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 못한 신발, 치지 못한 기타…단원고 학생들이 남기고 간 사연들

전지현 기자
경기 안산시 안산문화예술의 전당에서 29일 개막한 세월호참사 10주기 기억물품 특별전 <회억정원>에서 시민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경기 안산시 안산문화예술의 전당에서 29일 개막한 세월호참사 10주기 기억물품 특별전 <회억정원>에서 시민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노란 스카프를 맨 채 노란 우산을 든 은인숙씨(53)가 먹먹한 눈으로 전시실에 놓인 물건을 둘러봤다. 조그마한 자명종 앞에서 “이건 형준이 거구나” 등 번호 25가 적힌 흰 야구복 앞에서 “이건 준영이 거네” 되뇌던 은씨가 한 전자기타 앞에 멈춰 섰다. 10년 전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은씨 아들 강승묵군의 생전 꿈이 담긴 기타였다.

29일 경기 안산 문화예술의전당 3·4 전시실에 단원고 세월호 참사 희생자 37명의 유품이 놓였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4·16 재단이 주관한 ‘회억정원’ 전시에 가족들은 아이들의 방에 간직해 둔 물건을 세상에 내놨다.

이날 개막식에서 이태민군 어머니 문연옥씨는 가족들을 대표해 “아이가 보고 싶을 때마다 끌어안고 흘린 가족들의 눈물이 담긴 물건들”이라며 “아픔만을 공유하는 전시가 아니라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 전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기 안산시 안산문화예술의 전당에서 29일 개막한 세월호참사 10주기 기억물품 특별전 <회억정원>에 이태민군이 사용하던 프라이팬이 전시돼있다. 한수빈 기자

경기 안산시 안산문화예술의 전당에서 29일 개막한 세월호참사 10주기 기억물품 특별전 <회억정원>에 이태민군이 사용하던 프라이팬이 전시돼있다. 한수빈 기자

교복, 야구 글러브, 생일 카드, 편지, 붓과 팔레트, 연극 대본 노트, 연습장…. 고등학교 2학년이던 이들의 일상과 꿈이 담긴 물건들이 사연과 함께 전시됐다. 문씨는 요리학원에 다니던 아들의 프라이팬을 전시했다. 참사 이후 10년을 버틴 프라이팬은 군데군데 코팅이 벗겨져 있었다. 엄마의 생일을 맞아 태민군이 함박 스테이크를 요리했던 프라이팬이었다.

경기 안산시 안산문화예술의 전당에서 29일 개막한 세월호참사 10주기 기억물품 특별전 <회억정원>에 편다인양이 수학여행 때 신으려고 산 운동화가 전시돼있다. 한수빈 기자

경기 안산시 안산문화예술의 전당에서 29일 개막한 세월호참사 10주기 기억물품 특별전 <회억정원>에 편다인양이 수학여행 때 신으려고 산 운동화가 전시돼있다. 한수빈 기자

수학여행을 앞둔 학생들의 설렘이 담긴 물건도 있었다. 2학년9반 편다인양의 빨간 운동화는 원래 2014년 수학여행에서 신으려 산 것이었다. 편양의 부모님은 “막상 헌 운동화를 신고 갔길래 전화로 물어보니 그냥 그게 더 편해서 그랬다고 했다”며 “낡은 신발을 신고 간 게 마음에 걸린다”고 전시기획단에 전했다.

경기 안산시 안산문화예술의 전당에서 29일 개막한 세월호참사 10주기 기억물품 특별전 <회억정원>에서 김정해씨가 아들 안주현군의 기타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한수빈 기자

경기 안산시 안산문화예술의 전당에서 29일 개막한 세월호참사 10주기 기억물품 특별전 <회억정원>에서 김정해씨가 아들 안주현군의 기타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한수빈 기자

수학여행에 기타를 챙겨갈 만큼 연주를 즐겼던 2학년8반 안주현군의 어머니 김정해씨는 전시장에 놓인 전자기타를 연신 쓰다듬었다. 전날인 28일은 주현군의 생일이었다. 지난 주말 김씨 부부는 아들이 있는 경기 평택 서호추모공원을 찾아 아들에게 “네 기타를 전시할 거야”라 말하고 왔다고 했다. 주현군이 세월호에 들고 탄 기타는 여전히 바다에 있다.

아이들의 물건을 통해 부모들은 그간 서로 몰랐던 각자 자녀의 관심사와 취향을 알게 되기도 했다. 어떤 마음으로 유품을 보관해왔는지 잘 알기에, 서로가 가져온 물건도 꼼꼼히 눈에 담는 모습이었다. 2학년1반 김수진양의 아버지인 김종기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김슬기양의 클레이 작품을 보며 “솜씨가 좋다”고 감탄했다. 또 곳곳에 놓인 악기들을 보며 “음악을 하고 싶었던 애들이 있다곤 알았는데 직접 보니 또 다르다. 다들 재주가 많았던 것 같다”라고 했다.

경기 안산시 안산문화예술의 전당에서 29일 개막한 세월호참사 10주기 기억물품 특별전 <회억정원>에서 유점림씨가 딸 이지민양의 담요를 안고 있다. 한수빈 기자

경기 안산시 안산문화예술의 전당에서 29일 개막한 세월호참사 10주기 기억물품 특별전 <회억정원>에서 유점림씨가 딸 이지민양의 담요를 안고 있다. 한수빈 기자

이들은 “응원해준 시민분들께 보답하고 싶은 마음”으로 전시를 준비했다고 했다. 2학년3반 이지민양이 중학교 때부터 사용하던 주황색 무릎담요를 내놓은 유점림씨는 “담요처럼 마음이 따스한 사람들을 만나 참사의 아픔을 견뎌낼 수 있었다”고 했다. 참사 이후 단원고 교실에서 돌려받은 딸의 담요는 유씨에게 “거리에서 만난 수많은 시민들의 위로·응원을 떠오르게 하는” 유품이었다.

37명의 유품뿐 아니라 세월호 선체에서 나온 유류품을 활용한 창작예술작품 6점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오는 5월5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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