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출산제는 왜 논쟁의 대상이 됐나 어떻게 하면 아기를 살릴 수 있을까? 출생등록도 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아기들의 부고가 연일 보도되는 요즘, 자주하는 생각입니다. 더불어 ‘살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고민합니다. ‘죽지 않게 하는 것’과 ‘살게 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오늘 점선면이 들여다볼 화두는 ‘보호출산제’입니다. 임산부의 익명 출산을 보장하는 제도라 ‘익명출산제’라고도 불려요. 최근 국회에서 통과된 출생통보제와도, 거듭 밝혀지는 아기들의 죽음과도 관계가 있는 문제입니다.
출생통보제가 시행되면 지금까지 개인에게만 맡겨왔던 영아의 출생등록이 의료기관의 의무가 됩니다. 국가의 보호망 밖에서 조용히 살해·유기당하는 ‘미신고 영아’의 비극을 막으려는 조치입니다. 문제는 ‘의무적인 출생등록’에 거부감을 느끼는 임산부들이에요. 다양한 이유로 자신의 출산 사실이 알려져서도, 기록돼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출생통보제가 시행되면 이 같은 여성들이 병원 밖 출산을 택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우려가 나와요.
‘보호출산제’는 이 맥락에서 등장합니다. 경제적·사회적 위기에 처한 임산부가 신원을 노출하지 않은 채 의료기관에서 출산하고, 지방자치단체에 아이를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예요. 신원 노출에 대한 두려움으로 병원 밖에서 아기를 낳고, 최악의 경우 유기·살해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가 ‘익명 출산’을 보장하겠다는 겁니다.
보호출산제는 뜨거운 찬반 논쟁의 대상입니다. 정부와 여당은 출생통보제·보호출산제의 병행 시행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미혼모 인권단체와 해외 입양인들을 중심으로 보호출산제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은 상황이에요.
찬성과 반대측 모두 각자의 주장이 아기를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보호출산제는 아기를 살리기 위한 대안일까요, 걸림돌일까요? 갓 태어난 아기가 죽임 당하거나 버림받지 않고, 나아가 삶다운 삶을 누리려면 우리 사회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보건복지부를 출입하는 김향미 기자와 함께 알아봤습니다. |
|
|
2123명 - 2015년부터 8년간 출산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 기록이 확인되지 않은 내국인 아동의 숫자입니다. 정부는 이들의 소재와 생사여부를 전수조사했습니다.
6000명 - ‘출생 미등록 아동’의 규모는 보건복지부 정기감사 결과 밝혀졌습니다. 감사원은 2015~2022년 신생아 예방접종으로 의료기관이 부여하는 임시신생아번호를 받았지만 출생신고는 되지 않은 아동 6000여명을 찾아냈습니다.
- 앞에서 언급한 2123명은 감사원이 찾은 6000여명 중 출생신고 의무가 없는 외국인 아동 약 4000명을 제외한 숫자입니다. 정부는 외국인 아동에 대한 조사는 따로 진행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814명 - 태어나고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내국인 아동 중 현재 행방과 생사를 알 수 없어 경찰이 수사 중인 아동의 숫자입니다.
7명 - 미등록 상태로 사망한 27명 영아 중 '수원 냉장고 영아 살해 사건' 등 범죄와 연관된 숫자입니다.
10명 중 8명 - 2013년부터 9년간 영아를 살해한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 86명 중 67명, 77%가 10·20대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년 - 지난 6월30일 국회에서 통과된 출생통보제는 공포일로부터 1년 후에 시행됩니다. 정부는 출생통보제와 함께 위기 임산부의 익명 출산을 보장하는 보호출산제를 시행하겠다는 방침입니다.
- 보호출산제 도입을 위한 특별법은 여야간 이견을 좁히지 못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돼있습니다.
|
|
|
태어난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는 되지 않은 아동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면서, 영아 살해·유기 사건들이 뒤늦게 밝혀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출생 미등록 아동의 살해·유기를 막기 위해 출생통보제와 더불어 보호출산제를 도입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야당·시민단체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
|
|
1. 보호출산제, 뭐가 문제일까? 보호출산제는 출산한 여성의 신원을 익명으로 보호합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동은 자신을 낳은 친부모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가죠. 자신의 친부모가 누구인지 알 권리는 아동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누려야 할 기본권*인데 말입니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되어야만 하고, 출생 당시부터 이름을 가질 권리 및 국적을 취득할 권리를 가지며, 가능한 경우 친부모의 신원을 알 권리 및 친부모에 의한 돌봄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친부모를 알 권리는 한 사람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형성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뿌리를 알 수 없다는 데서 오는 정신적 고통은 평생 지속되기도 하고요. “저를 포함한 많은 해외 입양인은 기록이 없어,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수많은 해외 입양인이 (출생) 정보에 접근하지 못해 고통받고 있다.” 해외 입양인인 피터 뭴러 덴마크 한국인 진상규명그룹 대표는 이렇게 말해요 . 익명 입양 당사자인 민영창 국내입양인연대 대표 역시 “ 입양 기록을 남기는 것은 생부와 생모의 정보를 단순히 알거나 모르는 문제로 끝나지 않고, 내 존재의 정당성에 관한 문제로 이어진다”고 말합니다. 이런 이유로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19년 한국 정부에 "익명으로 출산할 가능성을 허용하는 제도의 도입은 최후의 수단으로만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했어요. |
|
|
2. ‘알 권리’ 보장할 수 있다면? 하지만 보호출산제가 아동이 부모를 알 권리를 완전히 침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반박도 있습니다. 이미 익명출산제를 시행하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해 두었어요. 친생모의 정보를 국가가 밀봉상태로 보관하고 있다가, 아동이 일정한 나이가 되면 이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입니다. 한국에서 발의된 보호출산제 법안들도 이런 선례를 참조해 반영하고 있습니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의 법안을 봐도 부모의 인적사항이 담긴 '출생증서'를 아동권리보장원이 보관한 뒤 성인이 된 자녀가 열람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부모가 아동의 정보 열람을 반대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독일 가정법원은 이 경우 친부모의 비밀 유지로 인한 이익이 자녀가 부모를 알 권리보다 더 보호되어야 할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 판단합니다.
익명출산제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에서도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부모가 사생활 비밀을 유지할 권리보다 자녀가 부모를 알 권리를 우선적으로 보장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
|
|
3. 생명은 살리고 봐야지 보호출산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 역시 친부모를 알 권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알 권리를 이유로 익명 출산의 통로를 차단해 버린다면, 부모가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영아를 살해하거나 유기하는 비극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는 거죠. "생명권이 우선이냐, 알 권리가 우선이냐." 보호출산법을 발의한 김미애 의원은 이렇게 되물으며 일단은 '아기를 지켜야'한다고 강조합니다. 보호출산제가 아기의 목숨을 지킬 방안으로 언급되는 이유는, 사회적·경제적 위기에 처한 임산부의 '비밀 유지'가 영아의 생명권에 미치는 영향 때문입니다. |
|
|
실제 판례를 분석한 논문들을 보면, 영아살해 혹은 유기로 재판에 넘겨진 이들이 가장 자주 언급하는 범행 동기는 ‘출산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서’였습니다(보통 피고인들은 한 가지 이상의 범행 동기를 언급합니다). 만약 이들이 보호출산제 하에 아기를 낳을 수 있었다면 살해 혹은 유기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찬성측의 주된 주장입니다. 오랫동안 사회적 논쟁거리였던 ‘베이비박스’ 역시 같은 맥락에서 옹호되곤 했습니다. 베이비박스는 부모가 익명으로 아동을 포기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익명출산제와 궤를 같이 하는데요. 한국에선 2009년부터 한 교회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영아유기를 조장한다는 비판 속에서도 베이비박스는 오랫동안 강력한 사회적 지지를 받아왔습니다. 산부가 쓰레기통이나 화장실에 아기를 버리게 두느니, 안전한 환경이 담보된 베이비박스에 유기하는 편이 낫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지자체가 직접 베이비박스를 설치·지원하는 조례안이 제주도의회 등에서 추진되기도 했어요. |
|
|
4. 익명출산이 정말 영아살해를 막을까? 그러나 많은 연구들은 익명출산과 영아살해는 큰 관련이 없다는 결론을 내놓습니다. 베이비박스·익명출산제로 인한 영아살해·유기 감소가 유의미하지 않으며, 익명출산이 아동의 생명보호에 기여하는 효과가 크지 않다는 거예요. 베이비박스나 익명출산제 이용자는 계획을 세워 행동하지만, 영아살해·유기는 대개 계획적인 판단과 행동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이 그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일례로 덴마크 복지연구센터 바이브는 유럽의 베이비박스를 연구한 끝에 “ 2000년 이후 독일에서 베이비박스를 설치했지만, 밖에서 버려져 죽는 영아의 수가 줄었다는 보고는 아직 없다”며 베이비박스와 익명출산제의 실효성을 의심합니다. 한국에서도 익명출산이 영아 살해·유기를 실제 줄이지 못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소라미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논문을 통해 베이비박스 시행 이후 영아 살해의 건수가 유의미하게 줄어들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
|
|
베이비박스가 설치된 2009년 12건이었던 영아 살해 건수는 2012년 16건, 2013년 7건, 2015년 16건, 2016년 7건, 2019년 8건 등으로 집계됩니다. 이렇게 들쑥날쑥한 감소 추이로는 베이비박스와 익명출산의 효용성을 증명하기 어렵다는 거죠. (게다가 최근 감사원 조사 결과 2015년 이후 은폐된 영아 살해 사건이 속속 추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
|
|
5. '안전한 유기' 대신 필요한 것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두기 전에 부모들은 많은 옵션에 대해 알아보고, 최후의 선택으로 베이비박스를 선택한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교회의 전 전도사의 말입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동의 통계를 분석한 ‘ 베이비박스 프로젝트 보고서’에 소개돼있어요. 보고서는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두었다가 다시 찾아가는 부모의 비율이 전체의 30%에 달한다고 밝힙니다. 그러면서 베이비박스가 아기를 버리는 ‘쓰레기통’이 아니라 안전하게 아기를 맡기는 ‘임시보호소’로 인식되고 있음을 지적하죠.
애초에 아기가 죽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쓰레기통에 버리는 부모라면, 굳이 아기를 버리기 위해 베이비박스까지 찾지는 않을 거라는 말입니다. 오히려 베이비박스는 양육이 어려운 상황 때문에 잠시 아이를 맡길 곳이 필요한 부모들의 ‘고르고 고른 선택지’에 가깝다는 거죠.
하지만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상황은 쉽게 개선되지 않기에, 베이비박스로 보내진 아기 대부분은 결국 ‘임시 보호’ 아닌 ‘유기’된 상태로 남게 됩니다. 이때 베이비박스는 이것이 그나마 ‘안전한 유기’라는 안도를 부모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안겨주고요. 보호출산제 역시 베이비박스와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보호출산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제도가 제공하는 '안전한 유기'가 영아유기를 조장할 뿐 아니라 영아유기를 줄이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과 제도 마련을 더디게 만든다고 주장해요. 어떤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비밀에 부치고 양육을 포기하려 한다면, 국가와 사회는 그 이유를 먼저 들여다보고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정부가 사회적·경제적으로 취약한 여성들이 양육을 포기하게 만드는 원인을 해결하기에 앞서 ‘안전한 양육 포기'부터 제도화한다면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지만 여건이 되지 않는 여성들의 양육 선택권이 제한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죠. 보호출산제를 추진하는 정부·여당은 위기임산부 지원·상담 등 정책을 병행해 이 같은 문제를 보완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
|
|
6. 선진국에선 이미 하고 있다는데 프랑스와 독일. 베이비박스와 익명출산 이슈가 국내에서 불거질 때면 항상 언급되는 나라들입니다. 이미 신뢰출산(독일)·비밀출산(프랑스) 등 법제화된 익명출산제를 시행하는 '인권 선진국'들이기 때문이죠. 물론 이들 국가에서도 익명출산을 법제화하는 것에 대한 비판은 계속돼왔습니다. 아동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요. 하지만 위기 임신부의 출산을 제도권 안으로 안전하게 편입시켰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적지 않습니다. 아동의 출생등록 사각지대를 방지하고, 산모와 영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요. 독일은 2014년부터 합법적으로 비밀출산을 보장하고 출산 시 산모와 아이에 대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신뢰출산제를 시행 중입니다. 2017년 독일 정부는 3년 간의 신뢰출산제 성과를 평가하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보고서는 신뢰출산제 시행 이후 ‘익명에 의한 아이의 위탁’, 예컨대 베이비박스 같은 사설 단체에 아기를 맡기려던 임신부 중 공적 제도인 ‘신뢰출산’에 참여하기로 마음을 바꾼 이들이 10명 중 4명(41.9%)이라며 긍정적 평가를 내놓습니다. 제도 안으로 위기 임신부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는 거죠. (출처: 서종희, ' 미등록 외국인 아동의 출생 등록될 권리 보장') 또한 익명출산제는 출생한 모든 아동이 부모 또는 해당 아동의 법적 지위와 국적에 상관없이 출생국 정부에 출생 사실을 등록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보편적 출생등록’을 실현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언급되기도 합니다.
내년부터 시행될 한국의 출생통보제는 외국인 아동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국내에 체류하는 미등록 이주민이 신분 노출로 인한 국외 추방을 두려워 한 나머지 아동의 출생등록을 회피할 수 있다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어요. 출생통보제를 온전한 '보편적 출생등록' 제도라고 평가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독일은 신뢰출산제와 함께 국적법을 개정하며 '보편적 출생등록'을 실현하려는 노력을 보여줬습니다. 신뢰출산제로 친부모의 국적 역시 비밀에 부쳐진 상황에서 태어난 아기는 반대 증거가 제시되기 전까지 독일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미등록 이주민이 추방에 대한 두려움 없이 아기에 대한 출생등록을 마칠 수 있게끔요. |
|
|
7. 한국은 다르다? 하지만 독일, 프랑스와 한국을 단순 비교할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옵니다. 독일 케이스를 계속 들여다볼게요. 독일 내 베이비박스 유기 아동 통계를 보면, 다수가 미등록 이주민, 홈리스, 약물 또는 알콜 중독 등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납니다(서종희, ‘ 출생신고에 관한 비교법적 검토’). 한국의 베이비박스 통계와는 확연히 다른 부분입니다. ‘혼인 외 임신’이란 분류 자체가 없기 때문이에요. 한국의 경우 유기 아동의 70% 내외가 미혼모 가정의 자녀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영아살해 판례 논문의 분석 대상이 된 피고인 46명 중 45명이 미혼모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이 독일·프랑스와 ‘다르다’고 말하는 이들은 미·비혼모를 포함해 혼인 외 임신을 향한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과 그에 따른 불이익을 짚습니다. 한국에서 양육을 포기하려는 '위기 임산부'가 발생하는 주된 이유이지만, 정부 차원의 해결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면서요.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임신과 출산을 ‘벌어져서는 안 될 일’ ‘되도록 숨겨야 하는 일’ ‘없던 일로 만들어야 하는 일’로 생각하는 한국과 결혼하지 않고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편견 없이 받아들여지는 독일·프랑스를 단순 비교할 순 없습니다. 보호출산제가 한부모가족 등에 대한 공적인 지원제도의 설계와 발전을 저해시킨다는 주장은 이런 맥락에서 나옵니다. 보호출산제는 '정상가족'의 울타리 밖 임신·출산·육아가 처한 위기 상황의 근본적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거죠. 도리어 혼인 외 임출육은 '숨겨야 한다'는 편견만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고요.
혼인 관계 안에서든 밖에서든, 임신·출산·양육의 의지가 있는 여성이 사회적 편견이나 그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이를 포기하지 않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이 먼저라는 이야기입니다. 다행히 정부는 이번 사안을 계기로 이달 초 범부처 관계자와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출생 미등록 아동보호체계 개선 추진단’을 꾸렸습니다. 복지부는 “위기임산부가 양육을 포기하지 않도록 위기 임산부·한부모의 임신·출산·양육 지원 강화방안을 관계부처 합동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
|
|
보호출산제는 출생등록 사각지대에서의 영아살해·유기를 막는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아동이 친부모를 알 권리를 침해하며 혼인 외 임신·출산·육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강화한다는 점에서는 비판받습니다. |
|
|
1. 안전한 임신중지가 먼저다 앞서 보호출산제를 둘러싼 분분한 의견들을 살펴봤어요. 확실한 것은 이 제도만으로는 '아기를 살린다'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처벌 강화? 뒤늦게 '미신고 영아' 살해·유기 사건들이 알려지면서 가해 부모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죠. 국회에서는 영아 살해·유기범도 일반 살인·유기범처럼 최대 사형에 처하도록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이 통과됐고요. 그런데 비난이 집중된 건 주로 "비정한 엄마"들입니다. 실제로 형사처벌 대상이 된 것도 대부분 엄마, 특히 미혼모예요. 아기는 여자 혼자 낳을 수 없지만, 출산 이후의 문제들은 오롯이 여성 개인의 것으로 여겨집니다. 주로 여성 개인의 '무책임'이 힐난의 대상이 되죠. 하지만 여성이 원치 않을 출산을 하지 않을 권리, 안전한 임신중지권조차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여성 개인'에게만 아기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온당치 않아요. 낙태죄가 폐지된 지 4년이 넘었지만 안전한 임신중지권 보장을 위한 법과 제도는 여전히 '공백'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은 여전히 '원치 않은 임신과 출산'으로 내몰리고 있고요.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렵게 출산을 결심하더라도 양육 과정에서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처럼 애초에 임신·출산·육아를 온전히 '선택'하기 어려운 여성 개인들에게만 아기를 지키지 못한 책임을 모두 지우는 것은 부적절할 뿐 아니라 무용하다고 생각해요. 필요한 것은 여성 개인에 대한 비난과 처벌 강화가 아니라, 적절하고 온전한 권리의 보장입니다. 임신과 출산을 여성 개인이 오롯이 결정할 수 있도록,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아이를 키우는 것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도록 국가가 먼저 보장할 때 '원치 않는 출산' '원치 않는 아기'는 사라집니다. 그래야만 이름 없는 아기들의 죽음과 유기를 막을 수 있고요. 이은주 정의당 의원 역시 "편견 없이 출산해서 차별 없이 아동을 양육하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최대 사형' 등 처벌에만 방점을 두어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없기 때문이죠. |
|
|
2. '어떤' 아기를 살릴 것인가? 앞서 2015~2022년 출생 등록이 안 된 신생아 6000여명 중 4000여명은 외국인 아동이었다는 점을 말씀드렸죠. 야권과 시민단체에서는 이 4000명 중에서도 예방 접종 등 필수 복지에서 소외되고 범죄 위기에 처한 아이가 꽤 있을 것이라고 우려해요. 미등록 이주민이 국내에서 낳은 아이가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내년 시행될 출생통보제로는 미등록 이주민의 자녀가 배제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가족관계등록부가 국적부 역할을 하고 있어, 이주 아동의 출생등록이 의무화되려면 별도의 법률 통과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권인숙·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미등록 이주민의 자녀도 출생 등록할 근거를 마련하고, 미등록 이주민들이 자녀 출생등록을 이유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상태입니다.) 출생통보제·보호출산제의 논의가 애초에 아기를 '살리기' 위해 시작된 것이었다면, '어떤 국적'의 아기를 살릴 것인가의 구분은 불필요합니다. 국적에 상관없이 모든 아기가 공적인 시스템 안에 등록되고 보호받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할 시점이에요. |
|
|
3. 아기를 살리고 난 뒤
베이비박스는 '익명 출산은 죽을 수 있었던 아기를 살린다'는 주장을 통해 정당성을 확보하고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아왔습니다. 만약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렇게 '살린' 아기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
|
|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기는 경찰에 신고된 후 담당 구청을 거쳐 아동복지센터로, 이후 가정 위탁이나 입양, 아동양육시설 등으로 보내지게 됩니다. 위의 통계가 보여주듯 대부분 아동은 시설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가죠. 시설에서 성장한 아동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마음의 상처를 호소합니다. 양육이나 가르침이 부족하다는 편견, 낯선 어른들과의 생활이 준 정서적 불안은 보호 종료 이후 성인이 된 후에도 쉽게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에요. 아동복지법은 "국가와 지자체는 아동이 태어난 가정에서 성장할 수 없을 때에는 가정과 유사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정합니다. 그런데 익명으로 출산한 아동에게는 이 같은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셈이에요. 보호출산법을 발의한 김미애 의원 역시 "익명인 아동은 일단 국가의 보호 아래 들어서게 되는데, 이 경우 시설 양육으로 이어지기 쉽다"면서 우려할 정도입니다. 보호출산제 도입 여부를 떠나 익명 출산으로 태어난 아동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 국가 주도의 입양 체계가 필요합니다. 아기의 생명을 '살린' 후에도 가정 혹은 유사한 환경에서 '잘 살 수 있도록' 지속적 보호가 있어야 하죠. |
|
|
보호출산제만으로는 '아기를 살린다'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렵습니다. 임신과 출산, 양육 환경에서 여성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하고 국적과 상관없이 모든 영아의 생명권을 보호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린' 아동이 가정 혹은 유사한 환경에서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공적 체계도 필요해요. |
|
|
☑️ 출생신고가 되지 못한 채 죽거나 버려진 아기들의 비극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의료기관이 출생등록의 의무를 지는 출생통보제가 국회에서 통과됐습니다. ☑️ 정부와 여당은 위기 임산부의 익명 출산을 보장하는 보호출산제도 함께 도입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에 대한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 '아기를 살린다'는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익명 출산' '처벌 강화' 등 단편적 해법보다는 편견 없이 출산해 차별 없이 아동을 양육하는 환경이 우선돼야 합니다. |
|
|
"출생통보제와 함께 보호출산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관련 입법을 추진 중인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의 인터뷰입니다. 김 의원은 보호출산제에 관해 오래 고민해 온 만큼, 해당 제도가 필요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딸을 입양한 엄마로서 "입양 관련 법안에도 손을 대야 한다"고 말하기도 해요. |
김미애 의원과는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영아살해·유기 문제를 바라보는 이은주 정의당 의원의 인터뷰입니다. 이 의원은 출생통보제 도입에서 더 나아가 안전한 임신중지권 보장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해요. 보호출산제는 여성과 아동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방식으로 졸속 입법이 될까 우려하고요. |
|
|
대화를 이어가고 싶다면 질문과 의견을 남겨주세요! |
|
|
오늘 레터를 공유하고 싶다면 '여기'를 눌러서 해당 사이트의 링크를 복사해 전달해주세요. |
|
|
경향신문 뉴스레터팀 광고, 기타 문의: letter@khan.kr 서울시 중구 정동길3 경향신문사 l 02-3701-1114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