씨는 “안 무서웠다. 중국도 아닌데 뭘. 저희가 무서우면 중국에 있는 사람들은 어떡하겠느냐. 더 무서울 것”이라고 했다.

A씨는 하루빨리 제로코로나를 끝내고 일상생활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A씨는 제로코로나의 문제점에 대해 “배달이나 식당일을 하는 사람들, 이제 대학을 나와서 직장을 구해야 하는 사람들이 진짜 힘들 것”이라며 “직장 매출이 줄어드니까 잘리기 시작해 대출도 갚지 못한다. 자살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고 했다.

홍대 앞 시위에선 ‘시진핑 타도’와 같은 반정부 구호도 나왔다. A씨는 “바뀌어야 하는 게 너무 많다”며 “당장 모든 게 바꿔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응원하고 있다,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A씨는 “제로코로나 때문에 어린이부터 젊은 사람들까지, 죽으면 안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었다. 제로코로나가 끝나지 않는 이상 시위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Today`s HOT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지진에 기울어진 대만 호텔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가자지구 억류 인질 석방하라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