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자연의 사막화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홍대앞에서 30년을 넘게 살았다. 초·중·고·대를 이곳에서 나왔으니 토박이라 말할 수준은 될 것이다. 화방말고는 아무것도 없던 80년대 초반의 모습부터 강남과 임대료가 비슷한 지금의 모습까지 지켜 봐왔다. 여느 한적한 대학가와 다를 바 없던 홍대앞이 특별한 장소로 변하기 시작했던 건 90년대 초·중반이었다. 포화상태에 이른 신촌의 몇몇 가게가 홍대앞으로 이전했고, 홍대 미대를 나온 사람들이 독특한 콘셉트의 가게를 열었다. 대중문화의 황금기였던 90년대답게 레게, 펑크 등 특정 장르를 전문적으로 틀어주는 술집들이 생겨났고 나이트나 ‘록카페’와는 다른 댄스 클럽들이 문을 열었다. 굳이 그때가 좋았다는 얘기를 하자는 건 아니고, 20대 초반의 내가 보기에도 당시의 홍대앞은 참으로 굉장했다. 어쨌든 한국에선 없던 무언가가 생겨나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아는 사람들끼리만 알던 그 문화들은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언론은 홍대앞을 인디, 비주류 문화의 성지처럼 다뤘고, 2000년경부터는 불특정 다수의 약속이 신촌에서 홍대앞으로 옮겨졌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홍대입구역의 유동 인구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그것은 곧 사막화의 시작이기도 했다.

홍대앞의 성장을 이끈 것은 획일성을 싫어하는 사람들이었을지 모르지만 성장한 홍대앞에 밀려 들어온 것은 자본과 욕망이었다. 오래된 가게를 밀어내고 들어오는 커피 프랜차이즈들,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체인 음식점들이 이미 개인이 감당하기엔 너무 비싸진 대로변에 속속 문을 열었다. 그곳에서는 홍대앞에서만 들을 수 있었던 아기자기한 음악 대신 최신 유행가들이 흘렀고, 맛없는 커피와 냉동 재료로 만든 음식들이 있었다. 계속 늘어나는 유동 인구 중 태반은 그런 곳에 줄을 섰다. 좋아서 마시는 게 아니라, 마시다보니 계속 마시게 되는 술처럼 이제 홍대앞을 찾는 이들 중 딱히 홍대앞이 좋아서 찾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문화와 삶]문화와 자연의 사막화

제주도를 좋아한다. 몇 년 전 처음 갔다가 흠뻑 빠졌다. 거의 매달 제주행 티켓을 끊었다. 가장 자주 찾는 곳은 협재해수욕장이다. 옥빛 바다가 있고, 비양도 보이는 풍경이 있다. 지인이 이곳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기에 더 자주 찾게 되는 까닭도 있다.

그 게스트하우스가 오픈한 게 딱 2년 전. 협재는 한적하디 한적한 동네였다. 해수욕장이 있어 관광객이 적지 않았지만, 한철 장사였다. 현지인들이 민박집을 하거나, 식당을 하는 게 고작이었다. 지인의 게스트하우스 덕에 협재는 많이 알려졌다. 일년 내내 여행객들이 있는 동네가 됐다. 반년 만에 다시 제주를 찾았다. 여기저기 공사 현장이 눈에 띈다. 전에는 없었던 가게들도 문을 열거나 오픈 준비 중이다. 대부분은 이 한적한 마을의 풍경에 잘 녹아든다. 건물을 신축하는 게 아니라 기존 농가를 개조해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 올라가는 건물들이 있다. 몇 층짜리 건물들이다. 땅값도 많이 올랐다. 지인이 게스트하우스 준비를 하던 때에 비하면 서너배는 뛴 것 같다. 쭉쭉 올라가는 철근 콘크리트를 보며, 땅값 얘기를 들으며 입맛이 섰다. 2000년대 이후의 홍대앞을 여기에서까지 보는 기분이 들었다. 왜 문화적이건, 자연적이건 자본과 욕망이란 환경에 녹아들지 않고 환경을 압도하려 하는 걸까.

그동안 적잖이 해외 여행을 다녔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영국 리버풀의 교외였다. 비틀스의 몇몇 명곡의 배경이 된 곳이기에 꾸준히 비틀스 팬들이 찾는 곳이다. 하지만 관광객의 지갑을 노리는 어떤 가게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조용히 와서 구경한 후, 조용히 돌아가는 곳이라는 태도로 거리는 뻗어 있었다. 자본과 욕망을 뛰어넘는 문화적 자부심이 있었다. 우리의 자본과 욕망은 갖고 있지 않은, 그런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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