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 국민들이 밥보다 커피를 즐긴다는 보도가 나와 화제였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국민 식생활 빈도(2013년 기준)를 조사한 결과 커피 이용횟수가 주당 12.2회로 가장 많았다. 1인당 하루 2잔꼴이다. 가히 ‘커피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근래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커피 열풍을 보여주는 수치다.
이에 반해 주식(主食)인 잡곡밥은 주당 9.6회로 나왔다. 하루 세끼 중 밥 먹는 비율은 채 절반이 안된다. 밥 외에 먹거리가 다양해진 탓도 있겠지만 일상에 쫓겨 끼니 해결도 만만찮은 직장인들의 고달픈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쌀은 해가 갈수록 소비량이 줄면서 그야말로 처치 곤란이다.
하지만 얼마 전만 해도 사정은 딴판이었다. 1975년 1월29일자 경향신문을 보면 정부가 쌀 소비를 억제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쌀 수요가 너무 많아 억지로 줄여야 할 판이었으니 지금과는 정반대다. 당시 1인당 쌀 소비량은 연간 131㎏이었다. 우리 선조들은 어른 한사람이 한해 동안 먹는 쌀의 양을 석(石) 또는 섬으로 불렀다. 저울이 변변찮던 시기라 무게가 아니라 부피 단위로 계산한 값이다. 당시엔 ‘석-말-되’라는 계량단위가 일반적으로 통용됐다. 동네 싸전에서도 저울 대신 ‘되’라는 네모난 도구에 쌀을 담아 팔았다. 열되가 한말이 되고, 열말이 모이면 한석이 되는 개념이다. 옛 문헌에 나오는 ‘만석지기’는 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토지주라는 뜻이니 엄청난 부자다. 한석은 지금으로 치면 144㎏쯤 된다고 한다. 어림으로 계산한 쌀 소비량이 수백년간 맞아떨어진 걸 보면 새삼 조상들의 혜안을 엿볼 수 있다. 지난해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이 연간 65.1㎏인 점을 감안하면 30년 만에 딱 반토막이 난 셈이다.
1975년 당시 ‘쌀 소비 억제’ 기사를 보면 더 황당한 대목도 있다. 정부는 당초 76년으로 돼 있던 쌀 자급자족 시기를 1년 앞당겨 시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쌀값은 시장기능에 맡겨 가격 상승을 방임(내팽개쳐 둔다는 뜻)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쌀값이 오르면 덜 먹지 않겠느냐는 취지다.
국민의 배고픔을 해결할 생각은 않고 쌀값을 올려 쌀 수요를 억지로 줄이겠다는 발상이 어떻게 나왔을까 싶다. 관료주의 병폐의 전형이다. 자급자족률을 달성한 당시 농수산부 관료들은 ‘각하’의 칭찬과 함께 표창을 받았겠지만 그들에게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예나 지금이나 관료들의 숫자놀음은 달라진 게 없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부실 자원외교 역시 자주개발률 25%의 덫에 빠진 결과다. 정부의 허망한 숫자놀음에 수조원의 혈세가 허공으로 날아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