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그들은 왜 일어서지 못했나

이창근 | 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

멈추지 않았다. 말이 먹히지 않았고 손에 쥔 쇠파이프는 더 이상 그들에게 무기로 보이지 않았다. 어떤 큰 흐름이 몰려드는 기분이었다. 펜스는 이곳저곳에서 쓰러져 넘어갔고 정리해고를 막겠다고 차려진 공장 안 천막들은 그들의 머리 위로 잠시 떴다 그들 속으로 사라졌다. 크게 다쳐 구급차에 실려 나가도 그들은 믿지 못했고 결국 차에서 환자를 꺼내 확인했고 둘러싸 이곳저곳 몸을 건드렸고 이리저리 밀쳤다. 도장 공장 위에서 그 장면을 봤지만 때리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저 둘러싸고 뭔가 계속 따지고 화내고 협박을 했다. 쌍용차 파업 한 달이 조금 지난 2009년 6월27일의 사건이었다.

[굴뚝에서 보내온 편지]7년, 그들은 왜 일어서지 못했나

쌍용차는 2009년 1월9일 오전 11시 법정관리가 공시됐다. 그 뒤 많은 일들이 있은 후 쌍용차 노동조합은 공장 점거 파업에 들어갔다. 5월22일이었다. 초반 여론은 우호적이었다. 해고 규모가 너무나 컸던 탓도 있겠지만 2008년 촛불에 데어 이명박 전 대통령의 7·4·7 공약이 일그러지기 시작한 것도 한몫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정국은 일순간 검은 휘장과 천막이 둘러지고 공포가 안개처럼 깔렸다. 샛노랑은 점점 검은색에 잠식당했고 그 노랑을 들고 선 곳조차 점점 검은 그림자로 덮여갔다. 뭔가 모를 오싹함을 한여름에도 느끼는 때였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공장 점거 파업 중이어서 이 검은 공포를 느낄 수 없었고 검은 공포는 아직 공장 담을 넘지 못한 상태였다. 파업 중인 공장 안은 축제였다. 내일이면 곧 파업이 끝날 것 같았고 원칙을 말하는 회사의 발표는 그저 그런 수식으로 보였다. 실제 파업이 그랬기 때문이다. 상황이 조금씩 달라진 건 죽어간 동지를 위한 기자회견을 하며 검은색이 공장 안으로 점차 그것도 많이 들어오면서부터다.

공장 안은 빨강을 들었다. 저항의 상징이었고 노동자 역사의 방향이었다. 그러나 점차 공장 밖과의 경계면이 옅어져갔다. 빨강은 검정에 빠르게 자리를 내줬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파업을 지키느라 매일같이 한여름 공장 지붕을 걷다 아찔한 현기증 이후 찾아드는 그 짧은 어둠에서 공포는 만들어지고 있었다.

공장 밖 동료들은 어땠을까. 파업 초기에는 공장 안 동료들에게 전화로 안부를 자주 물었다. 아내들도 예전처럼 만나고 술도 함께 먹었다. 건강하게 조금만 더 버티면 함께 일한다는 격려도 먼저 건넸다. 그 마음이 고마워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러나 쌍용차 법정관리인 이유일은 여전히 원칙을 내뱉었고 타협하지 않겠다고 자주 선언했다. 해고자 명단에 없는 생산직, 사무직 가리지 않고 공장 밖 동료들을 쪼아대고 끌고 다니며 서울과 평택을 오갔고 공권력 투입까지 대놓고 호소했다. 공장 밖 펜스 주변과 앞에서 공장을 지켜야 한다며 궐기대회만 열고 정작 공장 안으로 진입하진 않았다. 궐기대회 연단에 하나둘 불러 세워 발언을 시켰고 그들에게 발언을 듣게 했다. 그들은 우리와의 연락을 점점 줄였고 버럭버럭 화도 자주 냈다.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법정관리인 이유일은 한 달 가까이 이 짓만 해댔다. 몰려다니게 했고 대장을 세워 완장을 채웠고 파업하는 동료들을 비난하게 했다. 교섭 요구는 묵살했고 신차 출시 돈이 없던 회사에서 정작 정부에는 돈은 필요 없고 공권력만 달라고 했다. 공장 밖 동료들은 검게 물들어가는 정국에 겁났을 테고 공장이 정말 망한다고 믿게 됐다.

언론은 작은 쌍용차 회사 파업을 두고서 나라경제 망한다며 부추겼다. 그들이 듣는 유일한 라디오는 법정관리인의 입이었다. 결국 2009년 6월27일 그들을 앞세워 공장 펜스를 무너뜨리고 법정관리인은 본관을 접수했다. 그러나 딱 하루 뒤 또다시 그들을 앞세워 법정관리인은 공장을 나가버렸다. 그때까지도 멋모르고 함께 쓸려 들어온 동료들까지 그 순간부터는 이유일의 입만 보게 된 것이다.

7년 동안 쌍용차는 2009년 6월27일 그 사건 하나로 끌려왔고 흘러왔다. 이유일은 쌍용차의 일그러진 영웅 엄석대였다. 공장 안에선 의견도 판단도 없었다. 우리는 그들을 생각 없다며 비난만 해댔다. 어쩌면 그럴 수 있느냐며 그들 탓만 했고 그들이 왜 일어서지 못하는지는 몰랐다.

이유일 법정관리인에게 좀비처럼 끌려다녔던 그 한 달의 공포스럽고 치욕스러운 기억에서 포박당한 채 7년을 아파했을 공장 안 사무직, 생산직 옛 동료들에게 너무나 죄송하고 미안하다. 그 이유를 굴뚝에 오른 지 96일째 되는 날에야 안 것이 너무나 후회스럽다. 26명 동료를 지키지 못했고 해고자들 또한 여전히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당시 법정관리인이었던 이유일 현 사장은 3월24일 7년의 장기간 임기가 끝난다. 3월24일은 공장 안 동료들의 공포의 시간이 끝나고 희망의 시간이 시작되는 날이자 축제의 날이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일어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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