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윤석열 정부, 대일 외교 ‘레드라인’ 모두 허물어”
징용 배상 판결 부정한 윤 대통령에 ‘삼권분립 위배’ 지적도
시민단체, 굴욕 외교 규탄 집회…“매국노 이완용이 웃는다”
최근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측이 2015년 ‘위안부’ 합의 이행을 요구하고 독도 영유권을 주장했다는 외신 보도까지 나오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굴욕 외교’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징용) 배상 해법으로 ‘3자 배상안’을 제시하며 “물컵에 반이 찼다고 한 만큼 나머지 반을 채우는 역할은 일본이 해야 한다”(박진 외교부 장관)고 했지만 정작 일본 측은 ‘물컵의 나머지 절반도 한국이 채우라’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일본 교도통신 등은 지난 16일 한·일 정상회담 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윤 대통령에게 2015년 타결된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요구하고 독도 영유권도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실 복수의 관계자들은 “독도는 아예 거론된 바 없다”고 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전날 YTN <뉴스와이드>에 출연해 “(독도는) 현재 우리가 점유하고 있는 우리 땅”이라며 “일본 당국자가 우리에게 독도 얘기를 한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박진 장관은 같은 날 KBS <뉴스9>에서 “독도라든지 위안부 문제는 의제로서 논의된 바 없다”면서도 “정상회담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일본에 사실상 모든 걸 바치는 ‘조공 외교’를 펼쳤다고 비판했다.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9일 통화에서 “일본 측에선 한국이 바겐세일한다고 보고 원하던 것들을 다 얘기한 것 같다”며 “일본 입장에서도 깜짝 놀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당시 외무상이었던 기시다 총리에게 2015년 위안부 합의는 자신의 성과”라면서 “한국이 이를 폐기한 것을 놓고 기분 나빠하던 와중에 한국이 저자세로 나오니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전 정부가 대일 외교에서 지켜오던 ‘레드라인’을 모두 허문 것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문재인 정부에서 외교부 1차관을 지낸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전에도 일본은 차관 회담 등에서 독도 문제를 언급한 바 있다”며 “그럴 때는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우리 주권 아래의 고유 영토다’라고 대응하면 되는데, 논의되지 않았다는 건 이 정도의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정상회담에서 일본 측이 독도 영유권 문제도 거론했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면) 역대 진보, 보수 정권에서 모두 지키던 레드라인을 윤 정부가 허문 셈”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강제징용 배상과 관련해 “(일본 피고 기업에 대한) 구상권 행사는 상정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이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의 판결에 문제가 있다고 공언한 꼴이 됐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삼권분립은 민주주의의 근간인데 대통령이 대법원의 판결이 마음에 안 든다고 부정하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우리나라의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우리가 인정한 꼴이 된 것”이라고 했다. 일본은 2018년 일본 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경제보복을 시작했는데, 정부가 일본 측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인 셈이 됐다는 것이다.
시민사회의 비판도 확산하고 있다. 정의기억연대, 민주노총 등 610여개 시민단체가 만든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전날 오후 서울광장에서 정부의 대일 외교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날 전희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은 “강제동원을 한 적 없다는 일본 앞에서 ‘구상권 청구는 없다’고 약속한 자가 윤석열 대통령이고, 전범기업이 강제동원 피해자에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도 잘못됐다는 자가 윤석열 대통령”이라며 “(정부의 대일 외교에) 친일 매국노 이완용이 웃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