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마지막을 알고 선택할 권리

김희연 경제부 차장

며칠 전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던 친구는 나에게 미안해하며 궁금한 것을 물어왔다. “아버지께 어떻게 말씀드렸니?” 잠시 머뭇대다 답했다. “끝까지 말씀 못 드렸어, 넌 절대 그러지 마라. 내 인생에서 마지막까지 후회할 일 중 한 가지야.”

친구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고생하시던 차에 지난달 위암 진단을 받았다. 처음 진단 단계에서는 2기 또는 3기가 의심된다고 했지만 정밀검사 후 이미 간까지 전이된 4기로 나왔다. 친구는 그간 고생하신 아버지께 좋은 소식은 고사하고 청천벽력과 같은 암 진단을, 그것도 말기임을 차마 알리기 힘들었던 것이다. 유경험자인 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공감]삶의 마지막을 알고 선택할 권리

불과 몇 달 전 똑같은 고민을 했다. 앞으로도 10년, 20년 건강하실 것만 같았던 아버지가 알 수 없는 통증을 호소하시더니 지난 2월 말기암 진단을 받으셨다. 주변 얘기일 때는 흔하디흔한 질병이고 다큐 프로그램 속 환자들을 볼 때는 담담했는데 막상 내 가족의 일로 다가오니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기 어려웠다. 그동안 건강했다면 갑작스러움에, 이미 다른 질병으로 고생을 해왔다면 그 안타까움에 당사자에게 사실을 말하기가 힘든 것이다.

형제들과 얘기를 나눴지만 며칠 생각하자며 차일피일 미루게 됐다. 검색사이트를 찾아보니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급한 대로 서점으로 달려갔다. 오랜 기간 간병 경험을 갖고 있는 한 저자의 책에서는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께 굳이 (암을) 말해 더욱 낙심하게 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미리 포기하는 마음에 치료는 물론이고 스스로 곡기를 끊을 수도 있는 등 우려되는 점이 더 많다는 거였다. 그러나 또 다른 책은 달랐다. 어른은 말할 것도 없고 환자가 만 2세가 지났다면 어린 아이일지라도 자신의 상태를 이해할 수 있게 말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을 숨기기보다는 충격을 극복하도록 도와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 보호자가 환자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는 것이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삶의 결정권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둘 다 일리가 있었다.

‘나는 과연 마지막 순간,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빚진 사람이 있다면 미안함을 전하고, 통장은 정리하고 이왕이면 마지막 모습이 덜 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몇 달간 아버지 간병을 위해 병원을 오가며 지켜본 광경으로는 특히 의료적 선택 등을 포함해 주인이 되기는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처럼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마감하는 생이라면 더욱 그렇다. 과거에는 죽음이 임박하면 부모든 누구든 환자를 집으로 모셔갔지만 이젠 병원에서의 마지막을 당연시하게 된 영향도 크다.

경험에 비춰볼 때 숨이 다해가는 긴박한 순간 인공호흡기를 달아 연명치료에 들어갈 것인지, 말 것인지 등의 중요한 문제가 대부분은 정신없이 결정됐다. 입원 초반 만일의 사태 때 인공호흡기나 심폐소생술 시행 여부 등을 묻는 서명에 ‘시행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 번복하고 말았다. 짧은 순간 만 가지 감정이 교차하고 복잡했다. 실낱같은 희망, 자식된 도리, 두려움, 죄의식, 경제적 문제, 복받치는 슬픔까지….

아버지가 떠나신 후 지난달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신이나 가족의 결정에 따라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무의미한 연명 의료 결정에 관한 권고안’을 심의해 최종 확정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앞으로도 많은 논란이 있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특히 환자가 자기 삶의 마지막 선택에 적극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다. 진작에 이런 제도가 있었다면 제도의 형식을 빌려서라도 말씀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 또 때늦은 후회가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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